박빙으로 치닫는 美 대선…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은
[해리스 vs 트럼프] ①
산업연, 해리스 당선시 자동차·배터리 산업 등 호재
트럼프 "한국은 머니 머신"
'아메리카 퍼스트'는 공통 분모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미국 대선(11월 5일)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초박빙’의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전문가들도 선뜻 대선 결과를 예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해리스는 이날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유세 활동을 벌였다. 해리스는 “리더의 힘을 측정하는 진정한 기준은 누구를 쓰러뜨리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사전투표를 독려했다. 트럼프는 펜실베니아를 찾아 유세했다. 펜실베니아는 미국의 철강‧기계‧화학 등 중화학 제조업 중심지로 손꼽히는 도시다. 그는 자신을 철강 산업의 구세주라고 표현했다.
두 후보가 찾은 디트로이트와 펜실베니아는 대표적인 경합지로 분류되는 곳이다. 이들이 경합지 탈환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우리나라와는 다른 미국 대선의 특징을 살펴봐야 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 표(popular vote)를 계산해 싸우지 않는다. 각 주마다 유권자표 대결을 하고 여기서 이긴 사람이 해당 주에 할당된 소속 정당의 선거인(electors)를 확보하게 된다. 예를 들어 펜실베니아에 배정된 선거인단은 19명인데, 이곳에서 이긴 후보가 일단 19표를 얻는다는 뜻이다.
이런식으로 워싱턴DC를 포함해 미국 50개 주에 할당된 선거인은 538명이다. 이 가운데인 과반수(270표 이상)를 차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이 때문에 전체 유권자 표 대결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확보에서 밀려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고 경합주가 많을수록 미국 대선 결과를 선뜻 예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9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미국은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 수출입국 중 한 곳이었다. 9월 대미 수출액은 약 104억달러로 집계됐다. 9월 기준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액이 약 588억달러, 수입액이 521억달러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미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미국 현지에 우리 기업이 직접 투자한 규모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최대 대미투자국은 한국이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는 215억달러(약 28조5300억원) 수준이다. 이는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한국 기업의 대미(對美) 투자 현황과 경제적 창출 효과’ 보고서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해외직접투자(ODI) 규모는 총 634억달러, 이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3.7%(277억달러)에 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에 도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산업육성법(CHIPS) 등이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IRA는 전기차 배터리 등 각종 요건을 충족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법안이다. 세액공제를 받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국에 공장을 세우고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어서 이를 고려한 현지 투자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LG그룹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조 단위 투자를 계획하거나 진행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이런 정책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미국을 이끌게 될 지도자가 마음을 고쳐먹을 경우 해당 정책들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다면 미국 대선 결과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해리스 당선이 韓에 유리?…누가 돼도 ‘아메리카 퍼스트’
해리스가 당선될 경우 자동차‧배터리 산업 등이 혜택을 볼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IRA‧환경규제‧관세‧공급망 등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중국을 배제하는 상황에서 우호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전기차를 직접 생산하는 비중이 커지는 것은 물론, 중장기적으로 일정 수준의 수출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기차용 부품을 포함해 소재의 미국 생산에 무게가 실리며 우리 기업의 역할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해석이다. 산업연구원(KIET)은 ‘미국 대선 시나리오별 한국 산업 영향과 대응 방향’ 보고서를 통해 “해리스 당선 시 현재 대미 자동차 수출 호조 및 수요 캐즘(Chasm)을 겪는 배터리 산업의 시장 분위기 반전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트럼프가 다시 대권을 거머쥘 경우 우리 경제에는 그늘이 드리워질 전망이다.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발표한 ‘2025년 일반산업 전망 보고서’는 트럼프 재집권 시 친환경에너지‧공급망 재편‧무역정책 등에서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국내 이차전지‧철강‧태양광‧자동차‧반도체 등 주요 산업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연구원도 배터리 산업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평가했다. IRA 폐지 여부 추후 상황을 지켜봐야 하지만, 대미 수출에서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일정 부분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트럼프는 최근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지칭하며, 자신이 집권했다면 100억달러(약 13조6550억원)에 달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재집권할 경우 방위비 분담금 협정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크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에 대한 견제 ▲반도체‧인공지능(AI)‧블록체인 등 기술 패권 유지 등 큰 틀에서 다르지 않은 공통 정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방국이라는 이유로 마냥 장밋빛 전망을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우리 경제와 산업 경쟁력의 재도약을 위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고 대선 직후에는 액션 플랜이 가동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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