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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불매운동, 어디까지가 합법일까[백세희의 컬처&로(LAW)]

공연·전시의 불매운동과 민·형사상 책임 여부

지난 2023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모차르트!' 프레스콜에서 출연진이 공연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우리는 작년 말 벌어진 여러 대형 사건·사고의 여파로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중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여파는 정치, 경제, 문화·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퍼져나가고 있다. 가수 아이유가 탄핵에 대해 찬성 의사를 내비치고 탄핵 집회에 참석하는 팬들을 위해 음식을 ‘선결제’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아이유가 광고하는 제품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선언하기도 했다.

요즘 소비자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주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요 몇 년 사이에 떠오른 소비 성향은 이른바 ‘정치적 소비자 운동’ 또는 ‘정치적 소비주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기준으로 윤리적이지 못한 개인 또는 기업에는 돈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직접적으로 유명 연예인의 공연을 불매하거나, 간접적으로 그가 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불매운동은 성공하기도, 때론 실패하기도 한다. 과거의 몇몇 사례를 살펴보자. 2012년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에 대한 개신교 단체의 반대 운동은 실패했다. 공연은 정상적으로 진행됐고,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만 해준 셈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반면 2016년 뮤지컬 <모차르트!>의 경우, 그룹 엠씨더맥스의 멤버 이수의 캐스팅이 알려지자 뮤지컬 팬들은 제작사를 비롯해 위 뮤지컬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 극장협회(VBW), 모차르트 재단과 공연이 개최될 예정인 세종문화회관, 서울시, 아동인권보호센터 등 많은 기관에 민원을 접수했다. 온라인상의 하차 서명 운동과 광고를 위한 모금 활동, <모차르트!> 예매 취소 인증, 더 나아가 제작사가 올리는 다른 뮤지컬에 대한 예매 취소까지 이뤄졌다. 결국 그는 하차했다. 

‘표현의 자유’와 ‘재산권’의 충돌

이러한 형태의 불매운동을 적극적으로 해도 괜찮은 걸까? 불매운동은 개개인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소비자 주권을 되찾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기업 영업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의 표현의 자유와 기업의 재산권이 부딪히는 셈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예매 취소를 인증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매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행위는 우리 헌법이 인정하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서 문제 되지 않는다. 온라인상의 여론을 주도하는 것도 그 자체로 위법한 것은 아니다. 어떤 유명인이나 회사가 이런저런 잘못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물건을 사지 말자고 주장하는 소비자 운동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다. 우리 헌법은 소비자 운동에 대해 이렇게 따로 별도의 조문을 두고 있다.

헌법 제124조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누군가를 비난하며 일부로 거짓 정보를 퍼뜨려서는 안 된다. 다른 손님들이 가게나 콘서트장 등 영업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물리적으로 막아서는 것도 안 된다. 이는 굳이 불매운동을 들먹이지 않아도, 시민 사회에서 당연히 위법으로 여기는 행동들이다.

복잡한 문제는 직접 그 회사의 물건이나 용역의 구매를 보이콧 하는 것을 넘어, 그 회사가 제3자와 맺고 있는 거래관계에 개입할 때 생긴다.

불매운동 한계 선언한 시금석 : 마이클 잭슨 공연 판결

그렇다면 거래처에 위협을 가하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는 불매운동계의 대표적인 사건과 판례가 있다. 불매운동이 민사소송으로 번져 법정에 가면 거의 모든 판결이 이 사건을 언급한다. 바로 1996년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 불매운동 사건이다.

1996년 10월,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국내 공연이 확정되자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운동실천본부 등 50여 개의 시민·사회·종교 단체로 결성된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반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반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마이클 잭슨 공연 모습.[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팝스타 레이디 가가가 당시 미국 대선 후보였던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 AFP/연합뉴스]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 외화 낭비, 청소년의 과소비 조장 등을 이유로 삼았다. 공대위는 주최사인 태원예능과 공연 관련 계약을 맺은 방송사, 입장권 판매 대행사 등에도 소비자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는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이렇게 불매 협박을 받은 거래처 중 일부가 실제로 태원예능과의 계약을 취소했다.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공연을 주최한 태원예능은 공대위의 불매운동으로 금전적인 손해를 입었다. 당시 입장권 판매 대행 계약을 맺은 은행들이 공대위의 불매운동 협박에 계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태원예능이 울며 겨자먹기로 직원을 직접 뽑아 전화 예매를 받으며 인건비와 광고비 등을 지출했다는 것이다. 태원예능은 공대위의 공동대표와 간사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긴 시간 끝에 결국 태원예능은 손해액 중 일부를 배상받는 판결을 얻었다. 대법원은 소비자 불매운동이 영업권에 제한을 가져온다고 해도 입장권 구매 결정을 소비자들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겼기 때문에 일단 허용된다고 봤다.

하지만 공대위가 태원예능과 거래 관계에 있는 은행들(제3자)을 압박해 계약 파기로 이어졌다면 그 계약에 따른 태원예능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된 것으로서 이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01. 7. 13. 선고 98다51091 판결). 이렇게 소비자 불매운동의 민사상 한계를 설정한 시금석과도 같은 판결이 탄생했다.

결국 ‘선’을 넘었는지가 중요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불매운동 사건은 민사소송으로 마무리됐다. 문화·예술계의 불매운동은 이렇게 민사로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뿐이고,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중의 ‘인기’를 이윤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업계의 특성상 잠재적 소비자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렇지만 이론상 형사처벌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불매운동이 집단적·지속적으로 항의 전화를 걸어 회사의 업무를 마비시키거나, 거래처을 압박해 거래를 끊게 하는 등 도를 넘어설 때는 형사상 업무방해죄, 공갈죄, 강요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2008년과 2009년 이른바 ‘조선·중앙·동아일보 광고 중단 불매운동’에 대해 우리 법원은 불매운동을 주도한 인터넷 카페 운영진과 캠페인 대표에 업무방해죄, 강요죄, 공갈죄를 선고했다. 

정리하자면, 단순히 불매운동을 주장하거나 신고된 집회·시위를 하는 건 괜찮지만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구체적인 ‘위력’을 가해 거래 행위를 방해하면 민사상은 물론 형사상 책임도 질 수 있다는 게 우리 법원의 태도다.

결국은 이른바 ‘선을 넘는지’의 문제다. 불매운동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각자 견해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는 정당한 의견 피력의 범위에 머문다. 넘어서는 안되는 그 ‘선’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 미처 모를 수 있다. 이번 칼럼이 소비자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한 윤곽을 잡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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