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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철학이 담겼다”...세계적 명사가 사랑한 와인 [와인 인문학]

와인 애호가 美 건국의 아버지 토마스 제퍼슨
전쟁터에서도 와인 즐겼던 프랑스 영웅 나폴레옹

나폴레옹이 마셨던 남아공 뱅 드 콩스탕스 와인. [사진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예술·정치·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채로운 와인 취향을 갖고 있다. 그들이 사랑했던 와인은 단순한 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삶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그들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와인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미국 3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마스 제퍼슨은 열렬한 와인 애호가였다. 그는 프랑스 대사로 활동하며 유럽 와인, 특히 프랑스 와인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당시 유럽 와인은 미국에서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제퍼슨은 와인을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에 버금가는 토양과 환경, 그리고 기후를 가졌다고 판단해 몬티첼로에 직접 포도밭을 조성하기도 했다. 비록 그의 생전에는 미국산 와인 생산이 성공되지 못했지만, 그의 와인에 대한 열정은 후대 미국 와인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퍼슨은 보르도 와인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지지하기 위해 프랑스 해군이 출정했던 보르도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보르도는 그에게 있어 단순한 와인 산지를 넘어 자유와 독립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오늘날 보르도 가론강의 샤르트론 부두변에는 그의 이름을 딴 ‘토마스 제퍼슨 잔교’가 세워져 있다. 보르도 와인 박물관에는 ‘토마스 제퍼슨 강당’이 마련돼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제퍼슨이 특히 사랑했던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이다. 그는 1787년 보르도를 직접 방문해 샤토 오브리옹·샤토 디켐·샤토 마고 등의 와인을 구매했고, 이를 즐겨 마시거나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는 1855년 보르도 와인 공식 등급이 발표되기 70년 전에 이미 샤토 라피트·마고·라투르·오브리옹을 최고 등급으로 평가해 왔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와인을 즐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샹베르탱 한 잔이면 전투에서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샹베르탱 와인을 애호했다.

나폴레옹은 쥐브리 샹베르탱의 한 도멘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샹베르탱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 와인은 쥐브리 샹베르탱 마을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레드 와인으로, 나폴레옹의 강인함과 카리스마를 닮은 웅장하고 파워풀한 맛을 자랑한다.

나폴레옹이 샹베르탱과 같은 강렬한 와인을 선호했던 것은 전쟁터에서의 고된 삶과 승리에 대한 갈망을 반영하는 듯하다. 샹베르탱은 피노 누아로 만드는 부르고뉴 그랑 크뤼 와인 중 하나로, 섬세하면서도 파워풀한 맛과 향의 조화가 일품이다. 검붉은 과일과 감초·스파이스·흙·가죽 등의 복합적인 아로마를 느낄 수 있다.
뱅 드 콩스탕스를 생산하는 남아공 클레인 콘스탄시아 포도밭. [사진 김욱성 와인칼럼니스트]
흥미롭게도 나폴레옹은 실각한 후 유배지였던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콩스탕스 와인으로 위안을 삼았다고 전해진다. 샹베르탱과는 정반대의 달콤한 맛을 지닌 콩스탕스 와인은, 어쩌면 황제의 고독과 쓸쓸함을 달래줬을지도 모른다.

콩스탕스 와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콘스탄시아 지역에서 머스캣 드 프롱티냥 품종으로 만드는 달콤한 화이트 와인이다. 꿀·살구·오렌지 껍질·꽃 등의 아로마가 특징이다. 17세기 유럽 왕실과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세계 3대 스위트 와인 중 하나로 꼽힌다.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의 명작을 남긴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는 미식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몽라셰를 마실 때는 항상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다소곳이 숙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몽라셰 와인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했다. 몽라셰는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화이트 와인이다. 뒤마의 작품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풍미를 자랑한다. 뒤마는 숫자 ‘3’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의 대표작 ‘삼총사’에서도 이런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뒤마는 와인을 시음할 때도 숫자 ‘3’을 강조했다.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고, 입으로 맛을 보는 세 가지 감각을 통해 와인을 온전히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뒤마가 와인을 단순한 음료가 아닌 예술 작품처럼 감상했음을 보여준다. 몽라셰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 포도밭 몽라셰에서 샤르도네 품종으로 만드는 가장 비싼 화이트 와인 중 하나다. 잘 익은 과일 향·흰 꽃 향·꿀 향·미네랄 향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다. 특히 깊고 견고한 맛과 긴 여운을 남긴다.

‘자본론’의 저자이자 공산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는 독일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와인을 접했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코스 데스투르넬 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코스 데스투르넬은 묵직하고 탄탄한 구조감을 지닌 레드 와인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처럼 깊이 있고 복합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마르크스가 이 와인을 즐겨 마셨다는 사실은 그의 냉철한 이성 뒤에 숨겨진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적 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은 보르도 생테스테프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메를로·카베르네 프랑 등을 블렌딩해서 만든다. 1855년 보르도 와인 공식 등급에서 2등급으로 선정된 와인이다. 깊이 있고 우아하며 풍부한 과일 향과 탄탄한 구조감을 갖는다. 장기 숙성 잠재력도 뛰어나다.

이처럼 와인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매력적인 존재다. 와인 한 잔에는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이 사랑했던 와인을 통해 그들의 삶과 철학을 엿보고, 와인의 매력에 한층 더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욱성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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