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救하려는 자에게 고려아연을 맡겨도 될까요 [EDITOR’S LETTER]

[이코노미스트 권오용 기자] 최근 사모펀드(PEF) 운영사인 MBK파트너스가 이슈의 중심에 섰습니다. 김병주 회장이 2005년 설립한 아시아 최대의 사모펀드 운영사인 MBK파트너스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지역에서 주로 바이아웃(재매각 목적 기업 인수)과 스페셜 시추에이션(구조조정 등 특수상황) 전략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 투자 이익을 냅니다. 한미캐피탈·코웨이·오렌지라이프·SK온·메가존클라우드 등 다양한 기업에 투자해 성과를 냈으며, 현재 운영 자산 규모가 300억달러(43조원) 이상입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던가요,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사태로 MBK에 여러 물음표가 달리고 있습니다. MBK는 2015년 영국의 유통 기업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의 지분 100%를 7조2000억원에 인수해 10년간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해 경영을 해왔는데요, 지난달 말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떨어지자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해 개시 결정을 받았습니다. 직원들도 예상하지 못한 기습적인 기업회생 신청에 파문이 일파만파입니다. 중소 업체뿐 아니라 대기업도 제품 납품 대금을 떼일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고, 돈을 빌려줬거나 투자한 금융사들도 발을 구르고 있습니다. 주거래은행인 SC제일은행은 3월 10일 홈플러스 어음을 최종 부도 처리하기도 했는데요, 다른 금융사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에 MBK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큽니다. 최대주주가 책임을 지고 자구책을 내놓는 등 수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0년간 경영하면서 홈플러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투자하기보다는 각종 부동산을 팔아 차입금을 갚기에 바빴다는 지적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MBK는 납품 대금이나 이자를 갚지 못한 게 아닌데, 금융채무 탕감과 조정을 해달라고 법원에 SOS를 쳤다”며 “홈플러스 직원이나 거래처 등을 구(救)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돈만 구(救)하려고 한 게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이를 두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보다는 투자금 이상의 이익을 남기려는 사모펀드 운영사의 본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래서 MBK가 작년 9월부터 영풍과 함께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선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MBK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문제가 심각하다며 조 단위 자금을 동원해 지분 확보전을 펼쳤습니다. 양측은 일진일퇴의 ‘쩐의 전쟁’은 물론이고 소송전까지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데요, 현재 MBK 측의 지분이 고려아연보다 많습니다. 고려아연이 이달 말 정기 주총에서는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방어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MBK가 승리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MBK가 경영권을 쥐게 되면 고려아연이 ‘제2의 홈플러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그런데 고려아연은 실패하면 안 되는 기업입니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비철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지탱하는 기업이기도 해서입니다. 이참에 MBK와 영풍은 최윤범 회장 측과 경영권 분쟁을 끝내고 고려아연이 세계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MBK도 홈플러스 사태로 잃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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