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일반
K-혁신이 필요한 이유…단순 모방을 뛰어 넘는 한국형 전략의 모색[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도시를 바꾸는 정치와 정치인, 그리고 시민]②
위기는 피할 수 없지만, 대응은 선택 가능
도시 혁신…유럽은 공공 주도, 미국은 민간이 나서
옳고 그름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서 작동한 결과물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국회의원] 도시의 흥망은 산업의 부침보다 더 정직하게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도시들이 제조업의 전성기를 지나 탈산업화의 충격을 맞았다. 어떤 도시는 빠르게 쇠락했고 어떤 도시는 회복의 서사를 썼다. 이 차이는 위기를 대하는 자세, 정책의 방향 그리고 무엇보다 그 정책이 작동하는 사회의 구조와 시민의 선택에 의해 갈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기존 일등산업의 쇠퇴는 물론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과 관세전쟁, 양극화와 갈등심화라는 위기는 피할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지난 칼럼에서는 한국 도시정책이 여전히 성장 중심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며, 그로 인해 공존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시대적 화두를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오늘날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침체나 산업 쇠퇴를 넘어 도시의 존재 방식 자체를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일자리를 유치하고 산업을 집중시키는 것이 도시 정책의 주된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회복력과 포용성, 그리고 삶의 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가 됐다.
환경 위기와 사회적 양극화, 기술 변화가 겹치는 오늘날의 도시에서는 단순한 산업을 유치하거나 시설을 확충하는 방식만으로는 더 이상 해답이 되지 않는다. 이런 변화 속에서 세계 여러 도시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해 왔다. 어떤 도시는 공공의 역량을 중심으로, 어떤 도시는 민간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전환의 기회를 만들었다.
두 개의 전략, 두 개의 도시 서사
탈산업화 이후 미국과 유럽의 도시들은 각기 다른 처방을 내렸다. 미국은 민간 주도의 유연한 혁신 전략을 택했고, 유럽은 공공 주도의 장기적이고 포용적인 전략을 펼쳤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각 전략은 나름의 맥락에서 효과를 발휘했고 때로는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유럽의 도시들은 정부와 EU 차원의 지원을 바탕으로 장기계획을 세우고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다.
스페인 빌바오는 낙후된 항만 지역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고 도시 전반을 문화와 예술 중심지로 재구성했다. 이 프로젝트는 25년이 지나서야 관광산업으로 이어지며 ‘빌바오 효과’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고 있다. 독일의 에센은 폐광 지역을 생태 공간으로 바꾸며 환경과 삶의 질을 회복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녹색도시 전략으로 글로벌 도시 브랜드를 획득했다 프랑스의 생테티엔은 탄광과 제조업 쇠퇴 이후 디자인 산업을 핵심 전략으로 삼아 ‘디자인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전환했다. 이탈리아 토리노는 자동차 산업 위기 이후 첨단 제조와 자동차 디자인을 중심으로 산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영국 셰필드는 철강 중심의 산업도시에서 첨단소재 연구와 문화복합공간을 중심으로 도시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했다.
이런 유럽 모델은 사회적 포용과 환경 개선에 강점을 갖는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내기까지 든 값이 결코 저렴하지는 않았다. 시민들은 높은 세율의 조세부담을 감내해야 하고 정책 효과는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즉 유럽의 전략이 작동하려면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 조세 부담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은 물론 정치의 연속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제’가 뒷받침돼야 한다.
반면 미국은 시장의 역동성과 민간의 창의성에 기대는 방식이다. 텍사스 오스틴은 소득세가 없는 친기업 환경과 음악·게임 산업 등 창의경제를 결합해 인구와 일자리가 폭증한 대표 도시다. 피츠버그는 철강 산업이 무너진 뒤 대학과 병원 중심의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해 로봇공학과 바이오 분야에서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확보했다. 이런 도시들은 정부보다 민간의 움직임이 빠르고 탄력적어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민간 중심 전략은 도시 간 격차를 키우는 양면성이 있다. 디트로이트는 제조업 몰락 후 대안 없이 붕괴했고 러스트벨트의 다수 도시는 여전히 인구 유출과 슬럼화에 시달린다. 창업과 혁신의 자유가 큰 대신, 복지나 사회적 안전망은 개인의 몫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식 모델이 가능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돈이 빠르게 돌고 인재가 자유롭게 오가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민간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전략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와 문화
미국과 유럽의 전략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각자가 처한 제도적·문화적 기반 위에서 작동한 결과물이다. 유럽은 시민들의 세금 수용성이 높고, 사회적 연대에 대한 기대가 강하다. 이는 공공 주도 전략이 시간을 두고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기초가 된다. 반면 미국은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을 중시하며, 낮은 세금과 빠른 보상을 추구하는 사회다. 이 조건이 민간 혁신 주도의 전략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한국 사회는 유럽처럼 세금에 관대한 편도 아니고, 미국처럼 시장과 개인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문화도 아니다. 공공에 대한 의존도는 높지만 신뢰는 낮고 민간은 여전히 규제에 갇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K-혁신’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고민해야 한다.
K-혁신이란 한국 사회의 현실과 제도적 조건을 고려해 유럽과 미국 모델의 장점을 융합하고, 한계를 보완하는 ‘맞춤형 혁신전략’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시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설계‧정보의 공개 ▲투명한 의사결정 ▲실질적 권한 부여가 중요하다. 둘째 ▲공공은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은 실험하고 ▲시민은 감시하고 조정하는 삼각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산업정책과 도시정책, 복지정책이 서로 분절되지 않고 통합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조건은 결국 ‘정치’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정치는 단기성과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산업의 전환, 도시의 회복은 몇 년 안에 평가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시민의 삶과 미래세대를 위한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정치, 그리고 이를 견인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다음에 계속).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학생들은 대피”…청주 한 초교서 외부인 숨진 채 발견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이선정 "故 김새론 이용? 소신대로 했을 뿐"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막내린 용산 시대…대선 이후 대통령 집무실 어디로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백기사’로 얽힌 재계…경영권 분쟁 때 빛나는 동맹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유바이오로직스 ‘영업이익률 42.7%’, 백신기업 1위...고수익 유지 가능할까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