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증권업계 대부’ 故 강성진 전 증권업협회장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라”
- [증권업계 최초에서 최고로]③
삼보증권 인수 후 국내 1위로 성장시켜
4조 규모 증권시장 안정기금 조성 등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증권 대부’(代父)로 불린 고(故) 강성진 전 한국증권업협회장(현 금융투자협회장)은 “단 한 순간도 이 철칙을 잊은 적이 없다”며 ‘증권 반세기’ 강성진 회고록에서 소회를 밝혔다.
강 전 회장은 이 같은 철칙을 지키며 지난 195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한국 증시의 역사를 만든 ‘우리 증권시장의 산 증인’으로 불린다. 그는 우리나라 증권업계에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선구자다.
1927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강 전 회장은 1957년 동명증권을 시작으로 동명증권 전무, 영화증권 사장 등을 거쳤으며, 1964년 삼보증권을 인수해 국내 1위 증권회사로 성장시켰다. 삼보증권 사장 시절 증권업계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하고 전국적인 지점망을 구축하는 등 ‘주식시장 대중화’를 선도했다. 국내 증권사 중 첫 조사부와 국제부를 만들어 기업공개(IPO) 시장과 자본자유화 시대도 열어 나갔다.
강 전 회장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남보다 먼저 해야 한다”며 삼보증권 사장 시절 직원들에게 늘 강조했다. 그는 이 말을 ‘삼보 증권 DNA’라 불렀다. 강 전 회장은 단순히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아무도 제공하지 못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는 ‘고객들이 어렵게 벌어 지불한 돈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면 회사 수익은 필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기존의 영업부 외에 조사부를 신설해 기업 리서치를 전담토록 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런 시도는 매우 독창적이었고 국내 최초의 사례였다.
‘인재가 보물이다’…전문가 양성 노력
삼보증권은 인재 사관학교 역할도 했다. 삼보증권은 증권업계 최초의 대졸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실시하고, 파격적인 급여 인상을 단행했다. 이는 주식시장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강 전 회장의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1960년대 말까지도 대다수 국민들은 주식 투자가 소수 투기꾼들의 전유물이며, 특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면 일반인은 손실을 보기 십상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먼저 증권회사 직원의 자질과 평판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 삼보증권은 1기 공채 사원 전부 일본으로 직무 연수를 보냈다. 이 역시 증권업계 최초의 일이었다. 이로써 증권회사 직원도 정식 채용 절차를 거쳐 입사하고, 사내 교육과 외부 연수 과정을 통해 전문가로 양성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게 됐다.
인력과 조직 등 모든 면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이룬 삼보증권은 1973년 증권회사로는 처음으로 IPO 주선 업무에 뛰어들었다. 삼보증권은 누구보다 먼저 발행시장을 개척, 제일 먼저 조사부를 만드는 노력 끝에 업권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이어 강 전 회장은 유통시장 확대에도 공을 들였다. 바로 대중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주식시장 대중화를 선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은 물론 지방까지 전국적인 지점망을 구축한 것은 강 전 회장이 추진한 역점 사업이었다. 주식시장 대중화의 노력은 회사 실적으로 이어졌다. 삼보증권은 1981년 국내 증권회사로서는 처음으로 약정고 1조원을 달성했고, 이듬해에는 약정고 2조원을 돌파했다.
대중화 이어 세계로…‘개척자 정신’의 실천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 증권회사도 본격적으로 대형화의 길로 들어섰다. 강 전 회장은 ‘자본시장의 국제화’라는 더 큰 미래를 그렸다. 그는 ‘우리나라 증권시장이 커지면 당연히 세계적인 대형 증권회사가 들어올 것이고, 이들과 경쟁하려면 우리도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1980년대에 국제화 업무를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조사부 국제과 시절이던 1980년 4월부터 발간하기 시작한 국내 증권업계 최초의 영문 월보인 ‘삼보 먼스리 리포트’는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 심사부의 필독서였다.
당시 우리나라 주식은 한국 사람만 투자할 수 있었고, 우리도 해외 주식을 마음대로 살 수 없었다. 그는 ‘머지않아 증권시장이 개방돼 외국인도 주식을 살 수 있고, 우리도 해외주식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거래가 급격히 늘어났고, 이들을 잡기 위한 증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을 보면 그의 선구안이 통했던 셈이다.
1983년 대우증권과 합병되기 전까지 삼보증권은 약정고 기준 시장 점유율 20%를 넘나들었다. 삼보증권은 1983년 대우그룹의 동양증권과 합병해 대우증권이 됐다. 대우증권은 2016년 미래에셋그룹에 인수·합병되며 지금의 미래에셋증권이 됐다.

그는 1990년 한국증권업협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국내 주식시장은 종합주가지수가 1년 반 만에 반토막이 나는 등 혼란기였다. 강 전 회장은 25개 증권사·은행·보험사·기업 등을 설득해 4조원 규모의 ‘증권시장 안정기금’을 조성했다. 강 전 회장은 “증권 인생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은 증시안정기금 설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이른바 ‘깡통계좌 정리’ 같은 시장 정상화를 위한 조치들을 과감히 추진해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2013년 12월 삼보증권 출신 사우가 설립에 참여했던 BNG증권 명예회장에서 물러나며 증권업계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55년간 증권업계에 종사하며 겪은 일들을 다룬 회고록 증권 반세기를 출간했다. 강 전 회장은 올해 1월 1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강 전 회장은 생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증권업계 종사자들에게 창의성과 사명감을 갖고 남들이 하지 않으려 하는 일에 도전하라고 강조해 왔다. 그는 “장기적인 안목과 전략을 갖고 더 멀리 더 힘든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며 “이렇게 해야 우리나라 증권회사도 세계적인 금융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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