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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interview] 10조원 가치 반도체기업 엔비디아 창업주&CEO 젠슨 황

[Wide interview] 10조원 가치 반도체기업 엔비디아 창업주&CEO 젠슨 황


“모바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수퍼폰 시대 조만간 도래” 앉은 자리가 내 사무실 … 자기 방도 없는 워커홀릭 CEO

# 2010년 1월 미국 LA에서 열린 CSE(세계가전박람회)에서 정교한 3D 기술을 선보인 한 기업이 주목 받았다. 미국 반도체 팹리스(fabless) 기업 ‘엔비디아(NVIDA)’였다. 이 회사의 3D 기술은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 ‘해리포터’의 가상세계를 그리는 데 쓰였다. 참석자들은 “입체적인 3D 화면에 빨려 들어갈 뻔했다”며 환호했다.

올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인공을 맡은 SF영화 ‘인셉션’이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1’ ‘히어애프터’ ‘아이언맨2’를 따돌렸다. 영화 팬이야 인셉션과 디캐프리오에게 열광했겠지만 IT업계 종사자의 관심은 다른 데 있었다. 한 기업의 3D 기술이 시각효과상 후보 작품 5개에 모두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 기업도 엔비디아다.

일반인에게 친숙하지 않지만 엔비디아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다. 이 회사의 외장형 GPU(Graphics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장치) 시장점유율은 60%로, 세계 1위다. 세계 20여 개국에 지사가 있고, 5700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한다. 포트폴리오도 GPU·모바일 컴퓨팅 등으로 다양하다. GPU 제품은 지포스(세계 최고 기술력의 GPU)·쿼드로(3D 솔루션)·테슬라(수퍼컴퓨터 GPU), 모바일 컴퓨팅 제품은 테그라(저효율 프로세서)가 있다. 지난해 33억3000만 달러(약 3조5000억원)를 벌었다. 기업가치는 10억 달러(약 10조원)에 달한다.

# 올 1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병가(病暇)를 냈다. 췌장암 치료(2004)·간이식(2009)을 받은 잡스를 두고 사망설이 흘러나왔다. 해외 언론은 “잡스의 후계자가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췄다. 미 IT 웹진 ‘테크뉴스월드’는 이런 제목의 글을 실었다. “넥스트 잡스는 엔비디아 CEO?(Could Nvidia’s CEO Be the Next Steve Jobs?)” 포스트 잡스 시대를 이끌 경영자로 엔비디아 CEO를 꼽은 것이다. 이 CEO는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Jen-Hsun Huang·48) 엔비디아 창업주다. 미 스탠퍼드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93년 엔지니어 커티스 프리엠, 크리스 말라초스키와 함께 엔비디아를 세웠다.



잡스와 닮은꼴 창업주젠슨 황은 인텔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CPU(중앙처리장치)에 종종 비교되는 GPU 개념을 창조한 이다. 지금까지 세계시장에서 7억 개가 넘는 GPU를 팔았다. 2007년에는 미 포브스지가 선정하는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CEO’ 순위에서 61위에 오르기도 했다. 젠슨 황은 이처럼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스타 CEO로 각광 받고 있지만 출발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잡스가 1976년 친구 집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했듯 젠슨 황도 캘리포니아에 있는 친구 집에서 엔비디아를 만들었다. 시장에 출시했던 첫 제품은 참패했고, 엔비디아는 창업하자마자 문을 닫을 뻔했다. 그는 어떻게 포스트 잡스로 떠올랐을까. 7월 14일 서울 코엑스 트레이드 타워에 있는 엔비디아 코리아 ‘콘퍼런스룸’에서 젠슨 황을 전화 인터뷰했다. 부족한 부분은 e메일로 보충했다. 그가 기자간담회를 제외하고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젠슨 황은 인터뷰에서 알려지지 않은 가정사와 경영철학, 그리고 엔비디아의 미래를 거침없이 밝혔다. 삼성전자와 LG전자엔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젠슨 황은 “태블릿PC는 삼성 갤럭시탭을, 스마트폰은 LG 옵티머스 2X를 사용한다”며 “두 제품 모두 세계적 품질을 갖추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그에게 창업 이야기부터 물었다.

미 스탠퍼드 대학원 재학 시절 창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맞다. 석사를 밟으면서 CPU 생산업체 AMD에 근무했고, 1993년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창업자금이 두둑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 부유한 학생이 아니었다.”

젠슨 황은 1963년 대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화학응용공학자였고, 어머니는 영어를 가르쳤다. 젠슨 황이 미국에 정착한 것은 열 살이 되기 전이다. 그는 미국 중남부 켄터키에 있는 ‘오네이다 밥시스트’ 학교에 입학했다. 어린 젠슨 황에겐 쉽지 않은 길이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3년 넘게 기숙사 변기를 닦아야 했다. 젠슨 황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회상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악바리처럼 공부했다. 말 그대로 공부벌레였다. 석사 시절 수강한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는 “대학원을 다닐 때 기혼이었고, 두 명의 자녀가 있었다”며 “그래서 대부분의 수업을 주말 비디오 강좌로 들었지만 성적은 좋았다”고 했다. “남다른 머리를 가진 게 아니냐”고 묻자 그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며 정색했다.

학창 시절 CEO를 꿈꿨나.

“아니다. CEO는 목표가 아니었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무엇이 되고 싶었나.

“엔지니어다.”

엔비디아는 왜 창업했나?

“1990년대 초 PC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PC에서 멀티미디어를 구현한다는 것은 공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럴 법도 했다. MS(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조차 출시되기 전 아닌가. 그때 나는 PC가 뛰어난 플랫폼이 될 것으로 믿었다. 더불어 3D 기술이 모든 PC에서 적용될 것으로 봤다.”

현실성이 있든 공상이든 아이디어는 좋다고 치자. 스스로 “부유한 학생이 아니었다”고 했다. 엔비디아의 창업자금은 어디서 마련했나.

“엔비디아를 창업할 때 당시 최고의 벤처캐피털 회사였던 서터힐과 세콰이어캐피털이 투자했다. 1차로 250만 달러(약 26억원)를, 2차로 1750만 달러(약 190억원)를 댔다.”

아이디어를 믿고 신생기업에 선뜻 투자하던가.

“그렇다. 언젠가 엔비디아가 훌륭한 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봤던 것 같다.”

그의 말처럼 엔비디아는 창업 초기 별 제품이 없었다. 있는 거라곤 남들이 ‘공상’이라고 깎아내렸던 아이디어뿐이었다. 젠슨 황이 국내에서 기업을 만들었다면 투자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서 신생기업이 투자 받기란 쉽지 않다. 2009년부터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자금이 증가했다고 하지만 신생기업에는 ‘그림의 떡’이다. 통계를 보면 그렇다. 벤처캐피털의 신규투자 금액은 2008~2009년 20%(7247억원→8671억원) 늘었지만 수혜 기업은 5%(496곳→524곳) 증가하는 데 그쳤다. 벤처 투자금이 일부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얘기다.

벤처캐피털이 신생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국내 벤처펀드 운영기간은 5~7년이다. 그런데 벤처기업이 창업 후 코스닥에 상장하는 데는 평균 8년이 걸린다. 벤처캐피털로선 자금 회수가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생기업에 맘 놓고 투자할 수 있는 ‘통큰’ 투자자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젠슨 황이 처음부터 알찬 실적을 낸 것도 아니다. 창업한 지 2년 만에 출시한 그의 첫 GPU 제품 N1은 그야말로 참패했다. 3D 기술이 적용된 당시로선 파격적 제품이었지만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엔비디아는 벼랑 끝에 몰렸다.

N1은 혁신적 GPU였지만 실패했다. 엔비디아는 이후 PC용 GPU 시장에서 밀려날 처지에 놓였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는가.

“사실 회사 문을 여러 차례 닫을 뻔했다. 투자자금도 거의 떨어졌다. 하지만 희망을 잃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내 아이디어를 믿었다. 중압감이 심했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일이 더 잘됐다.”

1997년 NV3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N1의 실패는 표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제품과) 호환이 안 됐던 게 결정타였다. N3는 표준기술에 적합한 제품이었다. 예상보다 시장의 반응이 빨랐다. 당시 GPU 시장은 3Dfx의 부두칩이 꽉 잡고 있었는데, NV3의 성능이 이를 능가한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엔비디아가 초반 부진을 털고 성장 페달을 밟는 순간이었다. 엔비디아는 1997년 ‘부두 시리즈’로 명성을 날리던 3Dfx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2000년에는 3Dfx의 그래픽 사업부를 인수해 GPU 업계의 절대강자로 떠올랐다. 젠슨 황은 “뼈아픈 실패가 없었다면 성공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에게 실패란 무엇인가.

“실패는 값진 교훈을 준다. 실패를 발판 삼아 다시 도전하면 성공의 열매를 딸 수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지적 정직함(intellectual honesty)이다.”

지적 정직함?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적 정직함이란 실패를 극복하는 자세를 말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수 있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자세다.”

지적 정직함은 우리말로 푸는 게 어렵다. 젠슨 황이 말하는 지적 정직함은 ‘수용’을 의미하는 듯하다. 실패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직하게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완벽, 최고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지적 정직함과 맥락이 같은 말이다.

쉽게 이야기하자. 실패를 극복하려면 ‘완벽한 수준에 오를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 아닌가.

“그렇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실패는 말 그대로 실패일 뿐이다. 머릿속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면 실패를 인정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그래’라며 정직하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기 바쁘다.”

젠슨 황은 노력하는 천재다. 하루를 허투루 보내는 법이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가 인생을 정직하게 사는 방법이다. 이 역시 지적 정직함과 통한다. 젠슨 황의 하루 일과는 빡빡하다. 오전 6시15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e메일을 확인한다. 간단한 운동을 하고 오전 9시에 출근한다. 퇴근은 오후 6시30분에 한다. 그는 가족과 저녁식사를 한 뒤 오후 8시15분부터 자정까지 e메일을 체크한다. 그는 워커홀릭(workaholic)이다.

일에 빠져 사는 듯하다. 이제 여유를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다. 똑똑한 사람은 세상에 많다. 그들을 이기기 위해선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나의 경쟁자는 잠을 자지 않고 일할 수도 있다.”

경쟁을 즐기는가.

“싸움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싸움을 걸면 절대 피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나는 ‘경쟁적’이다.”

젠슨 황의 ‘싸움닭’ 기질을 볼 수 있는 사례는 인텔과의 특허전쟁이다. CPU 업체인 인텔은 내장형 GPU도 생산한다. 자신들의 메인보드에 GPU를 장착해 출시한다. 엔비디아는 이와 달리 외장형 GPU가 주력 제품이다. 둘은 경쟁상대가 아닌 것 같지만 시시때때로 대립했다. 엔비디아가 인텔용 내장형 GPU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두 업체는 2009년 2월 소송까지 시작했다. 인텔은 엔비디아를 상대로 ‘인텔용 내장형 GPU를 생산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엔비디아는 ‘인텔이 우리의 기술력을 도용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올 1월 소송 결과가 나왔다. 엔비디아는 인텔용 내장형 GPU를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 인텔은 엔비디아의 GPU 기술을 6년 동안 사용하는 대신 특허 사용료 15억 달러(약 1조5700억원)를 주기로 했다. 젠슨 황은 “인텔이 엔비디아의 자산인 GPU 기술의 가치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인텔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소리다.

인텔처럼 엔비디아보다 몸집이 큰 기업과 승부를 벌이는 게 두렵지 않은가.

“몸집이 작은 기업의 장점은 긴밀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통을 잘하면 우리 기술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기술을 의견교환으로 찾아낼 수 있다. 몸집이 크다고 모든 승부에서 이기는 건 절대 아니다.”

엔비디아는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중간보고 체계를 최소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직원은 언제 어디서든 담당 상관과 24시간 이내에 연락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젊고 신속한 분위기는 우리 강점이다.”

직원과의 소통을 즐기는가.

“물론이다.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최신 정보를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직원과의 소통을 즐겨야 한다. CEO에게 직원은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이자 배움의 원천이다.”

직원과 소통하기 위해 CEO 방을 만들지 않은 것인가.(※ 미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에는 젠슨 황의 방이 없다. 그는 이번 전화 인터뷰도 ‘콘퍼런스룸’에서 진행했다.)

“지금은 모바일 시대다. 우리는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앉은 자리가 곧 사무실이다. 이런 업무 환경은 쉽게 소통하는 CEO가 될 수 있게 해준다.”

소통의 장점은 무엇인가.

“믿음이 생긴다. 나는 다양한 소통을 통해 직원의 능력을 검증하고, 신뢰한다. 직원들과 소통하면 새로운 기운이 들어오는 듯하다.”

그래도 글로벌 기업 CEO인데, 자기 방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리더라면 자신보다 회사 전체의 이익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내 방을 갖는 것과 엔비디아의 성장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엔비디아의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매출이 2008년 41억 달러(약 4조3000억원)에서 2009년 34억 달러(약 3조5700억원)로 7억 달러(약 7300억원)나 줄었다. 비상경영이 필요했다. 젠슨 황이 직접 나섰다. “2009년 내 연봉은 1달러다.” 임원도 뜻을 함께했다. CEO와 임원의 연봉을 줄인 돈으로는 엔지니어를 채용했다. “좋은 인재를 영입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게 젠슨 황의 계산이었다.

그는 “리더는 희생해야 한다”며 “CEO와 임원의 단기적 희생이 회사 전체에 큰 이익을 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젠슨 황의 승부수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엔비디아의 실적은 해마다 개선되고 있다. 올해 매출은 2010년보다 7% 늘어난 35억4300만 달러(약 3조700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내 힘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임원이 동참했고, 직원이 도와줬기 때문에 실적 개선이 가능했다”며 자세를 낮췄다.

겸손한 말로 들린다. 당신은 포스트 잡스 시대를 이끌 CEO로 거론된다. 그만큼 능력 있는 CEO다. IT 웹진 ‘테크뉴스월드’에서 당신을 포스트 잡스로 꼽은 걸 알고 있는가.

“(웃으며) 제목은 봤지만 내용은 잘 알지 못한다.”

기분이 어땠나.

“잡스처럼 뛰어난 인물과 비교되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 아니겠는가.”

당신을 ‘제2의 잡스’라고 표현하는 것에 동의하는가.

“제2의 잡스는 없을 것이다. 잡스 같은 인물이 다시 출현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해외 언론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지 않나.

“내 능력을 보고 그러는 게 아니다. 엔비디아의 가치를 보고 하는 말일 것이다. 내 주변에는 좋은 동료가 있다.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배운다. 기업 이미지는 CEO를 포함한 회사의 구성원이 만든다.”

‘내가 제2의 잡스가 될 순 없지만 엔비디아가 애플을 뛰어넘을 순 있다’는 자신감이 읽힌다. 그런가.

“애플은 훌륭한 기업이다. 세계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애플보다) 훨씬 젊다. 우리는 애플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젠슨 황은 “엔비디아는 멀지 않은 미래에 마법 같은 일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마법 같은 일, 그 실체는 뭘까. 바로 모바일 혁신이다. 그는 조만간 ‘수퍼폰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봤다. 모바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그런 시대다. 스마트폰 시대에서 한 단계 진화한 신세계다. 엔비디아는 2008년 6월 모바일 혁명을 이끌 프로세스를 공개했다. ‘테그라’였다. 테그라는 세계 최초의 모바일 수퍼칩이다. 일반 PC나 노트북에 탑재된 칩보다 전력소비량이 50배 적다. 전력 효율성 확보가 절실한 스마트폰·태블릿PC에 들어간다. 아우디와 BMW의 차세대 차량 내비게이션에도 탑재된다. 젠슨 황은 “테그라 개발은 엄청난 도전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PC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던 웹·HD미디어를 단 한번의 충전으로 며칠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100명이 넘는 엔지니어가 R&D(연구개발)에 힘을 쏟은 끝에 테그라를 개발했다.”

엔비디아는 최근 무선모뎀 업체 ‘아이세라’를 인수했다. 당신이 말하는 수퍼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인가.

“맞다. 수퍼폰에는 2개의 중요한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전력을 줄여주는 테그라 같은 혁신 프로세서가 하나다. 둘째는 무선통신 모뎀이다. 우리는 아이세라를 인수함으로써 수퍼폰·태블릿PC에 꼭 필요한 두 가지 프로세서를 갖춘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모바일 시장이 그렇게 커질까.

“스마트폰 비중은 전 세계 휴대전화 10억 대 중 2억~3억 대에 불과하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안에 다양한 사이즈와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이 20억~30억 대 더 팔릴 것이다. 모바일 시장이 지금보다 열 배 성장할 것이라는 얘기다. 엔비디아도 그렇지만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도 흥분될 것이다.”

삼성, LG와 협력관계가 돈독한 것 같다.

“삼성과 LG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모바일 제조기업 중 하나다. 삼성, LG와 스마트폰·태블릿PC와 관련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엔비디아 엔지니어와 삼성, LG의 협업관계도 훌륭하다.”

삼성과 LG에 대해 평가한다면.

“삼성과 LG는 모두 뛰어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두 회사는 또 혁신적 디스플레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에 엄청난 기회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젠슨 황의 스마트폰은 LG 옵티머스 2X다. 태블릿PC는 삼성 갤럭시탭을 쓴다. 두 제품에는 엔비디아의 테그라가 탑재돼 있다. 그는 “LG 옵티머스 2X는 최고의 품질력을 갖췄고, 삼성 갤럭시탭은 품질뿐 아니라 디자인도 일품”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엔비디아는 외장형 GPU로 성장했다. 엔비디아의 GPU 제품군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지포스’다. PC와 노트북의 속도를 올려주는 기능을 한다. 3D 솔루션인 ‘쿼드로’가 둘째 제품이다. 쿼드로는 애니메이터·방송사·시각 아티스트·산업 디자이너들이 주로 쓴다. 해리포터·아이언맨·아바타의 가상세계를 만들 때 사용된 3D 기술이 바로 쿼드로다.

셋째는 ‘테슬라’다. GPU 컴퓨팅 모듈이 탑재된 서버 시스템이다. 주로 수퍼컴퓨터의 GPU로 쓰인다. 국내 기상청의 수퍼컴퓨터에도 테슬라가 탑재돼 있다.

그런데 젠슨 황의 목표는 혁신적 모바일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테그라가 그 혁신의 중심에 있다. 그럼 젠슨 황은 지금의 엔비디아를 만든 ‘일등공신’ GPU를 뒷전으로 밀어내려는 걸까.

엔비디아의 새로운 성장동력은 테그라를 통한 모바일 사업이다. 3D 솔루션을 비롯한 GPU 분야는 더 이상 키우지 않겠다는 것인가.

“절대 아니다. 엔비디아의 N은 최고의 경지를 말한다. 비디아는 비디오를 뜻하는 라틴어다. 엔비디아의 로고를 보면 눈 모양이 있다. 왼쪽은 2D로, 오른쪽은 3D로 디자인했다. 여기엔 엔비디아가 세상을 2D에서 3D로 이끌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엔비디아의 3D 솔루션은 계속 진화할 것이고, 3D 콘텐트도 풍부해질 것이다.”

엔비디아는 지금까지 GPU 분야에서 전문적인 IP(반도체 설계)를 1200개나 개발했다. 이 중 10% 정도만 상품화됐다. 나머지는 미래 시장을 위해 준비된 것들이다.

엔비디아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친구 두 명과 함께 엔비디아를 창업할 때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는 존경 받는 기업이고, 둘째는 우리가 하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18년 전 꿈을 아직도 꾸고 있다. 엔비디아를 전 세계에 도움이 되는,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젠슨 황은 한 가지 목표가 더 떠오른 듯 서둘러 말을 이었다. “엔비디아가 가족과 동료가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이 됐으면 한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 시작한 젠슨 황과의 인터뷰는 10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그는 “미국은 지금 오후 6시”라고 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물으니 껄껄 웃으며 “30분 후면 집에 간다”고 답했다. 맞다. 오후 6시30분은 그의 퇴근시간이다. 하지만 일을 끝내는 건 아니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고, 오후 8시30분부터는 어김없이 e메일을 확인할 거다. 세상의 모든 공간이 그에겐 사무실이다. ‘업무 종료’라는 말도 없다. 영국 BBC 방송은 젠슨 황을 “전형적이지 않은 CEO”라고 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를 닮았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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