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은퇴를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이는 은퇴에 대한 잘못된 정의와 무관치 않다. 사전을 찾아보면 은퇴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가롭게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밀려난다는 것은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와 달리 선진국에서는 잘 발달된 연금제도로 풍요로운 은퇴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은퇴 후 여유로운 시기를 ‘황금시대(gold age)’라고 표현하며 ‘은퇴하기 위해 일한다’고 할 정도로 은퇴를 애타게 기다린다. 물론 은퇴 후 운동이나 여행과 같은 여가생활을 즐기기도 하지만 점차 이런 여가생활형 은퇴는 줄고 평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적극적인 은퇴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그 결과 노인이라는 용어보다는 ‘시니어(senior)’라고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은퇴생활을 하는 이들을 활기찬 은퇴자 즉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한다.

‘은퇴한다’의 영어 단어는 ‘Retire’다. 이미 은퇴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서구에서는 이 단어를 ‘Re-Tire’, 즉 ‘다시(Re) 타이어(Tire)를 갈아 끼우고 은퇴 후 20~30년을 힘차게 살아간다’는 개념으로 바꾸고 있다. 은퇴를 사회생활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생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은퇴자들은 대학 등으로 몰려가 간호사나 심리상담가, 화가 등의 교육을 받고 자아 성취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

미국의 은퇴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꼭 인용되는 사례가 있다. 바로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직을 사임할 때만 해도 그의 지지도는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이란에서의 인질 구출, 국내 경제정책 등이 잇따라 실패했고 1980년대 말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공화당 후보인 레이건에게 패해 연임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전직 대통령 가운데 한 명으로 존경 받고 있다. 지구촌 곳곳의 중대한 분쟁을 해결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사랑의 집짓기 운동인 해비탯 사업을 활발하게 펼친 결과 마침내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역사상 가장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지탄에서 은퇴 후 가장 존경 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성공적인 반전을 만든 카터 대통령은 많은 은퇴자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은퇴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부터 떠올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은퇴란 외롭고 가난하고 소외된 생활이다. 이제는 은퇴라는 말부터 바꿨으면 좋겠다. 일본에서는 은퇴라는 말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영어 발음대로 ‘리타이어먼트’라는 말을 그대로 표기하기도 한다. 우리도 은퇴라는 말 대신 좀 더 긍정적인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아직 마땅하게 대체할 만한 용어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긍정적인 은퇴 문화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은퇴자들은 대학 등으로 달려가 다시 자격증을 따거나 재교육을 받아 정년 퇴직 이후 20~30년을 힘차게 살아간다. 그저 여유시간이면 TV 앞에 있거나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우리 은퇴자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은퇴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활발하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나 퇴임 후 활발한 활동으로 또 다른 전성기를 만든 지미 카터 대통령과 같은 멋진 은퇴자가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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