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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 인수 끝나지 않았다

명품 브랜드 인수 끝나지 않았다

최근 신원그룹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로메오산타마리아’를 인수했다. 박성철 회장은 글로벌 명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주춧돌을 놓았다고 밝혔다. 그를 1박2일 동행취재 했다.



8월17일 서울 양재역 사거리에서 리무진 버스 두 대가CEO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원, 코오롱, 한국도자기, 블랙야크 등 100개 기업 CEO들이 모여 지난 2월 만든 ‘명품창출 포럼’의 현장투어가 있는 날이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오자 CEO들이 하나 둘 모였다. 그 가운데 박성철 회장이 보인다. 박 회장은 이 포럼의 초대회장을 맡았다.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그의 첫인상은 강인했다. 다부진 몸매에 정갈한 그린 재킷, 꼼꼼히 빗어 넘긴 까만 머리가 인상적이다. 나이(73)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경북 구미까지 박 회장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는 출발 전 버스 맨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탑승하는 CEO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포럼은 글로벌 첨단소재 전문기업인 도레이첨단소재 구미공장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웰빙 건강 전문기업 ㈜인산가의 함양 연수원을 방문하는 현장 투어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터뷰는 포럼이 열리는 1박2일 동안 여러 차례 이뤄졌다. 박 회장은 “이제는 한국에서도 명품이 나와야 할 때”라며 “과거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지난 7월15일 박 회장이 이끄는 신원그룹은 이탈리아 최고의 가죽 명품 잡화 브랜드인 ‘로메오 산타마리아(Romeo Santamaria)’를 통째로 사들였다. 소유주인 ‘산타마리아 회사(Santamaria SRL)’로부터 지분 100%를 인수한 것. 박 회장은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신원그룹이 명품 전문 기업으로 변신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내년이면 섬유패션업에 진출한 지 40년 됩니다. 그간 양적 성장에 주력했어요. 1986년 신원이 스웨터 단일품목으로 1억 달러 이상 수출해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것은 대단했죠. 하지만 이젠 양보다는 질을 높여야 할 때입니다. 몇 년 전 양복 한 벌에 2만 달러 하는 유럽의 명품 브리오니의 총판을 맡고 나서 ‘한국에서도 이런 명품이 나와야겠구나’ 생각했죠.”로메오 산타마리아는 1947년 밀라노의 수공예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지역인 비아 메데기노에서 산토 산타마리아와 모니카 이리스 부부가 창업했다. 이 브랜드를 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역사와 시장성을 꼽았다.

“마침 신원그룹에 가방 품목이 필요했어요. 이중 역사가 오래되고 시장성이 좋은 로메오 산타마리아를 선택했어요. 이탈리아 명품 핸드백 중에서도 디자인에서 최고로 평가 받고 숙련된 장인이 일일이 수작업 해 최상의 품질을 갖춘 브랜드죠. 결정적으로는 우리가 앞으로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만들 때 필요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인수를 명품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데요. 브랜드를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요.“67년 전통의 최고급 악어가죽 가방인 만큼 기획과 디자인 모두 이탈리아에서 합니다. 최상의 악어 가죽을 사서 최고의 디자이너가 기획해 이탈리아 공장에서 가방을 만듭니다. 요즘 유명 명품 브랜드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높은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하려고 조율 중이죠.밀라노에 안테나 숍을 만들어 올해 말부터 오더 메이드방식으로 각국 총판에서 주문을 받아 생산하게 됩니다.주문생산이니 손해 볼 일이 없죠. 한국 진출과 본격적인 풀 라인 가동은 내년부터 이뤄집니다.”

올해 5월 박 회장은 ‘S.A.밀라노 법인’을 설립했다. 그는 글로벌 사업의 중추기지로 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그는 “로메오 산타마리아가 이탈리아 브랜드로써 정통성을 유지하도록 ‘S.A. MILANO’를 통해 독자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라며 “여기서 기존 거래처인 유럽·미국·일본·남아프리카·중동 판매를 맡는다”고 말했다.박 회장은 다른 명품 브랜드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그래서 유럽 패션 브랜드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원이 원하는 브랜드가 나온다면 언제든 인수합니다. 현재 유럽은 재정 위기를 겪고 있어 여러 브랜드에서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요.”


사막에 스웨터, 북극에 냉장고 팔 사람지금은 해외 명품 브랜드를 사들이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박성철 회장은 어려운 시절을 딛고 일어선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맨주먹으로 출발해 패션업 한 우물을 판끝에 큰 기업을 일궜다. 이랜드, 형지, 세정, 한세실업 등 국내 패션그룹 경영자 중 최고참이다.그는 1940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힘들게 목포중·고를 졸업했다. 우등상으로 받은 사전을 팔아 서울로 올라와 한양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가정교사를 하면서 겨우 생활하다가 더 이상 학업을 잇기 힘들어 산업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에서 교정 일을 했다. 경제부로 옮겨 섬유 쪽 취재를 한 게 인연이 돼 의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1973년 서울 신길동에서 직물 편직기 7대와 직원 13명으로 ‘신원통상’을 설립했다. 그는 악착같이 일했다. 공항에서 바이어가 가져온 샘플을 픽업해서 밤새도록 똑같이 짜 새벽같이 바이어 호텔방에 찾아갔다. 성실성과 품질을 인정받아 수출 계약을 많이 따냈다. 그 결과 석탑산업훈장(1981), 동탑산업훈장(1985), 금탑산업훈장(1987)을 수상했다. 중동에 스웨터를 수출해 상까지 받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사막에 스웨터를 팔고, 북극에 냉장고를 팔 사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은 1997년 외환위기 때 풍비박산 났다. 워크아웃 전 신원그룹의 연 매출은 2조원으로 국내재계 서열 30위를 목전에 두었다. 건설, 전기, 전자, 지역방송 등 17개 계열사를 거느렸다. “외환을 빌려 쓴 게 화근이었죠. 원금과 이자가 두 배 이상 불어나니 감당할 수가 없더군요. 부채 압박과 함께 내수 시장은 바닥이었고,계열사 보증 문제도 하나 둘 터졌어요.”박 회장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을 갚기 위해 모체인 섬유·패션만 남기고 계열사들을 모두 팔았다. 지분을 전부 내놓고 회장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건강까지 악화됐다. 탈장에 암까지 생겨 수술을 5번이나 받았다. 당시 신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회생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다. 2003년 5월 워크아웃을 5년 만에 졸업했다. 미국 포브스는 2004년 “잘나가는 한국 경제와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배우려면 신원을 벤치마킹 하라”고 보도했다.그는 워크아웃을 빨리 졸업한 건 목숨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업인으로 사명감도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업이 죽든 살든 생존을 같이 하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아이고, 귀찮으니 관둬야겠다 하면 기업은 가는 겁니다. 기업은 하늘이 준 청지기 사명이죠. 하늘로부터 위탁 받았다는 사명으로 ‘꼭 살려야겠다’ 해야 합니다. 워크아웃이 되더라도 원래 주인이 경영하도록 해야지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안돼요. 다 키운 개를 다른 주인이 키우면 말라 죽듯이.”


최근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는 패션 업체가 많습니다. 국내 의류 시장을 어떻게 보십니까.“한국의 디자인력과 봉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한국의 패션 인력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서도 명성을 날리고 있죠. 그런데 국내 패션 시장은 우리 브랜드 론칭 보다는 해외 브랜드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가치 있는 국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패션은 최고의 고부가가치 산업이죠.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브랜드를 육성·관리해야 합니다.”




핵실험 때도 물건 싣고 개성공단 오갔다신원의 역사에서 개성공단을 빼놓을 수 없다. 대기업 중 유일하게 입주한 신원은 1994년부터 2년간 평양에서 임가공 생산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 개성공단에 입주했다. 거기서 생산한 의류 제품이 2005년 서울로 출하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 개성산 제품이 전국 신원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개성공단의 매력은 무언가요.“개성공단은 정경분리의 개념에서 봐야 해요. 나는 1995년부터 대북사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미사일 날아가는 날에도, 핵실험 때도 물건 싣고 오가고 다했죠. 개성공단은 정치와 무관하게 단일민족의 원액을 나눌 수 있는 교제 장소이자 북쪽 경제 부흥을 가져올 경험의 현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 다녀오셨나요.“보름 전에. 복날이니까 수박을 한 트럭 싣고 가 열명이 한 통씩 먹도록 했어요. 간식으로 제공하는 초코파이, 진주 햄소시지, 미숫가루에 이은 특식이죠. 북한 노동자들이 내게 말은 잘 안 해도 표정으로 좋다고 표현해요. 내가 인도네시아, 중국, 베트남, 과테말라 등 전 세계에 7개 공장을 가졌지만 다른 나라 공장보다 편해요. 싸워도 남보다는 형제간이 좋은 거죠.”


내년 중국에서 매출 5000억원 올릴 것박 회장은 중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중국 패션시장을 해외 시장 개척의 교두보로 삼았다. 신원은 중국 진출을 위해 2006년 상하이 법인을 설립했다. 2010년엔 신원의 남성복 ‘지이크 파렌하이트’가 중국 전체 매출 1위인 항주 대하 백화점에 입점해 전체 남성복 중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영토가 넓은 중국 시장에서는 지역별 현지화가 중요합니다. 지역별로 유행하는 디자인, 선호하는 컬러,원단 등을 알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죠. 신원은 색상에 예민한 중국인을 겨냥해 화려한 계통의 색과 디자인을 개발해 성공했습니다.”

신원은 중국 상하이와 다이롄·칭다오·톈진 등에 현지 법인 및 지사를 두고 있다. 내년에는 베이징 등 중국 전역에 1000개 이상의 매장을 오픈 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내년 중국에서 매출 5000억 원을 올려 그룹 총 매출 1조원을 이룰 생각”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누구보다 한국형 명품에 목말라 있다. 그가 명품창출 포럼의 초대회장을 맡은 이유다. 그는 “우리나라가 무역 2조 달러를 넘어 3조 달러를 달성하려면 명품이 아니고선 힘들 것”이라며 “현재 국내서 명품 대접을 받는 제품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하겠”고 말했다.

그는 명품포럼 초대 회장으로써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명품포럼 같은 조직이 없었어요.민관이 어울려 명품을 만들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명품이 많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도 명품포럼, 명품협회가 있어요. 프랑스는 1954년, 이탈리아는 97년에 조직했죠. 앞으로 포럼을 통해 명품을 개발하고 유럽 포럼과 함께 연구하고 전시회도 할 계획이에요.”


회장님께서 생각하는 명품이란 무엇인가요.“말 그대로 이름 명(名)에 제품 품(品)자를 써 ‘이름 있는 제품’이라는 의미죠. 우리나라에서 고가의 제품만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요. 품질이 우선되는 제품, 널리 이름이 난 제품, 대중들에게 친숙한 제품, 누구나 알고 있는 제품이야말로 진정한 명품입니다.”


신원에서 내세울만한 한국형 명품이 있나요.

“2011년 이탈리안 스타일의 세계적 거장 ‘알바자 리노’와 함께 론칭 한 ‘반하트’가 국내 고가 남성복 시장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하트를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키울 겁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에 상표권을 출원했고 내년 파리패션위크에 참가해 패션의 본고장에 진출합니다. 이와 함께 세계적인 명품 여성복도 론칭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신원이 국내 패션의 대중화에 힘썼다면 앞으로는 브랜드의 명품화를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패션 기업을 만들 겁니다.”


교회 장로로 활동하며 청교도적인 삶

박 회장은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서울 영등포 신길 성결교회 장로인 그는 37년간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는 청교도적인 생활을 하기로 유명하다. 대기업 오너지만 북아현동 산꼭대기의 30년 된 낡은 집에서 살고 있다. 차고 다니는 시계는 20년 된 삼성의 금색 쿼츠 시계다. 여러 번 고장이 났지만 고쳐서 차고 다닌다.


아들이 3명인데 승계 구도는 짜여졌습니까.“예일대, 워싱턴대, 뉴욕 파슨스 등을 졸업해 공부를 많이 한 첫째는 다 치우고 지금 목사를 해요. 둘째는 미국과 일본 회사를 거쳐 삼일회계법인에서 M&A를 담당하다 들어와서 내수 및 전체 담당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죠.침착하게 정리를 잘해요. 막내는 대신증권에서 M&A를하다 지금은 신원 수출담당 전무입니다. 경영 승계는 더두고 봐야죠.”


언제쯤 은퇴할 생각입니까.“허허. 정확한 은퇴 시점은 아직 몰라요. 알맹이가 차고 해야지. 물러나면 아프리카 선교사도 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려고요.”


로메오 산타마리아는…

1947년 밀라노의 수공예 가죽 제품을 생산하는 지역인 비아 메데기노에서 산토 산타마리아와 모니카 이리스부부에 의해 탄생했다. 악어가죽 특유의 중후함과 트렌디한 감각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어필하며1987년부터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급 악어가죽과 타조가죽 제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밀라노의 심장부인 피아자 E. 듀스에 매장을 운영 중인 산타마리아는 니나리찌, 랑방, 발리,트루사르디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의 최고급 악어가죽 백 라인을 제작해왔다.

영국의 다이애나비와 일본 왕의 딸 마사코는 물론 샤론 스톤, 마돈나, 톰 크루즈 등이 단골 고객이다. 현재 전세계 7개국에서 16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신원은 인수 이후 핸드백 외에 소형 액세서리, 선글라스, 구두 등 신규 라인을 제작해 토털 명품 잡화 브랜드로 키울 예정이다. 2017년까지 전세계 유통망 150개, 매출 3000억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악어가죽 핸드백 1700만~3000만원, 타조가죽 핸드백600만~1000만원, 지갑 150만~300만원이다. 국내에는 2006년부터 질샌더, 스테파넬 등을 수입하는 지현통상에서 들여와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에서 판매하다 2010년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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