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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nivore FOOD - 최고 요리사들의 만찬

Omnivore FOOD - 최고 요리사들의 만찬

올해로 3회 맞은 ‘를레 에 샤토’의 요리 축제 46명의 유명 요리사가 기량 펼쳐



세계 고급 레스토랑·호텔 연합 ‘를레 에 샤토’는 60년 전 발족 당시 회원으로 선정된 업체가 파리부터 니스 사이에 있는 호텔과 레스토랑 여덟 군데에 불과했다. 당시 이 지역과 레스토랑들은 세계 요리의 최고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늘날 를레의 회원 업체는 500곳이 넘으며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또 그 레스토랑 중 대다수가 프랑스의 영향과는 거리가 멀다.

요즘은 수백 년 동안 미식의 불모지로 불리던 영국마저 요식업계에서 위상을 높이기 시작했다. 를레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연례 요리 축제 ‘최고 요리사들의 만찬(dîner des grands chefs)’의 주최지로 런던을 택했다. (1회는 베르사이유, 2회는 뉴욕에서 열렸다.)

요리사 헤스턴 블루먼설이 운영하는 런던 교외의 레스토랑 ‘팻 덕’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면서 영국 요식업계의 위상이 부쩍 높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미식 지도에서 영국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는 다른 요인들도 작용했다. 인도 요리와 레바논 요리, 이탈리아 요리, 스칸디나비아 요리, 그리고 영국 요리까지 다양한 부문에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레스토랑들이 런던에 지금과 같은 명성을 안겨줬다.

4월 22일 열린 를레의 요리 축제에는 세계 유명 요리사 46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한때 세계 최대의 어시장이었던 템즈 강변의 올드 빌링스게이트에서 직접 만든 요리를 600명의 손님(1인당 입장료 1000달러)에게 대접했다. 자선 파티의 성격을 띤 이 행사에서는 영양실조 어린이를 위한 기금 수만 달러가 모금됐다.

이 행사의 또 다른 목적은 뛰어난 품질의 영국산 재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있었다. 잉글랜드 남해안에서 잡힌 바닷가재와 게, 웨일즈와 애버딘에서 생산된 닭고기, 스코틀랜드산 앵거스 소고기 등. 옥스포드 근처에서 30년 넘게 최고의 프랑스 레스토랑(르 마누아 오 카트’ 세종)을 운영해 온 프랑스 요리사 레몽 블랑은 행사장을 찾은 요리사들을 위해 즉석 농산물 직판장을 열었다.

오카니 제도에서 생산된 자연산 훈제연어와 희귀종 소고기는 스코틀랜드 음식에 별 기대를 품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만족하게 여기는 듯했다. 물론 해기스(양의 내장에 귀리를 넣어 만든 스코틀랜드식 소시지)의 요리법까지 일부러 찾아볼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날의 메인 요리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사실 그날 메인 요리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열다섯 가지나 됐다. 요리사 3명이 한 조를 이뤄 지정된 테이블의 손님에게 요리를 대접했다. 조별로 거의 비슷한 재료를 제공받았지만 나온 요리는 천차만별이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요리사 헬레네 다로즈가 속한 조에 배정된 손님들은 그녀가 만든 탄두리 양념의 푸른 바닷가재 요리를 한 코스로 제공받았다. 그리고 남아공 요리사 마고 얀세의 야생채소와 사탕수수 시럽, 신 맛 나는 아프리카식 무화과 졸임을 곁들인 육포 요리를 맛봤다.

또 미국 버지니아주의 유명 호텔 ‘인 앳 리틀 워싱턴’을 운영하는 요리사 패트릭 오코넬은 ‘틴 오브 신(tin of sin)’이라는 요리로 손님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겉보기엔 그냥 캐비어가 담긴 작은 깡통 같지만 바닥에 영국산 게살을 깔고 그 위에 오이 젤리를 얹은 다음 맨 위에 캘리포니아식 소스로 버무린 오세트라 캐비어를 얹었다. 레몽 블랑은 핑크색 자몽과 샐러리로 만든 샐러드를 곁들인 데번셔식 게요리를 선보였다.

요리사들은 상당히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자신의 주방에서 보내는 그들에게 세계 각지에서 온 다른 요리사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은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패트릭 오코넬은 이렇게 말했다.

“를레의 요리 축제에 세 번 모두 참가했다. 여기서는 다른 요리사들과 특별한 유대를 맺게 된다. 함께 일할 때는 보통 때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알게 된다. 동지애가 저절로 생긴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우리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세계 각지에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내 경우 워싱턴에서 여러명의 고객이 이곳까지 왔다.”

이 행사에서는 기술이 예술적 경지에 오른 요리사들이 최고의 재료를 제공받아 요리를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즉석으로 만든 요리가 각자의 주방에서 만든 요리만큼 맛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요리사들은 행사 몇 시간 전에야 행사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주 낯선 환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재료로 요리를 했다.

무엇보다 한꺼번에 엄청나게 많은 손님에게 요리를 대접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와 손님들로 붐비는 나이트클럽에서 듣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의 차이라고 할까? 하지만 불평하는 손님은 없었다. 템즈강 맞은 편에선 72층 유리 건물 ‘샤드’가, 강물 위에선 아름답게 조명을 밝힌 타워 브리지가 그들을 반겨줬다.

런던은 이제 국제 요리 행사에 약간 심드렁해지는 듯하다. 를레의 행사에 이어 4월 29일엔 ‘산 펠레그리노 세계 최고의 식당 50’행사가 열려 세계 유명 요리사들 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요리사들은 요리를 하지 않고 느긋하게 앉아 행사를 즐겼다. 주방에서 묵묵히 땀흘리던 무명 요리사들이 새로운 영예를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축하했다.

레몽 블랑이를레 행사에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과거에는 학교를 중퇴하거나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정신이 약간 이상한 사람들이 요리사가 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제 요리사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직업 중에서도 최첨단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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