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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계산형→전투형’ 이창호의 대변신

Management - ‘계산형→전투형’ 이창호의 대변신

천적 나타나자 전법 바꿔 성적 내 … 기업도 흐름 맞게 기술·제품 바꿔야
이창호 9단(오른쪽)은 천적인 이세돌 9단(왼쪽)의 등장 후 전법을 바꿔 대응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천적이 나타나면 이상하게 힘을 못 쓰고 무너지는 수가 많다. 기업 경영에서도 천적이 출현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21세기의 비즈니스에서는 천적들이 대부분 신기술을 앞세우고 등장한다. 카메라 시장에 디지털 카메라가 출현하자 기존의 카메라와 비디오 카메라는 당해내지 못하고 시장의 패권을 넘겨주었다.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던 플로피 디스크는 CD가 나오면서 사라졌다. 요즘은 USB가 나오면서 CD도 별로 인기가 없다. 이처럼 신기술로 무장한 천적이 나오면 청동기 시대에 철기군이 나오는 것과 같아 경쟁하기가 어렵다.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결국 문을 닫게 된다. 스타벅스·카페베네 등 신종 커피숍이 이곳 저곳 생기면서 전통적인 다방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천적이 나타나 생존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건설경기처럼 외부 환경 탓에 고전하는 경우는 버티기 전략 등으로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천적이 나왔을 때는 참고 견디는 방법은 효과가 없다. 신기술 경쟁에 뛰어들거나 다른 전략을 써야 한다.

천적 출현 때 바둑 고수들은 어떤 생존전략을 쓰는지 알아보자. 프로바둑의 세계에서는 당대 제일의 실력자를 일인자 또는 최고봉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랭킹 1위로 칭한다. 바둑 최고봉의 자리는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후임자에게 넘겨주듯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바통을 물려주는 식으로 바뀌게 된다. 해방 무렵 조남철 초단이 일본에서 신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전통의 바둑고수들을 모두 꺾고 한국 바둑의 일인자가 됐다.

그 후 김인→조훈현→이창호→이세돌→박정환으로 바둑계 일인자의 이름이 바뀌어 왔다. 승부의 세계에 영원한 강자는 없기 때문에 최고봉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최정상의 자리가 바뀔 때는 대부분 천적 관계에 의해서 바통 터치가 이루어지게 된다. 김인의 천적은 조훈현이었고, 조훈현의 천적은 이창호였다.

한 번 천적관계가 형성되면 여간 해서 그것을 극복하기가 어렵다. 와신상담 끝에 특별히 천적을 무너뜨리고 부활한 경우가 하나 있다. 일본에서 정상으로 활약한 조치훈 9단이다. 조 9단은 천적 고바야시 고이치 9단에게 정복 당해 무관의 제왕이 됐다. 그러나 ‘목숨 걸고 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이렇게 천적을 극복하고 올라서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천적에게 밀려나 소리 없이 뒷전으로 사라져 간다.

바둑고수들은 천적의 출현에 곧바로 무릎을 꿇고 쓰러지지는 않는다. 최고봉에서 밀려났더라도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찾는다. 그 전략은 바로 ‘변신’이다. 자신이 주무기로 사용해 오던 기술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바둑황제 조훈현 9단은근 20년간 장기 집권을 했다. 그는 발 빠른 바둑을 구사해 ‘제비’나 ‘속력행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의 빠름을 당해낼 기사들이 없었다. 그러나 느리면서도 계산에 능한 제자 이창호 9단이 출현하자 조훈현은 빠르게 무너져 버렸다.

‘신산(神算)’으로 불린 이창호의 치밀한 계산력 앞에 종반에 반 집 차로 역전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천적 이창호의 출현에 10개 가까운 타이틀을 모두 잃은 조훈현 9단은 흘러간 옛 가수가 될 상황에 처했다. 그러자 조훈현은 자신의 바둑스타일을 바꿨다. 제비처럼 가볍고 빠르게 두던 스타일에서 주먹과 투혼으로 대응하는 전투바둑으로 바꾼 것이다. 이 무렵 조훈현은 싸움의 신이라는 뜻의 ‘전신(戰神)‘이란 새로운 닉네임을 얻었다.



자꾸 패하면 변신 서둘러야이창호 9단도 독사 최철한과 전투의 화신 이세돌을 만나 일인자에서 물러날 상황이 되자 변신술을 사용했다. 전투를 피하고 계산으로 승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지 않고 맞붙는 스타일로 바꿨다. 이창호는 원래 복잡한 전투를 하지 않고 집으로 승부하는 바둑을 즐겼다. 그런데 천적들이 그 약점을 파고 들자 기존의 전법으로는 상대하기 힘들다고 파악한 것이다.

이 무렵 세계대회에서 중국의 강자 후야오위 8단과 시합을 한 적이 있었다. 이창호의 변신을 알아채지 못한 후야오위는 이창호의 강펀치를 맞고 대마가 쓰러지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1도]는 이창호 9단이 흑1에 두어 자신의 대마를 보강한 장면이다. 이 수는 위쪽에 있는 백대마에 압력을 넣는 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야오위는 태연히 백2에 지켜 영토를 확장했다. 백대마가 미생이 긴 하지만 평소 이창호의 바둑스타일로 볼 때 무리하게 잡으러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

[2도]를 보자. 싸움꾼으로 변신한 이창호는 흑1로 백대마의 급소를 찌른 후 강하게 잡으러 가는 작전을 썼다. 백4 다음 다른 방면에 성동격서 전법으로 준비공작을 한 후 흑A로 대마를 잡으러 간 것이다. 결국 후야오위의 커다란 대마가 사로잡히고 말았다. 계산형에서 전투형으로 변신한 이창호는 잃었던 타이틀을 되찾으며 다시 최고봉으로 올라섰다. 변신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창호는 계속 밀려나 무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프로기사의 변신 전략을 살펴보았는데 이외에도 대마킬러에서 장사꾼 스타일로 변신하는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비즈니스에서도 이 전략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상품으로 도저히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사업 내용이나 종류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변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제품의 기술을 변화시키는 것도 있고 상품 모델을 바꾸는 것도 있다.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은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가 있는 공간으로 모델을 바꿨다. 완전히 업종을 바꾸는 것도 변신의 한 방법이다. 씨름선수 강호동씨가 개그맨으로 변신하는 것처럼 기존의 사업에서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전혀 다른 업종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변신을 하더라도 축구선수에서 감독이 되는 것과 같이 관련성 있는 분야로 변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환경과 신기술을 앞세운 천적의 출현에 대비해 늘 변신을 준비한다면 기업 경영에 좀 더 융통성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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