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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FASHION - 평범함에서 멋을 찾는 ‘놈코어’ 패션

CULTURE FASHION - 평범함에서 멋을 찾는 ‘놈코어’ 패션



낡은 운동화와 회색 티셔츠, 집업 플리스 재킷. 셔츠와 치노 바지(질긴 면직물로 입기 편하게 만든 바지), 점퍼. 평범하고 편안하면서도 너무 헐렁거리지는 않는 청바지와 데크 슈즈(천이나 부드러운 가죽으로 잘 미끄러지지 않게 만든 낮은 신발). 이런 아이템 중 어느 하나라도 애용한다면 당신은 ‘놈코어’일 가능성이 있다. 놈코어는 패션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이 시대의 패션 아이콘으로 불릴 만한 부류다.

놈코어는 2014년의 인터넷 밈(인터넷에서 급속히 전파되는 이미지나 콘셉트)으로 불린다. 이 용어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뉴욕의 트렌드 예측 회사 K-홀에서 놈코어의 개념을 ‘평범한 반(反)스타일’로 기억하기 쉽게 소개하면서부터다.

K-홀은 이렇게 설명했다. “놈코어는 특별하지 않은 데서 해방감을 찾는다. 그리고 그런 적응성은 소속감으로 이어진다.” K-홀은 또 놈코어가 ‘열망적인 소비자’ 시대의 뒤를 잇는다고 설명했다.

개성보다 순응을 우선시하는 개념이다. 또 최근 뉴욕 매거진은 놈코어를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 인정하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놈코어를 “자신이 세계 70억 인구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패션”이라고 정의했다.

놈코어는 트렌디한 것을 따르지 않는 트렌드다. 패션에 신경을 쓰지 않는 패션을 쿨하다고 보는 경향이다. 스타일보다는 편안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옷차림. 정해진 틀 없이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옷 입기. 평범함의 즐거움.

놈코어가 기존의 패션 문화에 약간의 자극이 됐을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 현상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철학가인 알랭 드 보통은 이 현상이 매우 의미 있으며 사람들이 이상(플라톤의 철학에서 말하는 이상)적으로 옷 입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놈코어는 이상적인 것의 추구”라고 그는 말했다. “완벽한 티셔츠는 완벽한 연필이나 탁자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최신 스타일로 교체할 필요가 없다. 그 자체로 이미 추구하는 본질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 하나의 이상적인 것을 좋아한다. 하나의 신, 한 명의 파트너 등 일신론적 경향이 짙다. 그런 성향은 때때로 의상에도 적용된다. 한 가지 스타일의 티셔츠. 그 궁극적인 예가 유니폼이다. 디자인이 좋을수록 다른 스타일로 바꿀 필요성이 적어진다.”

역설적이게도 빠른 순환을 바탕으로 하는 패션이 이런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2월과 3월 뉴욕과 파리, 밀라노와 런던의 패션 주간에 놈코어가 화제가 됐다. 파타고니아산 플리스가 마크 제이콥스의 패션쇼 무대에 등장했다. 또 영국 모델 에디 캠벨은 보그 프랑스판 최근호에서 셀린의 ‘퍼켄스탁’을 신었다. 버켄스탁 샌들에 모피를 접목한 제품이다. 요즘은 기능성을 강조하는 노스페이스와 뉴발란스가 장안의 화제다. 패션이 패션 스스로에게 등을 돌렸다.

사람들은 고급 패션 브랜드에 싫증이 났다. 아니, 그런 제품을 입는 사람들보다 입지 않는 사람들이 더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스타일 전문 편집자는 “패션은 사람을 맹목적인 추종자로 보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보그 미국판의 편집위원 플럼 사이크스는 “사람들은 늘 유행하는 ‘패션’을 입는 일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는다”고 말했다.

놈코어 바람은 세계 정치 무대에도 스며들었다. 가십 웹사이트 고커는 “오바마 대통령은 푸틴을 이기기에는 놈코어 성향이 너무 강할까?”라고 물었다. 또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버즈피드는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 평범한 검은색 재킷을 입고 흰 양말과 흰 운동화를 신은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을 싣고 “이것이 과연 스타일 아이콘의 모습인가?”라는 설명을 달았다.

한편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부인 사만다와 닉 클레그 부총리, 윌리엄 왕세손의 사촌 자라 필립스, 콘월 공작부인(찰스 왕세자의 부인 카밀라)과 케임브리지 공작부인(윌리엄 왕세손의 부인 케이트)이 모두 놈코어 지지자로 꼽힌다. 케임브리지 공작부인은 의외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맞다.

그녀는 알렉산더 매퀸 같은 고급 패션을 입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패션의 희생자(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데도 언제나 최신 유행을 따르는 사람)라기보다 기능을 우선시하는 드레서다. 옷으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기보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옷을 입는 편이다.

놈코어는 빠르게 변하는 고급 패션의 유행에 맞춰 옷을 입는 경향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일깨워준다. 유명 축구선수의 부인이나 러시아 과두재벌의 여자친구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놈코어는 고급 패션에 거울을 들이대고 그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람직하기보다는 이상하고 헛되며 과시적인 패션이다.

놈코어는 옷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다른 면에선 별 볼 일 없을 거라는 지각 있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출발한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자신의 모자나 신발, 어깨 패드 등으로 사람 됨됨이를 평가 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꽉 끼는 스팽크스 보정 속옷에 억지로 몸을 끼워 넣거나 불편하기 짝이 없는 루부탱 하이힐에 발을 구겨 넣거나 남들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샤넬이나 루이뷔통 핸드백을 집어들 때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볼 수 있을까? 차라리 ‘난 멍청하고 불안하지만 이런 비싼 상품들을 휘감고 다닐 만큼 돈이 많다’고 써 붙이고 다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유럽의 놈코어는 미국과 다르다. 미국에서는 야구 모자와 흰 티셔츠가 기본적인 아이템이지만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회색 말(marl) 섬유와 플리스는 보편적인 놈코어 아이템이다. 형태야 어떻든 놈코어는 패션계에 참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이 한 단어에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의 모든 뜻이 담겨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최근 영국 캐주얼웨어 체인 잭 윌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런던의 디자이너 리처드 니콜의 말을 들어보자. “놈코어는 이렇게 말한다. ‘난 영혼과 지식이 있다. 그리고 난 특별하다. 그것을 굳이 소리쳐 외칠 필요는 없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디자이너 핍 하우슨도 같은 생각이다. “사람들이 고급 패션에 물린 듯하다. 자신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과시하지 않는 경향이 참신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경향이 또 하나의 새로운 부류를 만들어냈다. ‘내게는 옷보다 더 가치 있는 뭔가가 있다. 내 마음 속엔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듯한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과 일맥상통한다. 놈코어를 입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옷으로 자신을 평가하기 전에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이탈리아 태생의 패션 잡지 편집자 잔루카 롱고는 현재 런던의 V&A 박물관에서 열리는 ‘1945-2014 이탈리아 패션의 매력’ 전시회에 일조했다. 하지만 그 역시 놈코어의 개념에 매혹됐다. “놈코어를 정말 좋아한다. 앞으로 더 인기를 끌게 되기를 바란다. 패셔니스타들이 길거리 사진가들의 눈길을 끌려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타나는 걸 보는 데 신물이 난다. 패션계에서 진정한 놈코어 실천자는 모델들이다. 그들은 패션쇼를 끝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면 자신이 좋아하는 블랙 진바지에 헐렁한 티셔츠와 블레이저를 입는다.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여전히 그 자리의 어느 누구보다도 멋지다.”

플럼 사이크스는 패션계의 고위급 인사 대다수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놈코어를 입는다고 말한다. “여자들은 대담하고 개성 있고 화려한 패션을 좋아한다. 하지만 거기엔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직장 여성 대다수가 놈코어라고 불릴 만한 유니폼을 입는다. 검정색 바지와 검정색 탑을 입고 평범한 단화를 신는다. 이 단순한 옷차림은 잘 만들어진 제품이라면 입기 편할 뿐 아니라 보기에도 좋다. 보그 미국판의 패션 감독 그레이스 코딩턴은 회사에 나갈 때는 검정색과 흰색의 평범하고 단순한 옷만 입는다.”

놈코어가 퍼질 만큼 퍼져서 이제 사그라들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사이크스는 놈코어에는 자연적인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일상적인 유니폼을 입어온 여성들은 곧 예쁜 원피스를 동경하게 되기 때문”이다. 드 보통은 이렇게 경고한다. “반패션을 표방한 뭔가는 그 자체가 패셔너블한 것으로 과장된다는 점이 놈코어의 모순이자 위험이다. 따라서 곧 인기를 잃게 된다.”

놈코어는 이미 하위 문화를 낳았다. 아방-놈코어(아방가르드와 놈코어가 결합한 패션), 하드코어 놈코어(놈코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놈코어적 성격을 띤 패션), 안티-놈코어(놈코어를 증오하는 사람들) 등이다. 놈코어가 벌써 한물 간 걸까? 우리 곁에 있는 동안 실컷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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