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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 교복 업계 ‘시련의 계절’ - 학생 줄어드는데 학교 일괄 구입 직격탄까지

Business | 교복 업계 ‘시련의 계절’ - 학생 줄어드는데 학교 일괄 구입 직격탄까지

서울의 한 교복 대리점. 내년 ‘학교주관구매제’ 시행을 앞두고 교복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20여년 전만 해도 교복 사업 뒤엔 ‘알짜 현금 장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경제 성장에 따라 중·고교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고객이 늘었다. ‘나는 굶어도 내 자식만은 최고로 키운다’는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열도 한 몫 했다. ‘교복은 패션이다’라는 광고 문구가 등장한 것도 이맘때쯤이다.

정치권에선 지역별로 유난히 교복 대리점을 운영하는 기초의원이 많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교복집이 지역 유지로 가는 발판’이란 농담도 있었다. 수익이 쏠쏠한데다 학부모를 많이 상대해 자연스레 표 관리도 된다는 그럴듯한 이유가 붙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년부터 학교서 최저가 입찰로 공동 구매최근 교복 업계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출산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교복을 입을 학생 수 자체가 줄어서다. 1983년 중·고교 학생 수는 각각 267만명, 201만명이었다. 10년 뒤 241만명, 207만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던 학생 수는 2003년 185만명, 177만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2013년에는 180만명, 189만명이었다. 10년 새 크게 줄지 않았다고 안심할 게 아니다. 2003년 418만명이었던 초등학생 수는 2013년 278만명으로 33.3%나 줄었다.

불과 몇 년 뒤 중·고교에 진학할 학생이 대폭 감소한다는 의미다. 고객이 줄어드니 제조업체 입장에선 가격이라도 조정해 실적을 맞추고 싶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매년 ‘가격 논란’이 반복되면서 인상은커녕 가격을 낮춰야 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잘 나가던 교복 업체들이 줄줄이 위기에 처한 이유다.

국내 교복시장 규모는 연간 약 43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에리트 베이직, 아이비 클럽, 스마트, 스쿨룩스 등이 ‘빅4’로 불린다. 이들의 시장점유율 합계는 약 75.4%다. 에리트 베이직, 아이비 클럽이 1~2위를 다투고 있는데 매출은 각각 약 800억원(교복 매출 기준) 정도다.

가격 논란이 잇따르자 정부가 규제에 나서면서 성장은 거의 정체 상태다. 교육부는 교복 상한 가격으로 20만3084원(동복), 7만9225원(하복)을 제시한 바 있다. 2010년에 비해 ‘빅4’의 점유율은 0.7~1.8% 가량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빅4 각 사가 아이돌 가수 등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내세우는 등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힘든데 교복 업체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게 됐다. 내년부터 ‘학교주관구매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는 학생이 아닌 학교(전국 국·공립학교)가 회계 절차에 따라 교복 구매를 주관하는 제도다. 학교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 디자인을 선정한 뒤 입찰 공고를 내면 각 교복 제조업체가 입찰에 참여해 학교별로 계약하는 방식이다.

구매 계획을 세울 때 학교는 반드시 시·도 교육청이 정한 가격 상한선을 지켜야 한다. 시·도 교육청 역시 교육부가 정한 가격 상한선을 지켜야 한다. 전자 경쟁 입찰을 통해 (제한적)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가 낙찰된다. 학교주관구매제는 2015년 신입생부터 적용된다.

가장 큰 변화는 교복 선택과 구매의 주체가 학생·학부모에서 학교로 바뀐다는 점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복을 입도록 규정한 것은 공적 영역이었으나 교복을 구입하는 문제는 이제껏 시장의 자유 경쟁에 내버려둔 측면이 있었다”며 “그동안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불만이 누적돼 왔고, 이에 따라 교육부와 교육청이 일정 부분 개입해 가격 안정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학부모들은 일단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중·고교 자녀 두 명을 키운다는 김영아(47)씨는 “교복 가격이 비싼 것도 문제지만 브랜드별로, 대리점별로 가격이 다른 게 더 문제”라며 “학교에서 같은 가격에 구입하면 이런 문제가 많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자녀를 둔 김미례(46)씨는 “교육부가 20만원 정도로 가격 상한선을 정했지만 브랜드 교복은 여전히 25만~30만원 정도를 줘야 하고, 와이셔츠나 바지를 추가하면 10만원 정도가 더 든다”며 “교복 업체들이 교육부와 협의한 뒤에도 여전히 상한선보다 높은 가격에 교복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영세 제조업체·대리점 문 닫으란 얘기냐’ 반발교복 업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한 업체 관계자는 “교복 원가가 10만원 이하라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원가”라며 “운송비·마케팅비·보관비 등이 추가로 들고 교복을 직접 판매하는 대리점도 최소한 마진을 남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업계에서는 학교주관구매제가 내년 본격 시행되면 제조업체는 물론 납품업체·대리점 등이 줄줄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13일 교복 대리점주, 교복 납품업체, 하청업체 직원 등으로 구성된 한국교복협회 회원 1000여 명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모여 집회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교육부가 교복 업체들을 폭리를 취하는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다”며 “학교주관구매제는 영세 사업자를 옥죄는 탁상행정”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대리점주는 걱정이 크다. 대전에서 교복 대리점을 운영하는 김태섭(가명·55)씨는 “학교에서 교복을 통째로 구입하라는 건 대리점을 아예 없애라는 것과 같다”며 “제조사야 입찰에라도 참여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떡하라는 얘기냐”고 말했다.

실제로 학교주관구매제는 시장 상황을 무시한 과도한 규제라는 반론이 있다. 개인의 교복 선택권을 제한하는데다 저가 입찰에 따른 품질 저하도 걱정스런 부분이다. 업계에선 입찰 과정과 생산 과정 사이의 불일치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신입생의 사이즈 측정을 학교 배정 이후인 2월에 진행하게 되는데 3월 입학식까지 1개 업체가 단독으로 모든 학생의 교복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교육부는 교복 착용시기를 늦추면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학부모는 사복 구입 등으로 이중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주관구매제가 시행되면 시즌 판매 계획에 따라 미리 물량을 수주해 생산하는 봉제공장 등이 사전 제작을 할 수 없고, 수개월 동안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부가 학교주관구매제 대상을 국·공립에서 사립학교로 확대할 계획이어서 업계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의 생존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거나 준비 기간이라도 더 줘야 하는데 시행에만 초점을 맞춰 교육부가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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