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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이 살아가는 법

제인 구달이 살아가는 법



‘침팬지의 어머니’ 제인 구달




1934년
4월 3일 런던 출생.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해, 10살 무렵부터 아프리카로 가서 동물과 함께 사는 삶을 꿈꾸었다.



1957년
케냐로 건너가 고생물학자 리키와 함께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



1960년
탄자니아 곰베에서 야생 침팬지들과 함께 지내며 본격적으로 침팬지를 연구했다.



1966년
2월 9일 케임브리지대에서 동물행동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
전세계의 동물 연구를 후원하는 야생동물 연구·교육·보호를 위한 제인 구달 연구소(JGI)를 설립했다. 지금도 JGI는 침팬지와 다른 야생동물들이 처한 실태를 알리고 서식지 보호와 처우 개선을 장려하는 일을 하고 있다.



1991년
탄자니아에서 청소년의 자연보호 운동을 위해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을 창설했다.



2003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전 지구의 환경 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남자의 기사에 해당하는 ‘데임’ 작위를 받았다.



2002년
유엔 ‘평화의 메신저’로 임명돼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구 위 모든 종(種)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오후 5시쯤 벅넬대에 도착했다. 캠퍼스 안의 웨이스 예술센터 주변에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혹시 세계적인 팝스타가 왔나?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들은 땅에 주저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젊은 부모와 베이비부머 세대가 몇 사람씩 모여 담소를 나눴다. 일부는 해변용 의자에 누워 도시락을 먹었다. 그들의 아이들과 손자들은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렸다.

벅넬대가 위치한 펜실베이니아주 루이스버그는 주변에 큰 공항이 없다. 어디서 오든 두세 시간은 걸린다. 그런데도 6시 45분 강당 문이 열리자 1200명 이상이 환호성을 올리며 달려 들어갔다.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루이스버그 주민도 있었지만 훨씬 더 멀리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를 보러 그 먼 길을 달려왔을까? 제인 구달이 그 날의 주인공이었다. 구달은 영장류 동물학자에서 사회 운동가로 변신했다. 침팬지에 관한 그녀의 혁명적인 발견은 유전학적으로 인류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영원히 바꿔 놓았다.

구달은 1960년대 탄자니아 곰베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는 너무도 유명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기사와 다큐멘터리로 전세계에 상세히 소개됐다. 호리호리하고 금발인 젊은 여성 구달이 쌍안경을 들고 덤불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은 메릴린 먼로가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젖혀지려는 흰 드레스 자락을 양 손으로 누르던 모습만큼이나 익숙하다.

구달은 침팬지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재정의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과 동물 세계에 관한 우리의 오랜 믿음을 뒤집었다. 그 성과로 구달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 과학자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연구만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소녀와 여성에게 영감을 준 공로로도 존경 받는 인물이 됐다.

벅넬대와 가까운 곳에 있는 블룸스버그대에서 인류학·생물학을 전공하는 에이미 스탠키위츠(25)는 맨 앞 줄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녀는 오후 2시 40분부터 기다렸다고 했다. “난 그녀의 정기를 전부 빨아들인 다음 그녀의 유산을 깨부술 생각”이라고 스탠키위츠가 구달을 두고 말했다. 그녀 바로 뒤에 있는 젊은이들이 어안이 벙벙해서 쳐다봤다.

스탠키위츠는 멋쩍게 웃으며 이전에 제인 구달 연구 센터(JGI)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난 오늘 이곳에 뭔가를 배우려고 왔지만 그녀의 정기도 흡입하고 싶다. 그녀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뒤를 이어야 한다. 유쾌하지 않은 표현이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그녀가 누구인지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

 뿌리와 새싹

얼마 전 벨기에 브뤼셀에서 자신의 팔순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석한 제인 구달.
구달이 주도하는 환경·봉사운동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소년이 138개국에 15만 명이나 된다. 또 벅넬대의 강당을 메운 청중 중에는 어린이도 많았다. 그런데도 구달의 애칭인 ‘제인 박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나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구달은 올해 만 80세가 됐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기사가 나면서 명성을 떨쳤던 그녀의 전성기는 지난 지 오래다. 밀레니엄 세대(millennials, 1982~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 Y세대라고도 한다)부터 기저귀를 찬 아이들까지 젊거나 어린 세대에겐 구달만큼 존경스럽지는 않지만 충분히 반할만한 더 신선한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

구들은 1년에 300일은 세계를 돌아다닌다. 일생의 연구만이 아니라 멸종위기에 처한 종을 구하고, 유전자 변형 식품에 반대하고, 밀렵과 야생생물 밀거래와 싸우는 갖가지 사회운동에 관한 강연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다. 무엇보다 구달은 어린 세대가 지구에 관해, 또 서로에 관해, 그리고 미래에 관해 애정을 갖고 행동하도록 영감을 주고자 한다.

열성팬들은 그녀의 강연 일정을 꿴다. 테레사 수녀나 넬슨 만델라가 살아나 무대에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듯이 말이다. 또 그들은 서명 받을 책을 가득 담은 배낭을 지고 행사장에 나타난다.

구달이 강연할 때마다 청중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녀가 우리 모두 매일 변화를 이뤄 낼 수 있다고 말할 때는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망가뜨린 곳을 여러분이 복구하고 보호하고 시간을 갖고 도움을 주면 그곳은 다시 아름답게 태어납니다.” 판에 박힌 기념일 카드의 전형적인 문구처럼 들리지만 일단 구달의 강연을 들으면 그런 말도 복음처럼 들린다.듀크대 진화인류학 교수로 JGI소장인 앤 퓨지는 이렇게 말했다. “구달의 강연 모습을 수차례 지켜보고 저서 서명행사에서 그녀 곁에 앉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다가가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녀 앞에 서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떤다. 정말 놀랍다. 사람들은 그녀를 진짜 록스타처럼 생각한다.”

황갈색 누비저고리를 입은 금발 소녀가 펄쩍펄쩍 뛰며 “들여보내주세요! 제발요!”라고 외쳤다. 여섯 살 난 줄리엣 포레스트였다. 줄리엣은 수의사가 되는 게 꿈이 다. 안에는 행사 요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줄리엣은 마치 산타가 등장할 때처럼 유리문에 코를 바짝 대고 간청했다. “제발요!”

“아들이 어렸을 때 우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와 PBS 방송에서 제인을 봤어요. 우리는 제인(구달)이 곰베에서 이름 붙인 침팬지 세 마리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David Greybeard, 회색수염 때문에 붙인 이름)’, ‘플린트(Flint)’, ‘플로(Flo)’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세히 알 수 있었어요.” 줄리엣의 할머니 다이앤 포레스트가 말했다. “줄리엣에게 제인에 관한 어린이 책을 읽어주었어요. … 우리는 몇 달 동안 인터넷으로 제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봤어요.” 포레스트 가족은 그날 아침 피츠버그에서 네 시간을 차로 달려 벅넬대에 도착했다.

갑자기 줄리엣이 문 손잡이를 잡고는 뛰어올랐다. 마치 침팬지가 나뭇가지를 붙들듯이 다리로 공중을 차면서 “제인 구달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여자예요!”라고 줄리엣이 외쳤다.
 매력적인 여성들
2013년 11월 23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강연회에 참석한 제인 구달.
구달이 곰베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할 때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미국 여권운동(feminism)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스타이넘은 1960년대 젊은 기자로 뉴욕에서 피임과 낙태 문제를 취재하며 여권운동의 영역을 넓혀갔다. 1972년에는 잡지 미즈(Ms.)를 공동 창간해 가장 먼저 여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곧 스타이넘은 기자를 그만두고 여성해방운동의 지도자가 됐다.

구달이나 스타이넘이나 미모가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타이넘은 모델처럼 매력적이었다. 너무도 섹시해 성인잡지가 운영하는 플레이보이 클럽에 바니걸로 위장하고 들어가 그 내부를 취재했을 정도였다. 그녀 덕분에 여성들은 남성 혐오성 발언을 큰 목소리로 외친다는 비난을 받지 않고도 여권운동가가 되기 쉬워졌다.

구달의 경우 빼어난 외모 덕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표지 인물이 될 수 있었다. 푸지는 이렇게 돌이켰다. “언젠가 제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젊고 금발이고 예쁘지 않았다고 해도 삶이 지금과 같았다고 생각하는가? 그녀는 ‘천만에’라고 답했다.”

지난 9월 21일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뉴욕의 거리행진에 구달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 등과 함께 참여했다.
올해 초 스타이넘과 구달 두 사람 모두 80세가 됐다. 스타이넘은 보츠와나에서 코끼리를 타고 생일을 자축했다. 구달은 매년 가장 많은 날 동안 하는 일을 하며 생일을 보냈다. 강연을 하고, JGI를 위한 모금행사를 열고, 팬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구달과 스타이넘이 유리천장(glass ceiling, 여성의 출세를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조금씩 깨뜨리기 시작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특히 여권을 두고 열띤 논란을 벌이는 곳에서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1960~70년대의 여성운동 선구자들을 이야기할 때 스타이넘, 베티 프리던, 벨라 앱저그 등은 거론되지만 구달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모아둔 웹사이트 메이커스닷컴(MAKERS.com)에는 스타이넘, 힐러리 클린턴,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매들린 올브라이트 같은 명사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그 사이트는 여성 250명 이상을 다루지만 구달은 거기에 없다. 그녀가 여권운동가로 자처하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구달은 늘 자신이 하는 일을 떠벌리지 않고 묵묵히 실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이었다.

구달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권운동가로 칭해지기를 원치 않았어요. 나는 그들과 다른 세계에서 성장했어요. 우리 가족 중에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게 참 좋았지요. 내가 다른 상황에서 성장했더라면, 다시 말해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할 일을 못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나도 글로리아 스타이넘 같은 인물이 됐을지 몰라요.”
 ‘나도 멍청할 수 있어요’
2010년 9월 중국 베이징의 한 중학교에서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이 개최한 행사에 참석해 학생과 교사들에게 상을 주는 구달.
“내가 더 큰 방을 달라고 요구했어요”라고 구달은 농담조로 말했다. 우리는 천장이 아주 높은 강당으로 걸어갔다. 노란 벽에 좌석이 수백 개나 됐다. 뉴욕시 유엔 본부에 있는 강당으로 ‘국제평화의 날’ 행사가 열리는 곳이었다. 구달은 세계 전역에서 유엔의 노력을 홍보하기 위해 시간과 명성을 기부하는 ‘평화의 메신저(Messenger of Peace)’ 12명 중 한 명이었다.

구달은 키가 작고 호리호리했다. 늘 그렇듯 은발을 뒤로 묶었고, 아이보리색 셔츠 위에 황갈색·푸른색이 조화를 이루는 숄을 걸쳤다. 말을 할 때면 그녀의 얼굴에 모나리자의 미소가 간간히 나타났다. 우리는 한 구석의 테이블에 앉았다. 강렬한 조명이 우리를 내리비추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이걸 써도 괜찮겠죠?” 구달은 선글라스를 펼쳤다. “눈에 거슬리진 않겠죠? 당신은 내 눈을 못 보겠지만 내가 당신 눈을 볼게요.”

구달을 인터뷰할 때는 기자가 인터뷰 대상으로 역할이 바뀌어 도리어 관찰당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관찰자 중 한 명이 아닌가? 그런데도 그녀는 불편할 정도로 상냥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죠”라고 구달이 말했다. “하지만 나도 멍청할 수 있어요. 난 아주 평범한 인간이에요.”

구달은 영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늘 집에 없었고 어머니는 헌신적이었다. 아프리카로 가는 꿈을 꾸지 않은 적이 없다고 그녀는 자주 말했다. 그녀에 관한 일화들은 너무도 잘 알려져 문화적인 신화가 됐을 정도다.

예를 들어 그녀에게는 ‘주빌리’가 있다. 아버지가 첫 돌 생일선물로 준 침팬지 봉제완구다. 그 침팬지는 너무도 쓰다듬어 머리가 벗어져 요즘은 주로 영국의 자택에 두고 다닌다. 그녀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책도 유명하다. ‘닥터 두리틀 아프리카에 가다(The Story of Dr. Dolittle)’와 ‘유인원 타잔(Tarzan of the Apes)’이다. 구달은 강연 중 툭하면 이런 농담을 던진다. “타잔은 (내가 아니라) 엉뚱한 제인과 결혼했거든요.”

애견 ‘러스티’도 있다. 동물도 성격과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애견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구달은 만 한 살 반이 됐을 때 침대로 벌레 한 움큼을 가져갔다.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고 그 벌레들을 정원으로 가져가 놓아주었다.

다섯 살 때 구달은 몇 시간 동안 닭장에 숨어 있었다. 닭장 안에서 닭들을 관찰하고 있는 동안 가족들은 아이를 찾아다니다가 급기야 경찰까지 불렀다. 구달은 다섯 시간 뒤 닭장에서 나왔다. 옷이 구겨지고 밀짚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 그 아이는 빙그레 웃었다. 어머니는 꾸짖지 않고 암탉이 어떻게 알을 만들어내는지 딸이 알아낸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 끈기있게 들어주었다.

“돌아보니 어린 과학자가 탄생하는 과정이었어요”라고 구달이 말했다. “호기심과 의문, 올바른 답을 얻지 못하고 혼자서 알아내려고 끙끙대며 실수를 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시도하며 인내심을 기른 것이 전부 그 과정이었죠. 어머니가 그런 아이를 붙들고 ‘어떻게 말도 없이 사라질 수 있어?’라고 다그쳤다면 모든 흥미와 관심이 사라져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야생의 침팬지
2012년 11월 14일 서울대공원의 남방큰돌고래 야생 방류 성공 기원행사에 참석한 제인 구달과 최재천 교수.
구달의 가족은 딸을 대학에 보낼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구달은 비서학교에 다녔다. 1956년 5월 한 친구가 케냐에 있는 가족 농장으로 그녀를 초대했다. 구달은 케냐 동부 몸바사까지 오가는 여비를 모으려고 음식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배를 타고 3주나 걸려 그곳에 도착한 뒤 기차를 타고 나이로비로 갔다.

구달은 그곳에서 한 주를 지낸 뒤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케냐가 그냥 너무 좋아요. 자연 그대로 거칠고 원시적이며 흥미진진하고 예측이 불가능해요. 지금 전 늘 뛰는 가슴으로 그리워하던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어요.”

나이로비에서 구달은 루이스 리키를 만났다. 고인류학자로 인류 진화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입증한 획기적인 발견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구달은 동물에 관해 이야기할 생각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그녀는 리키의 비서가 됐다. 리키는 구달에게 적합한 훨씬 큰 계획을 갖고 있었다.

리키는 야생의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인간과 영장류의 조상을 추적하는 단서를 찾아줄 사람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구달은 다큐멘터리 ‘야생의 침팬지(Wild Chimpanzees)’에서 이렇게 돌이켰다. “난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자격이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리키에겐 구달이 적임자였다. 리키는 여성의 인내심과 겸손한 태도가 야생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데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구달이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독자적인 관점에서 침팬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침팬지에게 ‘패션(passion, 열정)’, ‘사탄(Satan, 악마)’, ‘노프(Nope, 거절하는 반항아)’, ‘머스타드(Mustard, 겨자)’ 같은 이름을 지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학적인 방법론과 엄격한 숫자 분류체계는 필요 없다고 그는 느꼈다.

그렇다고 리키의 의도가 전적으로 순수한 건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들을 좋아했다. 구달은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와 함께 리키의 ‘여성 삼총사’로 이름을 떨쳤다. 유인원을 연구하도록 리키가 야생으로 보낸 여성들을 일컫는다. 그의 호색적 성향을 두고 어떻게 이야기해도 좋지만 중요한 건 리키가 재능을 알아봤다는 사실이다. 그 여성 세 명은 전부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났다. 포시는 르완다에서 고릴라를 연구하던 중 1985년 캠프 숙소에서 살해됐다(사건은 미결로 남았다). 갈디카스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우랑우탕을 연구했으며 지금도 국제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그 초창기 시절 리키는 구달에게 연애편지를 보내고 장미꽃을 선사하고 함께 밤을 지내려 했다. 리키 가족의 전기 ‘조상에 대한 열정(Ancestral Passions)’을 쓴 버지니아 모렐은 이렇게 적었다. “리키는 50대로 과체중이었고 백발에다 치아도 나빴다. 구달의 마음에 둘만한 남자가 아니었다.” 구달은 리키의 치근댐을 무시했다. “그가 내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었지만 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난 늘 약간 불안했어요. 그가 여자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무시하면 내가 좋은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구달이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하고 넘어가죠. 아무튼 난 미래를 약속하는 좋은 기회를 잃지 않았어요.”
 ‘꿈이지 생시가 아니야’
침팬지와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제인 구달.
곰베는 탕가니카 호수를 끼고 길게 뻗은 구역으로 면적이 52㎢다. 지형이 길고 바위가 많은 해변과 그에 인접해 솟은 산들은 밀림으로 덮여 있다. 골짜기와 협곡이 많고 올라가면 덩굴식물이 얽혀 있으며 더 위로 가면 나무가 듬성듬성한 초원이 나타난다. 맨 꼭대기에는 나무 하나 없다. 십여 개의 개울이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밤이면 특히 비가 온 뒤엔 흙과 나무의 원색적인 냄새가 가득하다. 야행성 쏙독새가 울어대고 갈라고 원숭이들이 서로를 부른다. 멀리서 야자가 쿵! 하고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해뜨기 직전에는 더 많은 새가 짹짹거리기 시작한다. 귀뚜라미가 울고 개코원숭이가 짖고 원숭이들이 나무 위의 둥지에서 바스락거린다.

1960년 7월 14일 구달은 들어갈 수 없는 늪지대처럼 보이는 이런 별세계에 텐트 하나, 조리 기구와 식량 약간, 싸구려 쌍안경만 갖고 처음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녀에겐 타고난 관찰력이 있었다. 그때 나이 26세였다. 리키의 도움으로 구달은 곰베의 침팬지 예비연구를 위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제인 구달(80)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제인 구달’(감독 로렌츠 크나우어)이 오는 11월 27일 국내 개봉한다.
그때만 해도 아프리카는 암흑 대륙으로 불렸다. 신비하고 위험이 도사린 땅이었다. 젊은 여성이 혼자 밀림을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탄자니아(당시 이름은 탕가니카)를 신탁통치하던 영국 정부는 구달에게 동료를 데려가라고 요구했다. 어머니와 아프리카인 조리사가 동행했다. “건기였어요. 우리는 보트를 타고 탕가니카 호수변을 따라갔어요. 산들이 솟아 있었고 계곡은 밀림으로 덮여 있었죠.” 구달이 돌이켰다. “나는 ‘이 넓은 곳에서 작은 내가 도대체 어떻게 침팬지를 찾을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어요."

첫날, 어울리지 않는 세 명이 캠프를 세우고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정리했다. 곧 구달은 혼자 숲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부근의 한 언덕에 올라갔다. “개코원숭이와 새가 우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나요.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 나는 그곳에 앉아 생각했어요. ‘이건 꿈이야. 현실일 수 없어.’ 그날 밤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야자수 아래 작은 간이침대를 펴고는 그 위에 누워 생각했어요. ‘이건 생시가 아니야.’”

매일 아침 구달은 혼자 침팬지를 찾아 나섰다. 처음엔 침팬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하얀 유인원’인 나를 힐끔 보고는 그냥 사라져버렸어요.” 구달이 말했다. 매일 밤 그녀는 실망하며 캠프로 돌아갔다. 자금이 바닥나고 리키를 실망시킬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도 구달은 버텼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침팬지들이 그녀에게서 달아나지 않았다. 어느 날 회색 수염을 가진 침팬지가 캠프로 다가왔다. 구달은 그 침팬지에게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허용한 최초의 침팬지였어요”라고 구달이 말했다. 그러자 다른 침팬지들도 뒤따라 캠프로 다가왔다.
 혁명적인 발견
‘희망의 자연’을 출간한 제인 구달이 2010년 9월 28일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10월 말 구달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가 희한한 것을 들고 가는 것을 봤다. “핑크색처럼 보였다”라고 구달은 현장 일지에 적었다. 처음에는 침팬지 새끼거나 꿀덩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고기였다. 침팬지는 채식동물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었다. 한 주 뒤 구달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가 나뭇가지에서 잎을 떼어낸 뒤 그 막대기로 땅을 쑤시며 흰개미를 주워 먹는 것을 목격했다. 그 관찰은 도구를 만들 수 있는 게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리키는 구달이 발견한 것을 전해 듣고는 이런 유명한 선언을 했다. “이제 우리는 도구와 인간을 재정의하거나 아니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구달의 연구를 보고 신이 난 리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보조금을 지원받는 데 도움을 주면서 그녀에게 동물 행동학(ethology) 박사학위를 따야 한다고 고집했다. 구달은 1962년 케임브리지대에 도착했지만 동료들은 학사 학위도 없다는 이유로 그녀를 업신여기고 그녀의 연구 기법을 비판했다. 특히 그녀가 침팬지에게 숫자 대신 이름을 붙이고 침팬지의 성격과 정서적인 삶을 논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당시만 해도 동물을 인격화하는 것은 진지한 과학자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죄’였다.

구달은 이렇게 돌이켰다. “사실 난 과학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케임브리지에 간 것은 오로지 루이스 리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나 그런 시련을 이길 수 있었던 건 내가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었죠. 나는 내가 옳다는 것을 알았어요.”
 인류를 재정의하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키스빌의 침팬지 보호지에서 실험실에서 은퇴한 침팬지가 놀고 있다.
구달은 침팬지가 고유한 개성을 가졌으며 서로 정서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녀는 침팬지의 공격성을 연구했고, 곰베 침팬지들 간에 벌어진 4년 동안의 전쟁을 기록했으며, 어미와 새끼 사이의 유대를 파악했다. 그런 사실이 하나씩 확인되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진화적 간극이 좁혀졌다.

구달은 침팬지와 같이 지내면서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들을 이야기하면서 ‘플로’가 새끼 ‘플린트’에게 처음으로 그녀를 만지도록 허용했을 때를 돌이켰다. 또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가 그녀의 손에서 바나나를 가져갔을 때, ‘운다’가 보호구역에 방사되기 직전 구달을 오랫동안 포옹한 순간도 애틋하게 회상했다. 곰베 침팬지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영화 각본에 나오는 인물들의 미묘한 분석처럼 읽힌다. 우정, 연애, 병치레(1966년 곰베에 소아마비가 유행했을 때 침팬지 6마리가 죽거나 실종됐고 다른 여섯 마리는 불구가 됐다)까지 아주 세세하게 설명된다.

구달은 곰베에서 거의 사고 없이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다가 1974년 5월 19일 사건이 터졌다. 반군 지도자 로랑 카빌라의 부하들이 구달의 연구 보조원으로 일하던 학생 4명을 납치했다. 그들은 구타를 당하고 움막에 갇혀 탄자니아 정부에 몸값 약 50만 달러를 요구하는 편지를 강압적으로 써야 했다. 탄자니아 정부 관리들은 몸값 지불을 거부했다. 그러나 몇 주 뒤 그 학생들의 가족이 성금을 모아 몸값을 지불했다.

JGI 곰베 연구센터의 개코원숭이 연구 책임자인 앤서니 콜린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그 사건으로 곰베에선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식이 영구히 바뀌었다. 주된 기부기관이던 WT 그랜트 재단이 재정 지원을 중단했다. 2년 뒤 구달은 독자적인 연구소 JGI를 설립했다.

1986년 구달은 시카고에서 열린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학술회의에 참석했다. 그 회의가 그녀의 인생 경로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구달의 획기적인 저서 ‘곰베의 침팬지들(The Chimpanzees of Gombe)’이 발간된 직후였고 곧 제2권을 쓸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회의에서 구달은 침팬지 서식지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숲이 사라지고 있었다. 불법 야생동물 고기 거래가 만연했고 침팬지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몰래 촬영한 동영상에는 침팬지들이 의학연구소에서 작은 우리에 갇혀 살고 있었다.

데일 피터슨이 쓴 전기 ‘제인 구달: 인류를 재정의한 여성(Jane Goodall: The Woman Who Redefined Man)’에서 구달은 이렇게 돌이켰다.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는 내가 분명히 연구 과학자였어요. 하지만 그곳을 떠날 때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자연보존과 교육에 전념하고 있었어요. ‘곰베의 침팬지들’ 제2권을 쓸 생각이 사라졌어요. 내가 힘이 있고 활동할 수 있는 동안은 그 책을 쓰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요즘 JGI는 유인원과 보존, 연구에 관한 인식 제고를 목표로 삼는다. 1991년 탄자니아에서 10대 12명으로 시작된 ‘뿌리와 새싹’ 프로그램은 젊은이들이 지역사회에서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장려하는 영향력 큰 풀뿌리 운동으로 성장했다. 구달은 그런 운동에 관한 책 25권을 집필했고 명예 학위도 47개나 받았다. 2002년 구달은 유엔 평화 메신저에 임명됐다. 2년 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은 구달에게 남성의 기사 작위에 해당하는 ‘데임(Dame)’ 작위를 수여했다.

요즘 구달은 종종 지구의 미래를 암울하게 묘사한다. 오염과 물 부족부터 빈곤과 인구 증가까지. 그러나 그녀는 양극화를 초래하지 않고 접근 가능하며 동기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자연보존 운동을 펼친다. 프랜시스 콜린스 미 국립보건원(NIH)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구달은 절대 젠체하거나 자신을 홍보하지 않는다. 오로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게 그녀의 목표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이 매우 강하다.” 콜린스는 NIH가 보유한 의학 연구용 침팬지 360마리 중 310마리를 퇴역시켰다. 그 과정에서 구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콜린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달은 NIH가 이 문제를 검토하고 침팬지를 대상으로 우리가 하는 실험들이 현 시대에 당위성을 갖는지 판단해보라고 제안했다.”
 ‘당신을 만져도 될까요?’
이론적으로 보면 구달과 휴고 반 라윅은 서로 완벽한 배필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구달의 연구를 기록하기 위해 야생동물 전문 사진작가이자 영화 제작자인 그를 곰베에 파견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이 싹터 그들은 1964년 결혼했고 3년 뒤 아들을 낳았다. “휴고와 한 결혼이 잘 되지 않아 너무 후회되네요”라고 구달은 말했다. 파경은 그녀의 가장 큰 후회 중 하나였다. “처음엔 너무도 이상적인 듯했어요. 그는 카메라로 동물을 사랑하고 나도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보다 훨씬 깊은 무엇이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어요.” 두 사람은 1974년 결혼 10년 만에 이혼했다.

1년 뒤 구달은 탄자니아 국립공원 책임자 데렉 바리이슨과 결혼했다. 하지만 그는 198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달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다시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질투심이 많은 두 남자와 잇따라 결혼했어요. 그것으로 족해요. 지금 내가 사는 방식으로는 결혼할 수 없어요. … 나와 함께 이런 생활을 나누려는 남편은 없을 것 같네요. 내가 잉글랜드의 집에 있지 않으면 개인생활이 없기 때문이죠.”

대신 구달은 신세대 영장류 동물학자들을 위해 시간과 경험을 나눈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생물과학·인류학 교수 크레이그 스탠퍼드는 “구달이 영장류 학계 피라미드의 꼭대기”라고 말했다. USC 제인 구달 연구센터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그에 따르면 1960년대 말부터 구달은 젊은 영국인 연구자 앤 퓨지와 리처드 랭검을 곰베로 초청해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곧 미국인 연구자 윌리엄 맥그루도 합류했다. 그들을 비롯해 여러 명이 지금은 학계에서 최고 권위자로 젊은 학자들을 가르친다(퓨지는 듀크대, 랭검은 하버드대, 맥그루는 케임브리지대에 있다).

구달은 동료, 학생, 그리고 세계 곳곳의 낯선 사람들에게서 받는 끝없는 찬사가 약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많은 여성이 나에게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순전히 당신 때문이죠’라고 말해요. 또 어린이들은 ‘당신이 했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어요’라고 말해요.”

구달은 자신의 메시지가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을 돌이켰다. 구달이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노천시장을 걷고 있을 때 나이 많은 부부가 다가왔다. 그중 여성이 구달에게 ‘당신을 만져도 될까요?’라고 말했다. "잠시 섬뜩한 생각이 들었어요.” 구달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언젠가는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한 부부를 만났다. 나중에 그 부부는 구달의 방문 아래 쪽지를 밀어 넣었다. 거식증과 과식증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구달은 흔쾌히 승낙했다. 몇 달 뒤 구달은 그 소년을 직접 만났다. “그 아이는 나를 만나는 동안 내내 울먹였어요”라고 구달이 말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당신이 저를 구했다고 생각해요.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상담을 받고 있어요. 저에게 희망을 주고 견뎌낼 수 있게 해주셨어요.’”

그 모든 일은 엘리베이터에서 단 한 번 우연한 만난 데서 이뤄졌다. 구달에겐 그런 이야기가 수백 개, 아니 수 천 개나 있다. 그녀는 비록 명성에 익숙해졌지만 결코 명성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겸허하게 느낀다고 말해야 옳겠지만 사실 그렇진 않아요. 난 약간 벙벙하게 느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추구한 게 아니었는데.그냥 내가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난 제인이야, 나 여기 있어’
구달은 벅넬대 강단에 올랐다. 그녀는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첫인사로 강연을 시작하렵니다.” 즉시 그녀는 정글에서 들리는 고음의 날카로운 침팬지 울음소리를 쏟아냈다. “후 후 후 후 후 후 후우-후 후우-후 후우.”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난 제인이야, 나 여기 있어’라는 뜻이죠.” 청중이 다시 박수갈채를 보냈다.

청중석 셋째 줄에 곤충을 좋아하는 열 살짜리 꼬마가 앉아 있었다. 엘리 스토너라는 그 아이는 자라면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제인 구달은 내 영웅이에요.” 그 아이가 내게 말했다. “난 동물을 좋아해요. 침팬지를 아주 좋아하죠. 늘 아프리카에 가고 싶었어요.” 아이의 어머니 티나 스토너가 설명했다. “우리 아이는 작은 통에 거미들을 넣어 갖고 다니곤 했어요. 더 어릴때 할머니가 거미를 죽이면 울고불고 난리가 났죠. 그래서 우리 집에선 곤충을 절대 죽이지 않아요.”

교사인 티나는 구달의 강연을 들으려고 오하이오주 랭캐스터에서 엘리를 데리고 일곱 시간이나 운전을 해서 벅넬대에 도착했다. “열 살짜리 내 딸에겐 너무도 소중한 경험이죠. 우리 둘 다 학교를 빼먹고 여기에 왔어요.” 마치 구달의 이야기와 같았다. 과학과 자연 세계에 대한 딸아이의 열정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헌신적인 어머니. 곤충을 좋아하고, 동물을 관찰하고, 아프리카에 가고 싶어 안달하는 어린 소녀…

구달은 강연을 한 시간쯤 진행한 다음 청중 가운데 어린이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내가 희망을 갖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어린이들입니다. 그들이 문제를 알고 행동할 능력을 갖추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그들이 세계를 바꾸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매일 매일 우리는 지구에 영향을 미칩니다. 수십억 인구가 매일 윤리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우리 후손에게 물려줘도 부끄럽지 않은 지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구달의 강연이 시작되기 전 거의 세 시간 동안 나는 아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제인 구달에게 무엇을 묻고 싶어?”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이들은 전부 구달이 지구의 많고도 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침팬지 연구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하지만 엘리는 달랐다. 그 아이는 이렇게 묻고 싶어했다. 다시 아프리카에 가면 나를 데려가 주실 수 있어요?” 구달이 생각하는 어린 과학자에게 딱 맞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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