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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지진 대피훈련을 받고 있는 초등학생들.
한반도에서 번성했던 왕조는 기록을 중시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시대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사관이 집무 시간 내내 임금 곁을 따라다니며 조선 왕조의 실상을 기록한 이 문헌엔 당대의 정치·사회는 물론 나라를 덮친 천재지변도 담겼다. 지진도 그중 하나다. 기상청은 조선왕조실록에 묘사된 지진 기록을 바탕으로 지진의 강도를 추정한 결과 1392년부터 1904년까지 512년 동안 리히터 규모 7 이상의 강진이 15회 기록됐다고 밝혔다. 규모 6~7 사이의 지진은 66회, 규모 5~6 사이 지진은 374회로 집계했다.

지진은 주기적·반복적으로 발생한다. 과거 한반도에 규모 5 이상의 강진이 수백 차례 발생했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럴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만 규모 2 이상의 지진이 13회 관측됐다. 연평균 지진 발생 횟수도 1980년대 16회에서 2000년대 44회, 2010~2014년 58회로 대폭 늘었다. 지난해 4월 충남 태안 해역에선 규모 5 이상의 강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진 피해를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선 안 되는 이유다.

미국 지질연구소에 따르면 규모 5의 지진은 ‘견고하지 못한 빌딩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며, 규모 6의 지진은 ‘내진 설계가 된 건물에도 일정량의 손상을 가한다.’

지난 4월 25일 네팔을 덮친 지진의 규모는 7.8이었다. 설령 내진 설계가 완벽한 선진국에서 발생했더라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법한 강도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2010년 국민안전처는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지하 10㎞에서 규모 6.3 지진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상으로 구현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0분 내에 사상자 2만3736명, 이재민 2만6405명이 발생하며 건물 1472동 전파, 3585동 반파, 18만6119동 부분파손이 일어났다. 네팔에서 발생했던 지하 11㎞에서 규모 7.8 지진이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서 일어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네팔의 인구밀도는 2011년 기준 1㎢당 181명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2013년 기준으로 그 2배가 넘는 501명이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무려 1만4457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한국에 내진 설계가 된 건물은 턱없이 적다. 지난해 국토교통위원회의 국정감사 결과 한국 전체 내진 설계 대상 건물 중 실제 내진 설계를 갖춘 건물은 30.15%에 불과했다. 심지어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서울시의 경우 내진율은 23.6%로 평균 이하였으며, 서울시 단독주택의 내진율은 9.3%로 지진에 크게 취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내진 설계 대상에 포함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전체 건물 대비 내진 설계 건물 비율은 더욱 낮다. 또한 서울 지하철 1~4호선 146㎞ 구간 중 내진 설계가 된 구간은 5.3㎞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지하철 1~4호선은 대부분 1970~1980년대에 건설돼 노후화가 심각하다.

노후화된 것은 건물과 시설뿐만이 아니다. 지진 관측장비 역시 지나치게 노후화됐다는 지적이 매년 나온다. 기상청에 지진담당관실이 처음 마련된 건 1996년이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9년 국정감사에서 김영환 당시 국민회의 의원은 한국의 지진 대비 태세가 “후진국 수준”이라며 “한심하다”고 날을 세웠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기상청으로부터 제공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으로 기상청이 보유한 지진 관측장비 127대 중 54대가 내구 연한인 9년을 경과한 상태다. 그중 35개 지역의 지진 관측장비는 15년째 사용되고 있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은 “지진 관측장비 노후화 문제는 국정감사에 해마다 오르는 단골 메뉴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지난해 국회는 지진 조기 경보 및 운영 부문의 예산을 지난해 101억1100만원에서 87억4500만원으로 줄였다. 기상청은 내년까지 43억원을 들여 지진관측소를 151개로 늘리고 노후 장비 수를 31대까지 줄인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대폭 줄어든 예산 탓에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예산은 장비뿐 아니라 전문인력 양성과 기초 조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태웅 세종대학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진에 대비하려면 “지각 및 지반구조, 우리나라 단층 상황 등 기초적인 조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과감한 투자, 지진 전문가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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