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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가 한 몸되는 세상 꿈꾼다

인간과 기계가 한 몸되는 세상 꿈꾼다

트랜스휴머니즘이 폭력적인 민권운동으로 비화되기 전에 토론과 정보 교환 통해 화합의 길 찾아야
새로운 생물 종이나 심지어 기계가 되고 싶어 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도 있다.
미국 뉴욕 할렘에 사는 힙합 아티스트 마이트레야 원은 어느 날 아침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도착한 고속버스에서 내렸다. 선글라스를 끼고 야구모자를 돌려 쓴 그는 플래시를 터뜨리는 취재진을 찬찬히 살폈다. 나는 그와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

원은 민권운동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다. 그는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흑인 트랜스휴머니스트(transhumanist, 인간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인간을 등장시키려는 운동가) 중 한 명이다. 그는 1960년대 초 흑인차별법에 목숨 걸고 반대한 ‘자유의 기수들(Freedom Riders)’ 운동의 시발점인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와서 한 버스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갈아탔다. 급진적인 과학과 트랜스휴머니스트 권리를 옹호하는 임무를 띤 ‘불멸의 버스(the Immortality Bus)’다. 장례식에 사용되는 관 모양으로 개조한 이 버스는 민권운동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이다.

갈수록 힘을 얻는 트랜스휴머니즘 운동의 다른 참여자들처럼 원도 앞으로 인간이 사이보그(cyborg, 기계와 결합된 인간)가 되는 것을 지지한다. 아울러 그런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논란이 과거 민권운동 시절의 인종차별주의를 둘러싼 투쟁만큼 힘들리라는 사실도 잘 안다.

새로운 생물 종이나 심지어 기계가 되고 싶어 하는 트랜스휴머니스트에겐 새로운 민권운동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4월 중국 과학자들은 동물 배아나 인간 성체세포가 아닌 인간 수정란(배아)을 대상으로 유전체 편집 기법을 써서 유전자 교정을 시도한 연구 결과를 정식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즉시 그런 연구의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투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체를 직접 조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도 많다. 인간이 로봇과 결혼할 수 있을까? 정교한 인공지능에 인격을 부여해야 할까? 가상현실에서 저지른 범죄를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은 끝이 없다.트랜스휴머니즘의 미래를 내다보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55년 전 ‘자유의 기수들’이 흑인차별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앨라배마 주에 도착해 목숨 걸고 투쟁한 이래 많은 것이 달라졌고 개선됐다. 그러나 아직도 편견과 전통 고수주의, 옹졸함은 여전하다. 이런 보수주의 사고방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기계와 융합해 강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바이오닉 핸드(인공손)로 빵을 써는 모습.
원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 몸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우리에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차별하지 않고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는 진정한 정의의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우리는 ‘불멸의 버스’를 타고 몽고메리 중심가의 ‘자유의 기수들 그레이하운드 정류장’으로 갔다. 지금은 버스 터미널이 아니라 민권운동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과거 남부 백인들(일부는 백인우월주의 비밀결사 KKK단 소속이었다)이 버스 안에서나 터미널에서 흑백 좌석 분리에 반대하는 승객을 공격했던 그 건물 외벽에 당시의 사진이 붙어 있다.

원에게 트랜스휴머니스트 민권운동이 왜 그처럼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그렇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며 “반 세기 전은 미국 역사에서 어두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단지 흑인과 백인이 함께 나란히 앉고 싶어 했다는 이유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났다는 건 진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너무 터무니없지 않은가?”

나도 동의하지만 세계가 발전한다고 해서 미래의 민권운동이 폭력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나는 기술친화적이고 비종교적인 트랜스휴먼 당의 대통령 후보로 남부를 찾았다. 사람들은 처음엔 친절함과 호기심으로 나를 대했지만 다수는 곧 등을 돌렸다.

내 손에 마이크로칩을 이식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자마자 내 선거운동을 보는 유권자들의 눈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종교인은 성서의 계시록이나 짐승의 표시를 연상시키는 기술이라면 질색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기술인 마이크로칩 이식이 바로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과학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기계와 융합하며 기술을 통해 최대한 강해지는 것 등 트랜스휴머니즘이 성취하려는 모든 것은 기독교 성서나 보수주의와 마찰을 빚는다. ‘트랜스휴먼’이란 ‘인간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 대다수는 바로 그것을 목표로 한다. 자연적인 인체와 전통적인 인간 체험의 신성함을 믿는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 등장하면 늘 그렇듯이 트랜스휴머니즘도 미래의 민권으로 자리 잡으려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다. 과거엔 인격의 개념이 간단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인공지능과 로봇이 보모와 요리사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머지않아 법원이 이런 아이디어가 어디까지 허용될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 올 것이다.예를 들어 지능을 가진 로봇이 돈을 번다면 소득세를 부과해야 할까? 아니면 모든 로봇은 비영리 독립체 지위를 부여받아야 할까? 그런 로봇은 2025년 이전에 가정과 직장에 대거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건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몇 년 뒤의 이야기다.

박물관이 된 ‘자유의 기수들 그레이하운드 정류장’ 밖에 서 있는 ‘불멸의 버스’.
생물학 영역에선 벌써 논쟁이 불붙었다. 미국의 여러 주가 유전자 복제를 금했다. 배아 줄기세포 이용에도 거부감이 강하다. 인체냉동보존도 세계 일부 국가에선 불법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 다수가 지지하는 성 소수자(LGBT) 권익운동도 성 전환 수술이 쉬워지면서 역풍을 맞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트랜스휴머니스트 대다수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과학을 통해 성별이 없는 무성(無性) 사회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인공 자궁이 개발되면 모성이 도전 받고 낙태 논쟁이 뒤집어질 것이다. 남성이 자궁 이식 수술을 받아 직접 아기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닥쳐올 기술 발전과 인권 사이의 분쟁은 거대한 싸움이다. 구글 글래스는 초기에 공공 장소에서 금지됐다. 그래서 구글은 그 제품의 개발을 적극 밀어붙이지 않는 것 같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최근 배아 유전자 편집 금지 방침을 재천명했다. 가상인격에 관한 법도 검토되고 있으며 온라인 가상공간 세컨드 라이프 등에 적용된다.

앞으로 트랜스휴머니즘 이슈 중 가장 큰 쟁점은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는 상황이다. 일부 국가에선 교도관을 로봇으로 대체했다. (한국도 2011년 1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초의 ‘로봇 교도관’을 개발했다. 위험한 근무지나 반복적인 순찰 업무에 지능형 로봇을 투입해서 다른 교정 업무를 위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교도관의 스트레스를 줄이자는 취지였다. 키 1.5m에 몸무게 70㎏의 로봇 교도관은 4개 바퀴로 사람과 비슷한 속도로 움직였고, 영상·음성 감지 기능이 탑재돼 수용자들이 이상 행동을 보일 때 중앙통제실로 통보할 수 있었다. 로봇 교도관은 2012년 4월부터 포항교도소에서 시범 운영됐지만 야간순찰 시 발생하는 소음과 결함·오작동 때문에 사실상 백지화됐다.) 일부 호텔도 로봇을 사용한다. 이 모든 문제는 트랜스휴머니스트 민권의 범주에 든다. 이런 새로운 분야에선 간단하거나 확실한 건 없다.

기술 반대론자와 러다이트(luddites, 기계파괴 운동가)는 기술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기 전에 어서 제어하라고 외친다. 반면 나 같은 트랜스휴머니스트는 기술이 지구에 도움을 줄 뿐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역사에 따르면 과학과 기술이 거의 모든 사람을 더 오래 더 잘 살게 해줬다(세계은행에 따르면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은 그랬다).

물론 신중을 기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발을 들여 놓은 곳은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끊임없는 토론과 정보 교환을 통해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아쉽게도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우리가 당면한 주요 문제를 건드리는 후보가 없다. 맞춤형 아기, 인공지능 핵무기, 총기와 폭탄의 3D 프린팅 제작 등 윤리와 법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는 데도 말이다.

나는 미국의 트랜스휴먼 당 대통령 후보로서 바로 그런 문제에 집중한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불멸의 버스’의 주요 목표는 그런 문제를 다루는 ‘트랜스휴머니스트 권리장전’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승산 없는 제3당 후보가 하는 이런 얘기는 유권자 다수에겐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마이트레야 원을 비롯한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음악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미래가 닥치기 전에 그런 문제를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새로운 민권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많은 사람이 트랜스휴머니즘의 가능성을 이해함으로써 불필요한 폭력을 피할 수 있다.

- 졸탄 이스트반

트랜스휴머니즘이란?:
‘초인간주의’로도 번역되며 기술을 사용해 인간의 지적·신체적·심리적 역량을 강화하려는 운동을 가리킨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뇌이식이나 생체공학으로 만든 눈부터 줄기세포 기술과 외골격 보디슈트까지 다양한 기술이 동원된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존재를 질적으로 혁신한다는 믿음이 그 바탕이다.

[ 필자는 트랜스휴먼 당의 2016년 대통령 후보다. 그의 당은 2014년에 창립됐으며 트랜스휴먼글로벌 당을 조직하고 있다. 현재 25개국의 트랜스휴먼 당이 5대 주에서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와 미래학자들은 지금까지 100여 년을 기다렸지만 변화가 원하는 방향으로나 원하는 속도로 진행되지 않고 기득권에 의해 방해 받는다며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정당 활동을 하려는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최근 그는 280만 명의 지지자를 확보하면서 세를 확산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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