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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는 없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는 없다

남녀의 뇌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과학적 증거 없으며 성별 고정관념을 고착화시켜
뇌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남자 또는 여자라는 이분법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수반한다.
‘당신의 뇌는 남성일까요 여성일까요?’ 최근 영국 런던 과학박물관은 방문객이 자기 뇌의 성별적인 특징을 테스트하는 대화형 전시 프로그램을 두고 호된 비판을 받았다. 방문객이 화면을 통해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한 뒤 자신의 뇌가 블루 영역(남성)에 속하는지 핑크 영역(여성)에 속하는지 종합적으로 판정 받는 프로그램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일부 신경과학자는 이 전시회를 ‘쓰레기 과학’으로 일축했다. 그들은 남녀의 뇌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며 그런 주장은 성별 고정관념을 더욱 고착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영국 애스턴대학 신경학 연구진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뇌를 성별에 따라 나누는 것은 잘못된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며 “수많은 신경학적 연구 결과를 재검토해 봤을 때, 남성과 여성의 뇌 구조에는 어떤 다른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지나 립폰 박사는 “사람의 뇌는 그의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다. 사회가 남성과 여성에게 특정한 역할을 부여하고 강요하는 것 역시 그의 뇌 형태를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성별에 따라 뇌가 다르다는 논란 많은 개념에 관해 최근 발표된 논문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사항을 정리해본다.

 남녀 뇌의 구조와 생김새는 비슷하다
남녀의 뇌가 다르다는 가설은 여러 가지 정신 건강 장애가 성별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사회적인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보이며, 흥미나 활동에서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특성이 초기 아동기부터 나타나는 장애)나 독서 장애(난독증) 같은 질환은 남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반면 우울증이나 불안 증후군 같은 장애는 여성에게서 더 흔히 볼 수 있다. 더구나 과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해 동물의 모든 종에서 특정 사회적 신호를 받을 때 남성과 여성의 반응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남녀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남녀의 뇌가 차이점보다 오히려 유사점이 더 많으며, 따라서 뇌 형태를 성별에 따라 확실히 구분되는 두 그룹으로 나누기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성별에 따른 차이 등 순전히 생물학적인 측면만으론 설명될 수 없는 ‘모자이크’ 특성을 갖는다. 각자의 뇌는 다양한 요소가 모여 형성되지만 하나하나 독특한 모자이크와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행동에서 나타나는 남녀의 차이는 단순히 뇌의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없다.
영국 런던 과학박물관의 대화형 전시회 화면. ‘당신의 뇌는 남성입니까 여성입니까?’라고 묻는다.
 신경회로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뇌 구조, 특히 신경회로에서 남녀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 계속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사회적 신호를 받을 때 남녀의 행동에서 차이가 난다면 그 신경회로가 제어되는 방식이 성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하버드대학의 캐서린 듈락 교수가 주도한 쥐 실험에서 시삭전야(뇌 시상하부 시신경교차의 앞부분에서 위쪽에 걸친 부위)의 신경세포가 새끼를 낳은 암컷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경세포는 새끼가 없는 수컷의 뇌에도 있다. 이 신경세포를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활성화시키자 수컷 쥐도 암컷과 유사하게 부모로서의 행동을 보였다.

뇌의 신경회로가 성별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지, 실제로 달리 사용된다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그런 차이가 행동과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포함해 더 많은 탐구가 필요하다.

 남녀의 뇌 크기와 호르몬 수치가 다르다
여러 연구는 평균적으로 남자의 뇌 용적이 여자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인지 측면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없다. 또 성별에 따른 행동의 차이에 뇌 크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실치 않다.

2014년 영국 케임브리지·옥스퍼드대학의 과학자들은 기존의 과학 논문에서 남녀의 뇌 구조 차이를 분석한 연구를 전부 찾아내 메타분석(같은 주제에 관한 연구 결과를 객관적·계량적으로 종합하는 기법)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남자의 뇌 용적이 여자보다 8∼13% 컸다. 뇌의 부위별 용적에서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인지 측면에서 남녀 차이가 있는지에 관해선 아무런 시사점을 주지 않는다. 그런 연구는 조사에 적합한 뇌 부위를 확인하고 정신 건강 장애의 소인에서 남자와 여자의 뇌가 어떻게, 왜 다른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뇌의 크기 외에 뇌의 호르몬 수치에서도 남녀의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인지 측면보다는 생식 과정과 관련된것으로 확인됐다.

 신경가소성과 환경
뇌를 연구할 때는 반드시 신경가소성를 고려해야 한다. 신경회로가 일생을 통해 외부의 자극과 경험, 학습, 환경 요인에 의해 구조적·기능적으로 끊임없이 변하고 재조직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뇌는 그만큼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의 뇌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양육과 사회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차이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런 점을 확인한 연구는 아직 없다.

요약하자면 뇌의 신경가소성과 구조적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뇌 구조는 성별과 아무런 관련 없는 요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뇌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을 사용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수반한다. 뇌를 비교할 때는 성별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 레아 서루게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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