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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나서도 계속되는 여행

극장 나서도 계속되는 여행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흑인 소년의 성장기 통해 지역사회와 관용, 동성애 등을 감동적으로 풀어내
‘문라이트’는 경험과 공감의 이야기를 재능 있는 배우들의 연기로 기막히게 풀어냈다. 사진은 어린 시절의 샤이런 ‘리틀’ 역의 알렉스 히버트.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중에는 ‘예술 영화’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 늘 포함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문라이트’(국내 개봉 2월 22일)는 ‘라이언’ ‘히든 피겨스’ ‘핵소 고지’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더 대담하다.

‘문라이트’는 태럴 앨빈 맥크레이니가 자전적 연극 ‘달빛 아래서 흑인 소년들은 서글퍼 보인다’를 각색한 작품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범죄가 들끓는 지역에 사는 샤이런이 어린 소년에서 성인이 돼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샤이런의 나이에 따라 3부분(소년 ‘리틀’과 10대 청소년 ‘샤이런’, 성인 ‘블랙’)으로 나뉜다. 샤이런은 어머니 폴라(나오미 해리스)의 마약 중독, 자신의 성정체성 문제와 씨름하면서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고 애쓴다.

‘문라이트’는 이런 주제를 풀어나가면서 대사의 표면적 의미에 의존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할 시간을 관객에게 준다. 관객은 장면 장면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자신의 삶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런 침묵의 순간들은 관객에게 공감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문라이트’를 매우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만든다.

촬영감독 제임스 랙스턴의 놀라운 비주얼과 니컬러스 브리틀의 분위기 있는 음악이 대사의 공백을 메우면서 관객에게 한눈팔 틈을 주지 않는다. 음악과 영상의 이런 매력적인 조화에서는 랙스턴과 브리틀의 기막힌 호흡이 드러날 뿐 아니라 샤이런의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를 둘러싼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배리 젠킨스 감독의 의도가 느껴진다.그 고난들은 때때로 관객이 샤이런에게 다가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장치는 도움이 된다. 샤이런은 어린 리틀(알렉스 히버트)로 우리 앞에 처음 나타나는 순간부터 줄곧 내성적이고 외로운 캐릭터다. 후안(매어샬라 알리)이나 여자친구 테레사(자넬 모네)와 함께 있을 때만 예외다. 샤이런은 그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마약 중독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주변에서 들은 욕설의 의미를 묻는다. 관객은 그런 광경을 지켜보면서 어린 샤이런이 열악한 주변환경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깨닫고 마음이 아파진다.

애시튼 샌더스는 10대 청소년기의 ‘샤이런’ 역을 맡아 가장 힘든 장면들을 잘 소화했다.
‘문라이트’에 호평이 쏟아지면서 왜 샤이런을 연기하는 배우 3명 중 누구도 크게 주목 받지 못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그들의 어깨에 지우는 감정의 무게를 생각할 때 특히 그렇다. 청소년기의 샤이런을 연기하는 애시튼 샌더스는 가장 힘든 장면들을 맡아 잘 소화했지만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10대에 접어든 샤이런은 너무 꽉 끼는 청바지를 입었다고 학교 친구들에게 매를 맞고 어머니는 그에게 마약 살 돈을 대라고 강요한다. 첫 성경험을 하는 것도 이 시기다.

샌더스는 히버트가 연기한 조용하고 나약한 소년 리틀과 트레 반트 로즈가 연기한 성인 ‘블랙’의 중간 지점에 있는 샤이런을 잘 표현한다. 그는 진정한 자아를 피하려다 어두운 길로 빠진다. 샌더스가 연기하는 샤이런은 리틀과 블랙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로 셋 중 마음이 가장 열려 있어 다가가기가 제일 쉽다.

그리고 안드레 홀랜드와 매어샬라 알리, 나오미 해리스 등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해리스는 같은 장면에서도 아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 철저한 무관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알리가 연기하는 후안은 아주 따뜻한 인물이다. 그는 샤이런을 어둠에서 구해줄 수 있을 듯한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로 카리스마 넘치는 그 역할을 훌륭히 소화한다.하지만 호평 일색인 ‘문라이트’에도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 리틀이 학교 무용 시간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여겨 위안을 삼는다는 설정은 진부하다. 그가 후안에게 끌리는 것도 마찬가지다(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그런 암시가 있다).

성인이 된 샤이런 ‘블랙’ 역을 맡은 트레반트 로즈.
그러나 이런 장면들까지도 지극히 솔직하게 묘사돼 젠킨스 감독의 대담함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설교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기이한 측면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문라이트’는 만족스런 스토리라인을 제시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생에서 어떤 문화와 순간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시험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저 이야기 줄거리로 즐기는 오락 영화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기본적으로 이 작품은 첫 장면에서 시작해 마지막 장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테두리를 뛰어넘어 계속되는 여행과 같다.

이 영화는 지역사회와 관용, 동성애, 필연성 등의 주제를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점이 이 영화의 중요성을 10배는 증폭시킨다.

- 에이미 웨스트 아이비타임즈 기자
 [박스기사] “성소수자 수용하고 관용 베풀어야” - ‘문라이트’에서 마약 중독자 폴라 역 맡은 나오미 해리스, 성 정체성 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되기를 기대해
해리스는 마약 중독자인 폴라를 안 좋게 생각했지만 그녀의 처지를 알고 난 뒤 이해하게 됐다.
나오미 해리스(40)가 영화 ‘문라이트’에서 맡았던 마약 중독자 폴라 역과 실제 그녀의 인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해리스는 그 역할을 준비하면서 폴라가 마약에 중독된 원인을 파헤치다 보니 그녀가 얼마나 괴로운 처지였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처음엔 나도 비판적인 입장이었다”고 해리스는 말했다. “마약 중독자에 형편없는 어머니인 폴라를 매우 안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극복해야 했다.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려면 그 인물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적어도 연민의 정이라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문라이트’는 샤이런이라는 흑인 동성애자가 자아발견에 이르는 이야기를 그의 연령에 따라 세 부분(소년기·10대 시절·성인기)으로 나눠 보여준다. 샤이런의 어머니인 폴라는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을 뿐 아니라 때때로 학대한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소수자 사회에서 가족의 외면과 또래 친구들의 괴롭힘이 불필요한 자기혐오와 자기부정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시적으로 묘사했다.

해리스는 “폴라를 연기하기 위해 마약 중독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중독자 인터뷰를 시청했다”고 말했다. “또 마약 중독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던 여성을 만나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난 폴라의 인생 역정과 그녀가 내린 결정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연을 만들어내 스스로 그녀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게끔 했다.”

해리스는 실제 마약 중독자들과의 만남을 포함해 이 역할을 위한 사전 준비 과정에서 여성들은 사회·경제적 지위나 인종, 종교를 막론하고 성적 트라우마를 겪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인터뷰하거나 다큐멘터리에서 본 여성 마약 중독자 모두가 어떤 형태든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고 해리스는 말했다. “어린 시절 성적 학대나 성인이 된 후 성폭행당한 경험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 고통을 완화할 방법을 찾다가 마약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감정적 고통에 시달리고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그 방법 중에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덜 파괴적인 것도 있긴 하다.”

해리스는 결국 “폴라와 나의 차이점은 당초 생각했던 것처럼 크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그녀는 폴라 역으로 아카데미와 영국 아카데미, 미국 배우조합상, 골든글로브 등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문라이트’의 핵심 주제인 수용과 관용은 평단뿐 아니라 동성애자와 흑인 옹호단체의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는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사회를 긍정적으로 대변한 작품에 상을 주는 글래드(GLAAD) 미디어 어워드의 우수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문라이트’는 또 예술 부문에서 유색인종의 업적을 치하하는 NAACP 이미지 어워드에서 우수 독립영화상을 포함해 4개의 상을 받았다.

해리스는 이 영화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며 사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 정체성과 커밍아웃 문제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이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이 영화를 자신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인다면 치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인 그들에 대해 더 큰 이해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 비판적인 태도는 줄이고 관용과 이해를 늘려야 한다.”

- 에이미 웨스트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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