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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유전자 가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크리스퍼’ 기술을 최초로 구현한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특허 분쟁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질병 치료에 사용될 수 있기를 기대해
세계 최초의 유전자 교정 상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병충해에 강하게 만들었다.
약 10년 전 덴마크의 한 요구르트 실험실 과학자들은 박테리아 유전체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DNA 염기의 반복되는 회문구조 서열이었다. 회문구조란 DNA 염기 서열이 앞으로 읽어도 뒤로 읽어도 똑같다는 뜻이다. 사실 그런 회문구조는 이전에도 발견됐고 이미 ‘크리스퍼(CRISPR,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회문구조 염기서열 집합체)’라는 이름까지 붙여진 상태였다.

그러나 요구르트 연구 과학자들은 거기서 뭔가 좀 더 이상한 점을 목격했다. 그 박테리아를 감염시킨 바이러스의 DNA 서열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크리스퍼 안에 끼어 있었다.

박테리아 유전체 속에서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이 나타난 것은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를 공격했으며 앞으로 그런 침입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장치를 갖췄다는 의미다. 그 박테리아는 마치 인간처럼 생존을 위해 면역체계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적응시킨 것이다.

그 후 세계 곳곳에서 과학자들이 크리스퍼 연구에 매달렸다. 그중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UC 버클리)의 미생물학자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감염생물학연구소의 미생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박사는 면역체계의 그런 적응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밝혀냈다.

Cas9으로 불리는 단백질이 바이러스 유전체에 들어가 그 일부를 박테리아의 DNA에 통합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다시 말해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박테리아의 Cas9이 그 DNA를 잘게 잘라 자신의 유전자에 붙여 넣어 ‘기억’하고, 나중에 다시 침입하면 이전에 DNA 형태로 기억해둔 정보를 활용해 면역체계를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퍼-Cas9은 ‘유전자 가위’로 불린다.

다우드나 교수와 샤르팡티에 박사는 크리스퍼-Cas9 복합체가 다른 생물의 유전학적 구성을 바꾸는 데도 쉽게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크리스퍼-Cas9이 유전공학의 진입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2012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크리스퍼-Cas9의 비밀을 풀어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팀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하버드대학과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에서 장펑 교수도 똑같은 연구를 하고 있었다.
미국 NASA 에임스연구센터에서 열린 과학자 브레이크스루상 시상식에 참석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박사(왼쪽)와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
당시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크리스퍼-Cas9이 박테리아가 아닌 진핵 세포의 DNA를 편집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진핵 세포란 막으로 둘러싸여 독립적인 핵과 세포소기관을 가진 세포를 뜻한다. 세균류와 남조류를 제외한 모든 동식물의 세포가 여기에 속한다. 크리스퍼-Cas9이 인간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면(예를 들어 DNA에 뿌리를 둔 질병의 치료) 이 기법을 진핵 세포에 도입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 과학자만이 아니라 그들이 일하는 대학이나 연구소도 명성과 함께 거액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크리스퍼-Cas9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자신의 작업이 전례 없는 상업적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 발견이 자신의 업적임을 인정 받고, 그 발견의 상업화를 통해 수익을 얻으려면 특허를 출원해야 했다. 당시 미국은 ‘선발명주의’ 특허 시스템을 따랐다. 동일한 발명 또는 발명 아이디어가 있을 경우 특허 출원 여부에 관계 없이 가장 먼저 발명한 사람에게 특허권을 인정해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2013년 미국은 특허개혁법에 따라 ‘선출원주의’로 특허 시스템을 전환했다. 먼저 출원하는 사람에게 특허권을 주는 방식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가 그 시스템을 채택한다.

다우드나 교수는 선발명주의 시스템이 유효하던 2012년 5월 크리스퍼-Cas9을 사용한 DNA 편집 기술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그해 12월 장 교수는 좀 더 구체적인 특허를 출원했다. 진핵 세포를 교정하는 목적으로 크리스퍼-Cas9을 사용하는 기법이었다. 그는 특허를 출원하면서 추가 비용을 들여 신속 심사까지 요청했다. 그에 따라 장 교수는 2014년 그와 관련한 지적재산권을 인정 받았다(특허 등록번호 US 8,697,359). 그러자 UC 버클리는 특허저촉 심사 요청 소송을 제기했다. 저촉 심사란 여러 사람이 같은 특허를 출원했을 때 누가 먼저 발명했는지 가리는 절차다.

그때부터 길고 험한 특허 전쟁이 시작됐다. 결국 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은 지난 2월 15일 미국 특허상표청산하 특허심사위원회는 브로드연구소가 크리스퍼-Cas9에 대한 특허권을 유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특허심사 위원회는 두 팀의 특허 기술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누가 먼저 발명했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다우드나 교수팀은 시험관 안에서 DNA를 잘라내는 크리스퍼-Cas9 기술을 최초로 구현해 특허로 출원했다. 반면 장 교수팀은 크리스퍼-Cas9 기술을 실제로 쥐와 사람 세포에 적용해 진핵 세포의 DNA를 편집하는 기술로 특허를 출원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브로드연구소의 특허는 그대로 유지된다. 다우드나 교수가 2012년 5월 출원한 특허는 아직 심사 중이다.
중국 광저우 중산대학의 황쥔주 교수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인간 배아에서 난치성질환 관련 유전자를 편집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뉴스위크는 다우드나 교수에게서 특허심사위원회의 결정과 크리스퍼-Cas9 기술, 그리고 자신의 앞날에 관한 견해를 들어봤다.



특허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소감은?


심사위원단은 브로드연구소와 UC 버클리가 출원한 특허가 별개의 문제라고 선언했다. 둘 다 따로 특허 받을 수 있는 발명이라는 얘기다. 장 교수와 브로드연구소의 특허가 유지되는 동시에 UC 버클리에서 내가 출원한 특허도 부여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난 그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언론 보도는 이번 결정이 브로드연구소의 승리라고 논평했다. 동의하는가?


특허심사위원회의 결정은 언론에서 말하듯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브로드연구소로선 특허가 유지될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우리 특허가 그와 별도로 인정 받을 수 있어 기쁘다.

브로드연구소는 단일 형태의 진핵 세포에서 크리스퍼-Cas9의 사용에 관한 특허를 인정 받았다. 반면 우리가 출원한 특허는 모든 종류의 세포에 적용될 수 있다. 비유를 들자면 브로드연구소가 녹색 테니스공의 특허를 가졌다면 우리는 모든 테니스공의 특허를 가질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이 정확히 그렇다. 기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기술을 식물이나 동물 세포에 사용할 경우 양쪽 다에서 특허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특허 분쟁엔 해당 기술의 상업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이제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그전에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뭔가? 그점에선 이번 특허 분쟁의 영향이 아직 없는 듯한데.


사람들이 크리스퍼-Cas9 기술이 그토록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사용하기에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구 결과를 처음 발표한 후 4년 반이 지나는 동안 여러 그룹이 많은 동식물을 대상으로 다양한 용도에 이 기술을 채택했다. 학교 실험실과 기업체 둘 다에서 연구가 놀랄 정도로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초기 단계다. 이 기술은 계속 발전하는 중이며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인간의 치료든 다른 용도든 실제 이 기술의 시장이 형성되면 특허권을 누가 소유하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다.
시험관 안에서 DNA를 잘라내는 크리스퍼-Cas9 기술을 최초로 구현해 특허로 출원한 학자는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팀이었다.


이 기술에서 앞으로 어떤 발전을 기대할 수 있나?


인간의 치료에 이 기술을 사용하는 면에선 매우 기대가 크다. 크리스퍼-Cas9 기술을 사용하는 임상시험이 일부 암환자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또 머잖아 이 기술을 유전자 질환의 치료에 사용하는 임상시험도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겸상 적혈구 빈혈증이나 눈과 관련된 질환을 치료하는 데 가장 먼저 이 기술이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세포 형태에 유전자 가위를 사용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다.

그 다음 약 10년 뒤엔 근위축증과 낭포성 섬유증의 치료에도 이 기술이 사용될 수 있다. 이런 질병의 경우 어려운 점은 유전자 편집 기술보다는 조직에 유전자 가위를 도입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술로 생산된 식물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선 크리스퍼 버섯을 생산했다. 현재 기업체와 학교 실험실에서 더 많은 상품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이 기술은 식물에 사용하기가 더 쉬워 식물 생물학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발전이 기대된다.



이번 특허 분쟁으로 개인적인 좌절을 겪었는가?


특허에 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난 영원한 학생이다. 지금까지 늘 기초연구에 매달렸다. 우리가 유전자 편집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박테리아가 바이러스 감염에 어떻게 싸우는지 연구하고 크리스퍼라는 바이러스의 면역체계를 조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난 원래 유전공학 연구자가 아니었다.

지난 5년 동안 연구에 매달리면서 이 시스템이 아주 유용한 기술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맛봤다. 흥미진진한 여정이었다. 이 기술을 개발하고 다른 시스템에 적용하는 과정도 아주 흥미로웠다. 우린 UC 버클리의 실험실에서 다른 크리스퍼 시스템에 관한 기초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Cas9 단백질이 실제로 유전자 가위 역할을 하는 과정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이번 특허 분쟁은 내게 아주 좋은 교육의 기회였다. 특허 절차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려 애쓴다. 과학자가 중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사용해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도전에 초점을 맞추면 궁극적으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이 기술을 사용해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고 농업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다.



앞으로 연구 계획은?


우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실제로 세포에서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해하는 연구를 계속한다. 다른 종류의 세포에 이 기술을 사용하는 것 같은 문제도 해결해 나가고 있다.

또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에서 캘리포니아대학의 두 캠퍼스(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혁신 유전체학 연구소’ 설립도 추진 중이다. 샌프란시스코 캠퍼스는 의과대학이다. 따라서 이 연구소는 우리에게 치료법으로 유전자 편집 기술을 개발하는 의사, 연구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또 나는 식물 유전학자들과도 협력한다. 우리는 여러 기업체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손잡고 유전자 편집 기술을 농업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크리스퍼-Cas9 단백질의 모형. 크리스퍼-Cas9은 진핵 세포의 유전학적 구성을 바꾸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이번 경험으로 미뤄볼 때 특허 시스템에서 개선돼야 할 부분이 있는가?


이 문제를 좀 더 넓고 깊이 볼 수 있는 10년 뒤가 돼야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허 절차가 복잡하고 힘들긴 하지만 그로 인해 기업들이 기술을 상업적으로 사용할 때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존중할만하다. 인간의 질병치료에선 많은 투자와 오랜 개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허 문제가 더 중요하다. 지금의 특허 절차가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튼 몇 년 뒤가 돼야 내가 현재의 특허 시스템에서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브로드연구소의 과학자들과도 협력할 의사가 있는가?


이미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MIT, 브로드연구소, 하버드대학 등의 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실시한다. 이런 협력은 특허 분쟁에 관한 언론 보도에선 잘 거론되지 않는다. 특히 크리스퍼 프로젝트에선 과학자들의 공동연구가 매우 활발하다. 요즘 과학자들은 이전보다 서로에게 훨씬 우호적이다. 특허 분쟁 때문에 다른 연구소나 기관의 과학자들과 교류하고 협력하지 않는다는 건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분쟁 때문에 크리스퍼-Cas9 기술의 상업화에 흥미를 잃진 않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정반대다. 이번 일로 인해 용기가 더 생겼다. 이런 일에 관여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크리스퍼 기술은 신기술 개발에서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박테리아의 면역체계 연구에서 강력한 유전자 편집 도구가 발견될 것이라고 누가 기대했겠는가? 무엇보다 그 점이 매우 중요하다. 그처럼 앞으로 신기술은 어느 방면에서든 나올 수 있다.



특허 시스템에 관해 다른 과학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학계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특허 절차에 관해 잘 모른다. 적절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학생들과 동료들에게 특허 절차에 관해 충분히 설명해주려고 애쓴다.

많은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지만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때 반드시 특허를 출원해야 할지, 어떻게 출원해야 할지, 그 의미가 무엇일지 별로 생각하진 않는다. 이번 경험으로 그런 무관심과 무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과학자들이 특허에 관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더 나은 교육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 제시카 웨프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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