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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유동화 나선 대형마트] 점포 팔고 리츠로 돌려 현금 확보

[자산유동화 나선 대형마트] 점포 팔고 리츠로 돌려 현금 확보

재무건전성 개선하고 투자 재원 마련 목적… 대형마트발 부동산 매각 전쟁 우려
“우리는 햄버거 사업이 아니라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다(We are in the real estate business, not the hamburger business).” 맥도날드의 창립자 레이 크록 남긴 이 문장은 프랜차이즈 업계는 물론 유통 업계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미국에서만 85%에 이르는 매장에서 임대료를 받고 있는 맥도날드는 물론, 미국 유통 업계 거인 월마트마저도 자사 시가총액보다 관련 리츠(REITs, 부동산투자신탁)의 가치가 훨씬 높아서다. 미국 증시에서는 이제 오프라인 유통의 본질적인 가치를 산정할 때 부동산 가치를 먼저 확인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유통 채널의 성장으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은 대형마트 업계는 줄지어 자산 유동화에 나서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 맞수 신세계와 롯데쇼핑은 모두 대형마트 점포가 위치하고 있는 부동산의 유동화를 추진 중이다. 각각 사모와 공모라는 방식의 차이가 있지만 조달하는 금액은 1조원가량으로 비슷하다.
 롯데·신세계, 각 1조원가량 실탄 확보
우선 이마트는 11월 중으로 자사가 보유 중인 13개 점포를 마스턴투자운용에 매각한 후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계약을 하기로 했다. 마스턴투자운용은 부동산 사모펀드로 해당 부동산을 매입할 예정이다. 매각 대금은 9525억원 수준이다. 롯데그룹은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 등 그룹 내 유통 업체들의 부동산을 묶는 방식으로 리츠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는 현물출자한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제외하더라도 1조원가량의 현금 유입이 예상된다. 롯데리츠는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된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청약에서는 63.2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10월 30일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할 예정이다.

올해 초에는 홈플러스가 상장 공모 리츠로 보유 자산 유동화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실패했다. 홈플러스는 일부 부동산만 묶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 이어 지난 8월 3개 점포의 부동산만 묶은 공모펀드를 내놨다. 이 펀드는 1173억원 규모로 투자자 모집에 성공했다. 이보다 앞서서는 이랜드 리테일이 운영하는 대형 쇼핑몰 관련 부동산을 묶은 이리츠코크렙이 지난해 상장에 성공했다. 이마트 역시 공모 리츠를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지만 홈플러스 리츠의 상장 실패 이후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상업용 부동산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의 최대치를 1년에 2조원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이 이상의 물량도 소화할 수는 있겠지만 제값을 받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상장 공모 리츠가 아닌 사모 부동산 펀드로 자산 유동화에 나설 경우 사전에 인수자를 물색할 수 있어 실패 확률이 낮아진다. 또 공모에 비해 자금 조달 속도에서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말 설립한 롯데리츠가 7개월 만인 10월 30일에 상장하는 데 비해 이마트는 8월 중순 KB증권과 점포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은 지 석달도 안 돼 세일즈앤리스백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실패하지 않고 빠르게 자금을 조달해야 할 만큼 이마트의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대형마트 업계 1위 이마트는 올해 2분기 299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분기 실적을 기준으로 이마트가 적자를 낸 것은 지난 2011년 신세계에서 분할돼 설립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3분기 실적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발표된 잠정치를 기준으로 개별 매출액 3조5171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이 예상된다. 이마트의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재무상태 역시 타격을 받았다. 이마트의 단기 차입금은 올 2분기 말 기준 2조603억원으로 반년 만에 4000억원가량 늘었다. 보유 중인 현금성 자산은 4967억원, 매출채권을 포함해도 1조1600억원에 불과하다.

다급해진 이마트의 행보는 정기 임원인사에서도 드러났다. 11월 21일 발표된 신세계그룹의 2020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강희석 베인앤드컴퍼니 유통·소비재부문 파트너를 이마트의 새 대표로 임명했다. 이마트가 외부 출신 수장을 영입한 것은 창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여기에 기존 임원 11명을 물러나게 하면서 대규모 물갈이를 진행했다. 더구나 통상 12월초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하던 전례에 비춰봐도 한달 이상 빠르기 때문에 새로운 이마트 건설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예상이다.

유통 업계 일각에서는 이마트가 또 다른 부동산 유동화에 나설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업황이 부진한 만큼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전망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그룹은 이미 온라인 사업에 3조원가량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마트 역시 이번 자산 유동화의 공식적인 목적은 재무건전성 확보라고 밝혔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오프라인 매장 수익성 악화를 만회할 만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마트는 자산 유동화에 앞서 지난 4월 영구채를 발행하면서 대규모 온라인 채널 강화와 물류센터 건립 등을 위한 자금 확보했다. 다만 조달 금액은 4000억원에 그쳐 추가 조달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마트가 보유 중인 점포는 풀필먼트센터(FC, e커머스 상품의 입·출고, 포장 등을 포괄하는 물류센터)를 제외하더라도 137곳이며 이 중 부동산을 직접 보유 중인 곳만 100곳가량이다.
 이마트, 부동산 추가 유동화 가능성
부동산 등 자산 유동화로 현금을 마련한 유통 업계의 전망은 아직 불투명하다. 한국보다 먼저 유통 업체들의 리츠가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미국에서는 리츠 소유 부동산에 입점한 점포 수가 줄어들고 있다. 자산 유동화는 유통 업체들의 일시적인 자금 확보를 위한 것이지 장기적으로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수익성 감소라는 대세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국내 유통 업체들의 일부 점포 폐점이 이어질 것이란 예상을 내놓고 있다.

한태일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유통 업계에서 온라인 업체들의 침투가 확대됐고, 저출산, 소량 구매 등 소비패턴이 변화하면서 대형마트의 매력도가 낮아졌다”며 “이마트는 온라인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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