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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인사이트] 정부 인증서비스 ‘디지털 원패스’는 어쩌다 ‘계륵’이 됐을까

매해 개발사 바뀌고, 영세 수준 못 벗어나
복지부, 카카오·네이버 인증서로 방향 틀어

 
 
디지털원패스 PC 화면. [사진 디지털원패스]
 
지난 2019년 행정안전부는 모바일 앱 하나로 정부 웹사이트 접속할 수 있는 인증 서비스를 개발했다. 주민등록등본 떼려고 정부24에 회원 가입하고, 연말정산하려고 국세청 홈텍스에 또 가입하는 등 불편을 없애려는 목적에서다. 이런 취지에 걸맞게 이름도 ‘디지털 원패스’(이하 원패스)로 지었다.
 
운용 2년 차인 올해 원패스를 쓰는 기관은 50개. 그러나 평가는 냉랭하다. 구글 플레이스토어 평점은 2.5점, 애플 앱스토어 평점은 1.3점에 그친다.  
 
인증과정에서 빈발하는 오류가 문제다. 앱에서 인증정보를 처리할 때 화면상 ‘확인’ 버튼을 눌러도 다운, 앱을 수동으로 실행한 뒤 설정을 바꿔도 다운된다는 식이다. 한 사용자는 리뷰에서 “인증수단을 스무 번이나 고쳐서 등록해도 다시 등록하란 메시지가 뜬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런 원성 때문일까. 지금껏 원패스만 써왔던 보건복지부는 오는 9월부터 민간 인증서를 같이 쓰기로 했다.  
 
지난 6월 30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은 양대 플랫폼 기업 네이버·카카오와 업무협약을 맺고 모바일 앱 ‘나의건강기록’의 편의성을 개선하기로 했다. 협약에 따라 오는 9월부터 사용자들은 앱에 접속할 때 원패스를 쓸 필요 없이 양사가 개발한 공동인증서만으로 로그인할 수 있다.
 
나의건강기록은 정부가 2025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 마이데이터 사업의 핵심을 이루는 앱이다. 건강보험공단이나 일반 병원이 가진 건강정보를 사용자의 휴대전화로 끌어오고, 또 동의하에 보험사 등 필요한 민간업체에 보내는 유통거점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앱 다운로드 수는 지난 5개월간 1만건에 그친다. 복지부는 원인을 사용 편의성에 찾는다. 이날 보도자료에서 복지부는 “편의성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하단 의견이 있었다”며 리뷰 중 하나를 거론했다.  
 
“지문등록이나 패턴등록 등을 선택할 때 ‘앱 권한 설정 허용 후 이용바랍니다’가 뜨면서 다음으로 넘어가질 않아요.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이네요.” 앱 편의성을 해치는 주범이 원패스라고 우회적으로 말한 셈이다.  
 

“단순 신분증명 넘어 전자서명까지 품어야”

지난 30일 '나의건강기록 앱 편의성을 개선하기 위한 업무협약'에서 신정환 카카오 CTO, 이강호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 임근찬 한국보건의료정보원장, 유봉석 네이버 서비스 총괄(왼쪽부터)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개발과 시범 운영에만 4년, 들어간 예산만 39억4424만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이 어쩌다 ‘계륵’이 된 걸까.
 
개발과정을 지켜봤던 한 정부기관 관계자는 잦은 위탁기업 교체를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개발사가 거의 매해 바뀌면서 사업 운영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것. 실제로 조달청의 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따르면, 이 사업 위탁을 맡은 업체는 3, 4차연도(씨엔비시스템)를 빼고 매해 바뀌었다.  
 
이 관계자는 “사업 조건을 기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우리도 생각 못 한 기업이 낙찰받아 당황했을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선택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법 개정으로 등장한 민간 공동인증서가 그것이다. 원패스와 공동인증서 모두 지문 인식이나 간편 비밀번호 등 방법으로 인증 절차를 간소화했지만, 실제 사용자가 체감하는 편의성은 중소기업이 네이버·카카오를 따라잡기 어렵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 관계자는 “사용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준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원패스가 여전히 유의미한 인증수단으로 남을지에 물음표가 붙는 이유다. 원패스 사업을 관리·감독하는 행안부 관계자도 “지난해 말 공동인증서가 나오면서 원패스의 역할이 애매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번 계기로 정부가 디지털 신분증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단 이야기가 나온다. 신분증에 전자서명 기능까지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기혁 중앙대 융합보안학과 교수는 “수십 가지 서류를 제출할 필요 없이 디지털 신분증 하나로 은행대출이나 부동산 계약 등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영국, 유럽연합에선 올 초 이런 내용의 ‘디지털 아이덴티티 프레임워크(Digital identity Framework)’ 개념을 발표한 바 있다”고 밝혔다.  
 
정부 이런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원패스는 ‘백조’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껏 보여준 개발과정의 한계를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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