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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기술특례 상장사' 헬릭스미스 ‘소액주주의 난’이 남긴 것

경영권 지켰지만 엔젠시스 성공으로 '신뢰회복' 과제
바이오 업계 번지는 '소액주주의 실력행사'… 소통 강화하고 IR 노력 키워야

서울 강서구 마곡동 헬릭스미스 본사 [사진 최윤신 기자]
바이오 기업 헬릭스미스가 어렵사리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15일 헬릭스미스에 따르면 전날부터 시작한 이 회사의 임시주주총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인 ‘현 경영진 해임 안건’이 부결됐다.
 
경영진의 해임은 막았지만 승부는 간발의 차였다. 의결권을 가진 주식 71% 정도가 참여했는데, 전체의 43.43%가 해임에 찬성했다. 출석 의결권 기준 60% 이상이 경영진의 해임에 찬성한 셈이다. 특별 결의 안건은 출석 의결권의 3분의 2(66.6%) 이상이 결의하면 가결된다. 6%의 외인 주주가 경영진에 힘을 보태지 않았다면 경영권을 잃을 수 있었던 상황이다.
 
비록 경영권 교체에는 실패했지만 헬릭스미스 ‘소액주주의 반란’은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일반결의 사안인 이사 선임 안건을 통해 소액주주들이 내건 인사가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고, 정관 변경도 이뤄졌다. 현 경영진 측을 감시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진 셈이다.
 
또 국내 1호 기술특례 상장기업인 헬릭스미스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국내 바이오 기술특례 상장 기업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주주들의 스타였던 김선영 대표가 신뢰 잃기까지

2005년 코스닥 시장 기술특례상장 1호 기업이라는 왕관을 쓴 헬릭스미스(당시 바이로메드)의 주주들은 열정적이었다. 회사가 가진 Non-Viral(비바이러스) 벡터 기술이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주주들은 창업자인 김선영 대표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겸직하던 김 대표는 2018년 교수직도 내려놓고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후보물질인 엔젠시스(VM202-DPN)의 상용화에 모든 걸 걸었다. 그러나 글로벌 신약 상용화의 벽은 높았다. 2019년 9월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의 임상 3-1상에서 약물 혼용으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주가는 폭락했다.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3-2상과 3-3상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이 지점에서 나왔다. 2019년 8월 대규모(약 15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한 회사가 2020년 또다시 2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헬릭스미스 측은 임상 3-1상 실패 후 “2년간 유증은 없다”고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2020년 유증을 계기로 주주들의 원성이 본격화했다. 유증에 김 대표 등 경영진이 불참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회삿돈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해 손실을 본 사실, 김 대표와 그의 아들이 스핀오프 회사의 지분을 대량 보유했다는 것 등이 알려지며 갈등이 심화했다. 한 때 30만원선이었던 주가는 현재 3만원대로 떨어졌다.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헬릭스미스는 진화에 나섰다. 김 대표는 올해 정기주총에서 “2022년 10월 31일까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보유하고 있는 헬릭스미스 주식 전부를 출연하겠다”고 밝히는 등 승부수를 띄웠다. 김 대표 등의 자회사 지분 이슈에 대해서도 자회사를 청산하고 지분을 회사에 귀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승부수도 주주들의 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비대위는 김 대표 등 현 경영진의 해임을 안건으로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했다. “경영진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이사가 지난달 3일 헬릭스미스 주주 라이브 공개토론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 유튜브 캡처]
15일 끝난 임시주총으로 갈등은 일단락됐다. 현 경영진은 경영권을 유지했다. 소액주주들은 경영진 해임을 관철하지 못했지만 자신들이 추천한 이사 2명을 이사회에 진입시켰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소송전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이번 임시주총을 계기로 경영의 효율성 및 투명성 제고, 엔젠시스 성공의 극대화, 책임경영을 위해 각 이사들의 역할과 책임을 일부 조정해 발표할 예정”이라며 “신임 이사들과는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 회사의 발전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방법을 함께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대위 측도 결과를 인정하고 있다.

경영권 박탈 고비를 넘긴 경영진이 할 수 있는 건 ‘엔젠시스’의 성공뿐이다. 내년 10월까지 ‘주가 10만원대 회복’이나 ‘임상 성공’을 달성하지 못하면 지분을 내놓고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김 대표의 약속은 유효하다. 이번 위기를 통해 ‘신뢰’가 없다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은 확인됐다.
 

소액주주에 긴장하는 바이오 업계  

이번 사태는 무리한 자본 유치와 불통 행보를 보인 국내 바이오 상장기업들에게 경고장이 될 수 있단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제2, 제3의 소액주주 반란이 나타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것이다.

실제 최근 바이오 업계에서 소액주주들이 실력행사에 나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DNA 염기서열 분석회사 마크로젠은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소액주주와 경영권을 두고 표 대결을 펼친 바 있다. 진단키트 회사 씨젠의 소액주주들도 정기주총을 앞두고 회사에 “주주친화적 IR 활동을 강화하라”며 시위를 펼친 바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고 소액주주 비중이 높은 바이오 회사들을 중심으로 이런 상황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제약‧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바이오 업계에 강성 성향을 보이는 주주들이 많아 IR 활동에 어려움이 큰 측면이 있다”면서도 “엑시트 궁리만 하는 (FI)재무적투자자나 기관보다 장기적 투자를 하기 때문에 회사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초기부터 무리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회사의 상황을 주주들에게 성실히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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