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공산주의→푸틴’ 권력에 결탁해온 러시아 정교회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모스크바 종교 수장 ‘키릴’ 총대주교
부활절 휴전·평화 메시지 설파 대신
전범 푸틴의 성공 기원 칭송 메아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종교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상호 화해를 시도해온 서방의 가톨릭과 러시아의 러시아정교회가 전쟁을 계기로 새롭게 대립하고 있다. 러시아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전쟁과 이를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을 계속하면서다.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5월 3일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인 코리에레델라세라와 인터뷰를 하면서 “전쟁이 지속하는 한 러시아정교회의 키릴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만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황은 이 말을 하면서 “키릴 총대주교는 푸틴의 복사(服事)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숨기지 않았다.
복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미사를 드릴 때 사제나 수도사의 곁에서 이를 보조하는 평신도다. 푸틴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키릴 총대주교를 푸틴의 대리인‧보조인으로 보고 있음을 나타낸 셈이다. 중교인인 키릴이 본연의 직분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푸틴의 전쟁을 거들고 있다고 공개 비판한 것이나 진배없다. 다음날 러시아정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터뷰 내용이 양측 간의 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이번 전쟁에 대해 “서방 위협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무력 수단”이라고 말하는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둔해왔다. 교황과 키릴 총대주교는 개전 뒤인 3월 16일 영상 통화를 하고 전쟁과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우려를 공유했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이었을 뿐이었다. 키릴 총대주교는 그 뒤로 전쟁을 옹호하고 푸틴을 칭송하는 발언을 해왔다. 그 전에도 “푸틴의 통치는 기적”이라고 하는 등 푸틴을 미화해왔다. 정치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런 사례는 영혼을 다뤄야 할 종교까지 세속의 정치과 권력의 종속물이 된 푸틴 통치 하의 러시아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키릴 총대주교는 일각에서 종교인이라기보다 푸틴 팬클럽의 ‘아미’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한다. 푸틴과 동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공산 시절엔 레닌그라드) 출신으로 푸틴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푸틴의 동지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2009년 종신직으로 러시아정교회 수장인 모스크바 총대주교 선출된 당시 잠시 총리로 물러나 있던 푸틴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았다는 평이다. 당시 메드베데프는 선거권을 쥔 고위 정교회 인사들은 특별히 만찬이 초대해 함께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사제임에도 무려 40억~80억 달러의 재산을 축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내용은 당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러시아 독립 언론의 탐사 보도에 단골로 등장한다. 3만 달러 상당의 최고급 스위스 시계를 찬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카릴, 종교인이라기보다 푸틴 팬클럽에 가까워
주목되는 점은 두 장관의 방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부 키이우 전선에서 철수하고 전력을 동남부 돈바스 지역과 남부 해안 지역에 집중하며 전쟁 양상이 새롭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에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은 평야로 이뤄진 개괄지여서 화력 중심의 러시아군이 일단은 유리한 상황이다. 병력과 무기에서 여전히 열세인 우크라이나로선 불리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독일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의 화력을 강화할 다양한 무기의 공급에 나서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하루 전인 23일 이를 공개하면서 “미국 대통령도 찾아와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지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젤렌스키는 "키이우에 오려면 빈손으로 와선 안 된다"며 "우리는 중무기가 필요하며, 이들과 이를 전달하는 일정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와 국방을 맡은 블링컨과 오스틴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이 나라를 방문한 최고위급 미국 인사가 됐다. 바이든은 3월에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폴란드를 방문했고, 블링컨은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와서 우크라이나 외교부 장관을 만난 회담하긴 했지만, 국경을 넘어 수도 키이우까지 찾지는 않았다.
이들의 키이우 방문과 정교회 부활절 하루 전날이자 23일 젤렌스키는 키이우 독립광장 지하철역에 나가 회견을 하면서 마이크 앞에서 “부활절을 앞두고 러시아는 (남서부 항구도시인) 오데사에 미사일 7발을 쐈다”고 밝히면서 피를 토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미사일 한 발이 민가를 피격해 생후 3개월 된 신생아를 비롯해 8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공개하면서 “숨진 아기가 태어난 지 1개월이 됐을 때 전쟁이 시작됐다”며 울먹였다.
젤렌스키는 “개자식” “나치” “러시스트(러시아+파시스트)” 등의 강한 표현을 줄줄이 동원하면서 러시아를 공격을 비난했다. 개전 이래 SNS에 200여 개의 동영상 연설을 올리고 20여 개국의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던 젤렌스키가 이런 격앙된 모습을 보인 것은 드문 일이다.
러시아 정교회, 참전 부추기는 “군복무=복음” 논란
사실 키릴 1세는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를 지지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왔다. 그는 푸틴이 일으킨 전쟁을 동성애를 비롯한 서구의 재앙으로부터 러시아를 보호하는 성전이라고 주장해왔다. 부활절 전날인 4월 23일에는 푸틴에게는 “러시아 국민을 위해 품위 있고 책임감 있는 봉사를 하고 있다”고 칭송했다. 젊은이들에게는 “군 복무는 이웃을 향한 복음주의적 신념의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입대와 참전을 권유하는 발언도 했다.
러시아는 정교회의 부활정 성주 간(21~24일) 동안 인도주의적 휴전을 하자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제안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23일 오데사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아기가 숨지는 비극을 연출했다.
러시아는 구테흐스 총장이 26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28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키이우를 찾은 바로 그 시간에 키이우에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라디오 방송의 기자 겸 프로듀서가 숨졌다. 정교회의 성주간도, 부활절도 푸틴의 전쟁 앞에서는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국무·국방부 장관이 키이우를 방문한 다음 날인 4월 25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철도역을 줄이어 미사일로 공격했지만 이미 이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나 인접한 폴란드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부활절에 우크라이나는 희망을 얻었고, 러시아에선 정교회 최고 사제인 키릴 총대주교의 푸틴에 대한 칭송이 메아리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인류의 존망과 연결된 핵무기 사용과 관련한 발언은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가 보유한 핵무기를 앞세워 서방을 위협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말고 자국의 손에 넘기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날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부 장관은 자국 국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제3차 세계대전과 핵전쟁을 언급했다. 라브로프는 “(핵전쟁) 위험이 실재하고 심각하다”며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가 최근 핵무기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공격 능력을 부각한 상황에서 라브로프의 발언이 나온 데 주목해야 한다고 뉴스위크가 지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종교 뿌리, 동방 정교회서 갈라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동방 정교회의 주류 지역이다. 러시아는 지난 1월 기준으로 1억4550만의 인구 중 41.4%가 러시아정교회 신자이며 6,4%가 다른 기독교 신자로 나타나 6.5%인 무슬림을 압도한다.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4116만의 인구 중 82%가 기독교 신자이며 72.7%가 정교회를 따른다. 같은 정교회 신자라도 키이우 대주교를 따르는 교회와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따르는 교회로 나뉘는데 58.3%는 키이우를, 25.4%는 모스크바를 각각 따른다. 정교회라고만 밝히고 어디를 따르는지를 밝히지 않은 신자도 상당수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1054년 분리(대분열)됐지만, 사실 기독교는 그 이전에도 교리 해석을 둘러싸고 분열(소분열)을 해왔다. 기독교는 325년 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의 삼위일체설을 정통으로 받아들이고,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파를 파문한 뒤 단일 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431년 비잔틴의 테오도시우스 2세가 소집한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해서 양자가 병존한다는 네스토리우스의 주장 대신 신성과 인성이 하나라고 설파한 키릴루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네스토리우스파가 떨어져 나갔다. 네스토리우스는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교회에서 쫓겨나 수도원에서 쓸쓸히 여생을 살았다.
그 뒤 451년 칼게돈 공의회에서 이를 재확인하고 예수가 신성을 지난 채 성모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테오토코스(신성 출산)’이라는 단어를 신앙 고백인 ‘칼게돈 신조’에 넣고 이를 정통 교리로 확립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배척됐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중동과 중국 등으로 옮겨, 중동에선 아시리아 동방교회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선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기원 42년 복음사가 마르코가 이집트에서 설립해 수단‧리비아 등으로 교세를 확장한 곱트 정교회와 에티오피아의 테와히도 정교회, 시리아와 인도의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등 오리엔트 정교회도 단성설을 따르면서 이때 분리됐다.
주류 기독교는 당시 확립된 동일 교리를 따르는 공교회 또는 보편교회로 불렸다. 실질적으론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로마‧예루살렘‧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 등 지역 교회로 운영됐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드러난 러시아 정교회 본심
대분열을 두고 로마 가톨릭은 동방 정교회와 분리된 것으로, 정교회 측에선 로마 교회가 보편교회 연합체에서 이탈한 것으로 각각 다른 시각을 보인다. 그 뒤 1204년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약탈 등으로 양측은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 그 뒤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튀르크에게 점령된 이후로 모스크바 총대주교가 자신들이 정교회의 맥을 잇는다는 신념을 유지하고 있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좌는 무슬림인 오스만튀르크 제국 하에서도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정교회는 제정 시절에는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고, 공산 시절에는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바른 말을 하고, 힘없는 사람을 대신해 정의를 추구하는 대신 권력의 일부가 되어 탄압을 피하는 것은 물론 달콤한 특권까지 누려왔다는 지적이다.
2009년부터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맡고 있는 키릴 총대주교는 정도가 심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동안 외부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푸틴 권위주의 체제 하의 러시아에서 종교가 보여주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슬라브족의 영혼을 어루만지며 온갖 환난 속에서 민중을 위로해왔던 정교회가 권위주의 권력과 결합해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전 세가 똑똑하게 목격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러시아정교회의 위기를 부를 수 있는 비극적인 상황이다. 후과가 오래 가고,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사건이 아닐까.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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