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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래 최악’…위약금 내고라도 딜 깬다는 M&A 시장

역대급 한파…M&A 시장 ‘악화일로’
급락한 밸류에 M&A 협상 결렬 속출
위약금 내고라도 협상 접겠다 의지
반등 요소 없다…내년 전망도 우울

 
 
 
충북 진천군에 있는 PI첨단소재 공장. [사진 PI첨단소재]
“최근 10년간 가장 좋지 않다. 어쩌면 20년 중에 가장 좋지 않나 싶다. IMF 외환위기 때가 절대적 생존의 문제였다면, 현재는 상대적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최근에 만난 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대표는 최근 자본시장 분위기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는 물론 2000년대 중반 시장에 휘몰아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본 것이다.  
 

최악의 한 해…위약금 내고라도 M&A 드롭

 
인수합병(M&A) 시장에 한파가 몰아치면서 PEF 업계 안팎에서 ‘최악의 한 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게 중론이다.  
 
대내외 정세 악화로 경제 지표가 고꾸라진데다 반등 요소마저 뚜렷지 않아 일찌감치 올해 업무를 접었다는 곳이 대부분이다. 가팔라진 금리에 치러야 할 인수금융 이자 비용이 사실상 ‘더블’이 되면서 아예 인수 작업을 하지 말자는 분위기까지 퍼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협상을 진행 중이던 M&A를 깨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급기야 수백억원 규모 위약금을 고려하면서까지 계약이 결렬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예상 수준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과 인수금융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감안하면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M&A 시장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조3000억원 규모로 인수를 진행 중이던 PI첨단소재다. 14일 자본시장에 따르면 PI첨단소재는 지난 8일 “당사 최대주주인 매도인이 매수인으로부터 주식 매매계약을 해제한다는 통지를 수령했다”고 공시했다.    
 
앞서 PEF 운용사인 베어링PEA는 지난 6월 7일 글랜우드PE가 보유한 PI첨단소재 지분 54%를 1조2750억원에 거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당시 1주당 가격은 8만302원이었다. 금리 인상과 증시 부진 속에서도 조 단위 M&A가 체결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 했다.  
 
삐걱대는 협상 테이블의 복선이었을까. 당초 양측은 지난 9월 30일 매각을 끝내기로 했다. 그러다 협상 기한을 한 차례 연장해 오는 12월 30일까지 거래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2차 협상기한을 약 3주가량 앞두고 베어링PEA 측에서 글랜우드PE에 인수 포기를 선언한 것이다.  
 
시장에서도 갑작스레 전해진 소식에 깜짝 놀라는 모습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매각 결렬 전날까지만 해도 중국 기업결합신고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무난하게 진행되나 싶었는데 갑자기 결렬 소식이 전해져 놀랍다”고 말했다.  
 
매각 결렬을 둘러싼 다양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장 유력한 이유로는 인수계약 체결 이후 곤두박질친 주가가 꼽힌다. PI첨단소재는 14일 3만2100원에 장을 마쳤다. 인수 당시 주가와 비교하면 반년 새 주가가 60% 가까이 급락했다. 회사의 성장 잠재력을 보고 베팅했다지만, 괴리감이 커질 대로 커진 주가를 보며 인수 작업을 현행대로 마치는 것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대로 떠안느니 수백억 내는 게 났다

 
PI첨단소재 매각 결렬이 유독 관심을 끄는 부분은 베어링PEA가 위약금 지불을 감수하면서까지 협상 의지를 접었다는 데 있다. 업계에 따르면 베어링 PEA와 글랜우드PE는 500억원을 위약금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법적 공방 가능성이 있지만, 먼저 매각 결렬 의사를 알린 베어링PEA의 위약금 지불 이행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다. 바꿔 말하면 500억원을 감수하고라도 해당 M&A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해당 금액은 어지간한 중형 규모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이 가능한 절대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정도 위약금을 낼 수 있다는 것은 PEF 운용사 입장에서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PI첨단소재를 현 시점에 인수할 경우 입게 될 손실이 위약금보다 클 것이라는 내부 의견이 모였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하루아침에 매각이 없던 일이 될 처지에 놓인 글랜우드PE도 정면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베어링PEA의 인수 계약 해제 통지가 계약상 무효라고 판단하고 베어링PEA 측에 계약 이행을 촉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갈등이 본격화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M&A가 무위로 돌아간 사례는 PI첨단소재 말고도 여의도 IFC 빌딩, 디오, 메가스터디교육 등이 있다. 여의도 IFC 빌딩은 인수 양해각서 체결 뒤 원매자(미래에셋자산운용)가 매각 측(브룩필드 자산운용)에 지급한 2000억원의 이행 보증금 반환을 두고도 양측간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GS-칼라일 컨소시엄과 맺은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결렬됐던 3D 구강스캐너 업체 메디트는 MBK파트너스를 새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하고 협상을 진행 중이다. 각 M&A 사례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최근의 시장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M&A 협상이 새 국면을 맞거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사례는 앞으로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인수금융 이자 비용이 두 배로 뛰면서 부담이 커진 상황이 진정될 기미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펀딩 자체가 쪼그라든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문제는 내년 상반기가 올해보다 분위기가 더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며 “투자자들의 자금 출자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내년에도 사업 계획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까 고민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성훈 이데일리 기자 sk4h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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