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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귀신한텐 굿도 안통해”

“무식한 귀신한텐 굿도 안통해”

무식한 귀신한테는 굿도 안 통한다고 했던가. 뉴욕 외채협상 타결 이후 대미(對美)달러 환율이 1천5백원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외환수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가면서 정치권은 알량한(?) 성과를 자화자찬하기에 바빴고 언론은 아전인수격인 낙관적 보도로 장단을 맞췄다. 급기야 국민들은 환율이 금방이라도 우리 정부가 희망하는 1천2백∼1천3백원대까지 하락하고 외채위기가 내년이면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성 없는 성급한 희망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러나 냉엄한 국제금융시장의 현실은 이를 용납하지 않고 있고 결국 2월 중순부터 환율이 다시 급등하기 시작했으며 외환위기 해결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외환위기 해결에 적신호 최근 다시 국내 외환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 중 하나가 국내 금융기관들의 대규모 파생금융상품 거래손실과 역외펀드(off-shore Fund. 용어해설 박스 참조)의 운용손실 사태다. 얼마전 SK증권과 미국의 JP 모건은행간의 법정분쟁으로 그 심각성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그러나 외환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난해 동남아 통화위기가 발생했을 때 다 알고 있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SK증권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우리나라 금융기관들도 동일한 형태의 거래를 했고 이들도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다만 이들은 드러내지 않고 손실을 결제했거나 만기가 도래하지 않아 아직 감추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물론 어떤 금융기관은 반대로 동일한 형태의 거래로 상당한 이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SK증권과 모건은행은 대체 어떤 거래를 했을까. 거래내용을 순서대로 한 번 짚어보자. 첫번째는 모건은행이 일본의 엔화와 독일의 마르크화 그리고 미국의 달러 등을 빌려 이자를 많이 주는 태국의 바트화에 투자를 했다. 만약 바트화의 가치가 오르면 모건은행은 큰 수익을 얻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다. 엄청난 위험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당연히 모건은행은 위험을 회피하려 했고 그것을 상품화한 파생금융상품을 SK증권과 거래했다. 즉 모건은행은 바트화의 가치가 떨어졌을 때 SK증권에서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옵션을 샀다(좀더 정확히 말하면 모건은행은 빌린 엔화와 마르크화 그리고 투자한 바트화 등을 합친 통화묶음에 대한 옵션을 산 것이다). SK증권 입장에서 보면 미리 약정된 조건대로 바트화의 가치가 떨어질 때 모건은행이 보게 될 손실금액을 보상해 줄 의무를 지는 대가로 옵션 프리미엄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람은행이 끼어들었다. 즉 모건은행이 손실이 날 경우 SK증권이 보상을 해야 되는데 그것을 보람은행이 지급보증하도록 되었다. 둘째, 그렇다면 SK증권은 어떻게 옵션 프리미엄을 받았을까. 모건은행은 SK증권에 5천만 달러를 빌려 줬다. 금리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아직 정확한 거래계약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난해 초 국내금융기관들이 이런 거래를 할 때의 대략적인 조건을 보면 외국 금융기관들이 3천만∼5천만 달러 정도의 금액을 빌려줄 때의 이자율은 대개 리보금리(런던은행간 금리)에서 3%를 뺀 것이었다. 대략 연리로 3% 정도였다. 시장금리보다 훨씬 싼 이자율로 옵션기간에 빌려 주는 것이니 외화자금 차입 수요가 많은 국내 금융기관들로서는 이 만큼 좋은 조건은 없었다. 이 돈을 국내 금융기관에 안전하게 넣어 놓기만 해도 차익이 얼마인가, 돈이 눈앞에 보였다. 그래서 SK증권뿐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자신들이 부담할 리스크는 간과한 채 필요한 외화자금을 손쉽게, 값싸게 조달할 수 있다는 데 현혹돼 너나 없이 경쟁적으로 이 거래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또 이렇게 조달한 돈으로 역외펀드를 설정해 고수익을 노리고 국내 주식시장과 동남아 국가들의 자본시장에 투자했다. SK증권도 마찬가지였다. 빌린 5천만 달러를 역외펀드로 구성해 국내 주식시장과 동남아 증시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주택은행이 끼였다. 5천만 달러를 빌려오는 돈의 지급보증을 섰기 때문이다.

빌린 돈 깡통에 모건의 손실까지 배상? 악마의 웃음소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증시에 투자한 돈은 우리나라와 동남아 각국의 주가폭락으로 투자원금은 거의 깡통이 됐다. 동시에 태국 바트화 가치는 대폭락했다. 모건은행과의 계약내용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거래의 특성상 바트화의 환율변동에 따라 손익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기 때문에 SK증권은 계약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환차손을 보게 된 것이다. 손실이 커지면 중도에 손실을 보상하고 계약을 해지하면 되는데 SK증권은 그것도 안했다. 그러면서 SK증권은 “모건은행이 이번 파생상품거래의 위험성에 대해 사전고지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제금융시장은 파생금융상품이 지배하는 시장이며 시장참가자들간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그 메커니즘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파생금융상품은 그 본질이 위험을 제거하고자 하는 자와 그 위험을 취하고자 하는 자간의 거래이기 때문에 위험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하는 자는 더 이상 국제금융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에서 SK증권의 이러한 주장은 잘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양자간의 다툼은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분쟁을 통해 우리 금융기관들은 금전적 손실은 물론이고 국제금융 시장에서의 공신력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위험관리는 오늘날 지구촌 경제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며 그런 능력이 없는 자들은 바로 그 위험 때문에 제거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IMF 국제금융이라는 치욕적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위험관리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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