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살이 힘겨워…구리로, 용인으로
‘신유민(新流民)―’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의 행선지는 주로 경기도 외곽지역.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도 그랬다. 그러나 그 때는 쾌적하고 공기좋은 전원도시로 가는 ‘배부른’ 경우들이 많았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눈물을 머금고 떼밀려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경제적인 것. 부도맞은 자영업자들,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한 사람들, 이도저도 아닌 그냥 실직자들…. 이들에게 아파트 관리비 비싸고 사교육비 많이 드는 서울은 더 이상 ‘꿈의 도시’가 아니다. 서울 ‘꿈의 도시’ 아니다 이삿짐 운송업체인 통인익스프레스 서진만 영업부장(42)은 “최근 하루 30건에 달하는 이사건수 중 20건은 경기도로 이사가는 경우”라며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전에 비해 2∼3배 늘어난 수치”라고 귀띔했다. 서울시와 통계청 관계자의 얘기도 이런 추세를 뒷받침한다. 지난해 12월과 올 1월에 걸쳐 서울서 다른 시도로 전출한 인구수는 아직 통계로 잡힌 건 없지만 예년에 비해 20∼30% 정도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지난 2월 초까지 서울 잠원동에 살던 金모(36)씨. 얼마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외국항공사 서울지점에서 5년간 근무하고 95년 여행사를 차릴 때까지만 해도 고급승용차, 32평짜리 아파트에 사립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에 이르기까지, 남부러울 게 없었다. IMF 사태로 여행사가 부도나고 직원들에게 5천만원의 빚을 지기 전까진 그랬다. 지난 주 그는 경기도 용인 수지지구의 33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잠원동 집이 2억3천만원에 팔렸고 새 아파트가 1억6천만원이니 차액은 7천만원. 직원들에게 진 빚을 갚고도 2천만원이 남았다.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그는 이 돈으로 비디오 가게라도 차릴 작정이다. 같은 달 초 모은행에서 권고사직 당한 박모씨(56·서울 반포동)는 최근 5억원을 호가하는 자신의 집을 내 놨다. 이사가려고 하는 곳은 경기도 외곽지역. 지금까지 직장 때문에 서울서 산 그로서는 더 이상 서울에 머물 이유도, 능력도 없다. 잠실 45평형에 살던 최모씨(50). 지난 1월말 22년 다닌 회사에서 정리해고당한 그는 한동안 고민한 끝에 행선지를 경기도 평촌의 24평형 아파트로 정했다. 이제 수입이 한 푼도 없는 데다 지금 와서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것도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사람을 쓰려는 곳도 없거니와 나이가 걸려 재취업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서울보다 모든 것이 싼 ‘경기도’민의 일원이 되기로 했다. 잠재적 신유민 숫자도 상당 최근 부동산 경기침체로 거래가 거의 중단된 상황임을 고려할때 ‘잠재적 신유민’의 숫자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내집마련정보사의 김영진 사장은 “IMF 한파로 서울서 비교적 시세가 낮은 경기도 구리·용인·수원 등 외곽지역으로 이사를 나가는 사람들이 전보다 20% 정도 늘어났다”며 “구체적인 절차를 묻는 전화 문의도 5배 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구리시 인창동 델타공인중개소 안철욱 사장도 “거래되는 절대 물량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도 IMF 이후 서울서 구리로 이사오는 가구가 2배 가량 증가했다”고 말한다.이같은 현상은 주로 서초·강남·송파·양천·마포·노원구 등 아파트 단지가 밀집돼 있는 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양천구 목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거래만 안 되고 있을 뿐 지금 매물을 내 놓고 있는 사람들의 80% 이상이 서울 외곽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이라며 “반면 이 곳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고 말했다. 씀씀이 자체를 줄이는 마당이라 생활비 부담도 ‘탈(脫)서울’에 한몫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비를 예로 들어 보자. 서울 잠원동 32평형 아파트의 경우 지난 달 관리비는 23만원 정도. 경기도 용인시 수지지구 같은 평형은 15만원이다. 모든 평수에 걸쳐 대략 40% 정도 차이가 난다. 학원비·음식값 등도 마찬가지. 그러다 보니 “그래도 서울이…” 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사고가 IMF 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서울이 뭔데…”로 변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다른 이유로 ‘신유민’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다름아닌 재(財)테크’를 위해서다. 서울 잠실동 B아파트 28평형에 살던 회사원 최모씨(38)는 지난 2월말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지구의 22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사를 한 이유는 간단하다. 5살 난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돈을 불리기 위해서. 그는 2억1천만원에 서울 아파트를 팔고 9천5백만원에 남양주 아파트를 샀다. 이사비용을 제외한 1억1천만원을 은행에 맡기면 3년 안에 5천만원의 금융소득을 얻을 수 있다. IMF 체제를 오히려 재테크의 호기(好機)로 삼은 셈. 이런 케이스는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의 직장인들 사이에 많다.이런 저런 이유로 서울시내 일부 초등학교들의 경우 40명선인 학급 학생수가 4∼5명씩 줄어든 반들이 적지 않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사업에 실패한 뒤 서울에서마저 밀려나는 신유민이 IMF 시대 우리의 자화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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