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정부 씀씀이 헤프면 외국투자자 안온다

정부 씀씀이 헤프면 외국투자자 안온다

매주 금요일 미국 썬락 캐피탈의 월터 아인혼 CEO(최고경영자)의 책상에는 두툼한 신문 한 부가 놓인다. 대표적인 미국의 금융 전문 주간지 「배런스」. 그는 포천 스몰 비즈니스誌와의 인터뷰에서 “「배런스」를 통해 시장 움직임과 그에 대한 분석을 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혼 CEO 외에도 미국에서는 많은 금융 전문가와 투자가들이 주말 동안 「배런스」를 들춰보며 다음 주의 시장 향방을 점쳐보고 있다. 10월8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이 있었던 다음날 만난 에드윈 핀 배런스 사장 겸 에디터에게 던진 첫번째 질문은 전쟁이 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한 것이었다. 「배런스」는 지난 10월1일자를 통해 지금까지 있었던 5개 전쟁 이후 증시 움직임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눈길을 끈바 있다.

- 예상했던 대로 미국과 탈레반의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전쟁이 금융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전쟁 발발 후 얼마 간은 물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겠죠. 그러나 장기적으로 美 증시는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로 증시는 이후 경기 움직임 보다 6개월 정도 앞서 나가는 지표 역할을 하므로 전반적인 경기도 내년 상반기까지 안정 궤도에 들어서리라 봅니다. 물론 90년대와 같은 호황을 기대하긴 힘듭니다. 사실 지난 3∼4년간 美 증시는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었죠. 역사적으로도 미국이 겪어온 5개 전쟁 즉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전 중 베트남 전쟁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전쟁 이후 주가는 결국 장기적으로 상승세로 돌아섰습니다. 개전 초 시장은 전쟁으로 인해 공포에 빠졌지만 결국 전쟁은 경제와 증시의 성장 엔진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투자자들의 경기에 대한 인식이 어떠냐입니다. 앞으로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증시에도 호재로 작용하겠죠. 그러나 추가적인 테러가 발생하거나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베트남전 이후와 같은 폭락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투자자들의 인식 「배런스」가 지금까지 시장 예측에서 한 발 앞서왔을 뿐 아니라 시장 움직임을 이끈다는 평판을 들어왔다. 실제로 美 테러 직후 나온 발행호에 「배런스」는 ‘지금이 주식을 살 때(It’s time to buy stocks)’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테러 후 첫 개장일에 무려 14% 폭락한 美 증시는 ‘「배런스」 효과’ 등에 힘입어 그 다음 주 월요일 다시 5%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배런스」의 분석대로 미국 주식 시장은 지금 바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장기적인 투자를 한다면 지금이 주식을 살 좋은 시점이라고 봅니다. 테러 직후 「배런스」는 FRB(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모델 적용시 현재 美 증시가 17% 정도 저평가됐다고 밝혔습니다. 즉 지금이 시장에서 괜찮은 기업들의 주식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시점이라는 거죠. 게다가 올 상반기까지 하락세를 보이던 S&P 5백대 기업의 수익도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어 증시도 상승세를 탈 전망입니다.” 지금은 美 경제의 내년 상반기 회복을 점치는 등 낙관적인 입장이지만 IT(정보기술) 호황이 한창이던 1999년 5월 「배런스」는 ‘아마존닷범(AMAZONE.BOMB)’이라는 제목으로 아마존의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고 꼬집었다. 아마존의 주가 상승세에 들떠있던 투자자들은 「배런스」의 느닷없는 악평에 격분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이런 「배런스」의 평가는 정확했음이 입증됐다. 당시 1백18달러에 거래되던 아마존 주식은 현재 10달러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뿐만 아니라 「배런스」는 인텔을 비롯한 주요 IT 업체들이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미 2년 전 예측한 바 있다.

IT株 투자 ’기다리기 게임‘

-IT산업의 미래는 어떨까요? 여전히 비관적으로 보시는지요? “아닙니다. 기술 덕분에 많은 기업들이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메일이나 인스턴트메시징(IMS), 그룹웨어 등이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죠. 지금까지 기술을 통한 효율성 확대는 50% 정도 이뤄졌습니다. 아직 나머지 50%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거죠.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구입 비용을 지출할 의사가 있기 때문에 IT기업들의 전망은 밝습니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IT株에 대한 투자는 ‘기다리기 게임(waiting gam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된 이 상황을 극복한다면 언젠가는 회복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제 투자자들은 IT기업에 대한 마구잡이 투자에서 벗어나 선택적인 투자를 할 때입니다.” 「배런스」의 명성에 대해 핀 사장은 “미래에 초점을 맞춰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최신 정보를 분석해 기사를 쓴 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배런스」에서 일하는 25명의 기자 대부분이 애널리스트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또 “투자자들 눈치 보지 않고 소신 있게 기사를 쓴다는 것도 다른 매체들과 다른 점”이라고 강조했다.

- 일부에서는 이번 테러로 뉴욕이 폐허가 되면서 세계 금융 중심지로서의 뉴욕의 위상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세계 자본이 테러로 불안해진 미국을 떠나 유럽·중국 등 안전한 투자처로 옮겨 갈 것이라는 예측도 하고 있는데요? “경제 중심지로서의 뉴욕의 위상은 계속될 것입니다. 뉴욕만큼 자본과 전문지식이 풍부한 곳은 없죠.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근에 백업 센터를 구축하고 경비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또 투자처로서의 미국의 매력도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러는 앞으로도 가장 강력한 통화로 남을 것입니다. 2001년 유로화 시대가 열리면서 유럽 시장이 부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복지 등에 대한 정부 지출이 많다는 게 투자자들의 발길을 막고 있습니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은 곳에 돈을 집어넣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죠. 지금까지 달러가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경제가 좋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탄력적으로 재정을 운영한 정부의 역할도 컸다고 봅니다.”

-최근 FRB의 연이은 금리인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은 효과가 있을까요? “FRB의 금리인하는 전반적인 경제나 주식시장 모두에 제한적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다만 그 효과가 가시화되는 데는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릴 거예요. 아직 한 번 정도 금리인하가 더 있을 것으로 봅니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지원책이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자신감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제로금리 정책에도 불구하고 장기 불황에 빠져 있는 일본의 경우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80년대 중반부터 아시아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왔다는 핀 사장은 이 지역에 대해 “90년대만큼은 아니지만 미국 시장보다는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국제적인 매체로 거듭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배런스」는 장기적으로 아시아판을 내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 한국 시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여기서는 미국 시장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빗대 ‘미국에서 기침만 해도 한국에선 감기에 걸린다’는 우스갯소리도 하는데요. “한국 시장은 기업들의 주가수익률(PER)이 높을 뿐 아니라 반도체·휴대폰 등 IT산업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장기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주가도 적정하게(fairly) 평가됐습니다. 다만 미국 시장과의 연관성은 앞으로 더 커질 것입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세계 금융 시장은 결국 하나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급속한 자본 이동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각국 비즈니스의 유대 관계가 강화된 것도 큰 요인입니다. 특히 한국 시장이 미국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 주식시장에 들어온 투자자 대부분이 미국 출신이라는 사실과 한국의 對 美 수출 비중이 높다는 사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사흘 간의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핀 사장은 비공식적으로 업계 대표들과 만나 현재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공유했다. 핀 사장은 1년에 한 차례 정도 각국을 방문해 그 지역 기업인들로부터 현지 상황에 대해 듣는다. 그는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CEO들이 “효율성 극대화라는 공통적인 고민에 빠져 있다”면서 과거에 비해 역동적으로 변화에 대처하려는 경영자들의 달라진 모습을 전했다. 그 역시 배런스라는 한 회사를 이끄는 경영인으로서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환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음 방문지인 일본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다시 만난 ‘정의선·도요타 아키오’...日 WRC 현장서 대면

2 신원식 “트럼프, 尹대통령에 취임 전 만나자고 3~4차례 말해”

3‘서울의 아침’ 여는 자율주행버스...26일부터 운행

4‘제조업 자동화’ 가늠자 ‘로봇 밀도’...세계 1위는 韓

5영풍, 고려아연에 배당금만 1조1300억 수령

6KT, 1.6테라 백본망 실증 성공...“국내 통신사 최초”

7'윤여정 자매' 윤여순 前CEO...과거 외계인 취급에도 '리더십' 증명

8‘살 빼는 약’의 반전...5명 중 1명 “효과 없다”

9서울 ‘마지막 판자촌’에 솟은 망루...세운 6명은 연행

실시간 뉴스

1다시 만난 ‘정의선·도요타 아키오’...日 WRC 현장서 대면

2 신원식 “트럼프, 尹대통령에 취임 전 만나자고 3~4차례 말해”

3‘서울의 아침’ 여는 자율주행버스...26일부터 운행

4‘제조업 자동화’ 가늠자 ‘로봇 밀도’...세계 1위는 韓

5영풍, 고려아연에 배당금만 1조1300억 수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