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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불황인데 부도는 왜 줄지?”

“어, 불황인데 부도는 왜 줄지?”

‘바닥경기’ 지표 격인 실업률과 어음부도율이 신호등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들 지표를 보면 ‘우리 경제가 불황인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9월 실업률이 외환위기 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전국 어음부도율은 99년 7월(0.09%) 이후 최저 수준인 0.11%를 기록하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데 어음 부도율이 왜 떨어질까?’ 우선 경기흐름과 어음부도율 동향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경기흐름과 무관하게 어음부도율이 낮아지거나 높아질 수 있다. 어음부도율은 경기보다 자금흐름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2% 선으로 초저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실물경제는 나빠지고 있지만 시중 자금사정은 풍성해지면서 부도율을 끌어내린 셈이다. 시중 자금사정이 넉넉해진 이유는 한국은행이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부양을 겨냥해 대거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돈이 많아지면서 기업들은 돈을 구하기 쉬워졌고 부도도 줄게 된 것이다. 반대로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으로부터 돈을 환수(통화긴축)하게 되면 은행은 기업여신을 줄이거나 회수함으로써 부도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어음부도율이 낮아진 두번째 이유를 든다면 어음과 당좌수표 거래에 의존해온 상당수 부실 중소기업들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거 정리된데다 부도위험에 노출된 대기업들은 금융기관의 ‘우산’속에 묻혀 있음을 꼽을 수 있다. 부도를 낼 만한 영세기업은 이미 부도를 냈고, 부도 우려기업은 워크아웃이나 화의 등으로 ‘식물기업’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기업의 부도가 없는 만큼 어음부도율이 낮아지는 게 당연하다. 어음부도율은 어음이나 당좌수표의 교환금액(지급제시금액) 중 얼마만큼 결제하지 못했는지 산출하기 때문이다. 만일 대기업이 부도를 낸다면 금액이 큰 만큼 부도율이 급격히 올라갈 수 있다. 다음은 결제방식의 획기적 변화를 들 수 있다. 우선 기업간 또는 기업과 개인간 거래 때 어음이나 당좌수표보다는 안전한 현금을 선호하면서 어음과 당좌수표 사용이 크게 줄었다. 여기에다 구매전용카드, 구매자금 대출, 전자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등 어음대체 수단의 등장도 부도율을 낮춘 요인이다. 이런 전자결제시스템의 확산으로 어음발행이 줄고 있다. 삼성물산·LG전자·동원산업 등 일부 기업은 어음발행 중단을 선언했다. 서울 명동 사채시장에서는 ‘어음 가뭄’을 하소연할 만큼 우량기업 어음을 찾기가 어렵다. 1백여년 동안 기업간 결제수단의 상징이었던 어음이 서서히 퇴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업어음 할인잔액은 지난해 말 19조3천억원에서 10월10일 기준 15조원 선으로 줄었다. 어음과 당좌수표의 지급결제 규모는 작년 상반기 중 하루 평균 25조원 선에서 올 상반기엔 18조원(3백68만건)정도로 축소됐다. 어음을 몰아내고 있는 구매전용카드제는 구매기업이 납품대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납품기업은 구매기업의 지급대행 은행(카드사)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는 결제시스템이다. 99년 하반기부터 시중은행 및 카드사 등이 시작한 이 시스템은 빠른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작년 5월 말께 선보인 구매자금 대출제는 납품업체가 납품 완료 후 인터넷을 통해 지급은행(구매업체 거래은행) 앞으로 ‘판매대금 추심의뢰서’(세금계산서 첨부)를 전송하면 지급은행이 구매업체에게 대금을 청구하여 결제해 주는 방식이다. 최근 일부은행과 대기업이 제휴형태로 확대되고 있는 전자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대기업과 협력기업이 특정 은행과 제휴하여 대기업(구매자)은 지급금액과 결제일 등의 정보를 제휴은행에 전자로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은행이 우량 대기업의 외상 매출채권을 담보로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셈이다. 이런 어음대체 수단의 결제금액은 기업구매자금 대출 8조1천2백32억원,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7천8백7억원, 기업구매전용카드 3조2천4백66억원 등 모두 13조원 정도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업어음 할인 잔액과 비슷한 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음이나 당좌거래보다 사채나 자기자금으로 장사함으로써 공식적인 어음부도율에 포함되지 않는 영세 중소기업의 증가도 부도율 하락의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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