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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도 내가 하면 ‘로맨스’?

‘불륜’도 내가 하면 ‘로맨스’?

“국기(國基) 수호 차원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 1998년 4월 최원석 당시 동아건설 회장이 외자를 들여와 김포매립지를 첨단산업 및 관광단지로 개발하겠다고 선언하자 농림부가 최회장과 김성훈 당시 농림부장관의 면담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까지 돌려가며 밝힌 결연한 의지다. 이 땅의 용도 변경 추진은 국기 문란 행위라는 해석이다. 김장관은 그 다음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땅의 농지로서의 경제성에 대해 따지자 “경제성 따지면 농사 못 짓는다”며 동아측에 대해 “한 마디로 농사 지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힐난했다. 그 후 정부가 동아건설로부터 사들인 이 땅의 절반이 관광 레저 단지, 첨단 연구단지, 물류유통단지 등으로 개발된다. 농림부는 지난 10월25일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실무 협의회를 거쳐 내년 1월까지 개발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농림부로서는 3백73만평에 이르는 큰 땅을 방치한 채 연간 6백억원에 이르는 이자비용을 물기도, 경제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농지로 보전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동아건설의 한 관계자는 “농지로의 보전은 타당성이 없기 때문에 개발하는 게 아니냐”며 “농림부의 개발방향은 당시 동아가 내놓은 안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정승 농림부 농촌개발국장은 “어떻든 개발 수익금 전액이 국고로 들어가기 때문에 용도 변경에 따르는 특혜 시비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측은 이런 주장에 대해 “동아도 당시 개발 이익은 환원하고 막대한 공사 물량에 대한 시공권만 확보하겠다고 했었다”고 반박했다. 3년여 전 추진한 용도 변경도 개발 이익만 환수하면 특혜 시비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동아의 한 직원은 “사실상 내용이 같은 용도 변경인데 우리가 하면 안 되고 정부가 하면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용도 변경은 정당하고 민간 기업이 추진한 용도 변경은 부당하다는 정부의 ‘이중 잣대’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랄까? 박준범 회계사는 “정부로서는 당시 특혜 의혹을 받아가면서까지 용도 변경을 해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부실 기업 퇴출에 대한 기대가 높았습니다. 정부가 용도 변경을 용인했다면 퇴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박약하다는 인상을 주고, 아마 다른 부작용들이 생겼을 겁니다.” 시장을 ‘물 먹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부양책을 쓰고 있는 지금이라면 처리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도 변경 불허가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개발 추진으로 이제 정책의 일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그 후 동아건설이 워크아웃을 통해 회생했다면 연고권을 인정해 시공권을 주는 방식으로 보상해 줄 수도 있겠지만 동아는 지금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김포매립지의 농업도시로의 개발은 또 이 땅에 부과된 법인세 4백55억원을 돌려달라며 동아가 제기한 법인세 부과 취소소송 상고심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사전에 약속한 용수시설을 해주지 않아 농사가 불가능한 땅에 국세청이 농지 수준의 법인세를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며 98년 12월 동아측이 낸 이 소송은 1심에선 원고측이, 지난 10월12일 있었던 2심 판결에선 국가가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농경지는 지목과 관계 없이 실제로 경작에 이용되는 토지”라고 해석한 반면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은 “조성 목적이 농경지로의 활용이었고 간척사업 준공 인가도 농지로 나간 만큼 매립 후 농사를 짓지 않은 것은 동아측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 땅 중 절반을 정부가 농업도시로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농림부는 파산절차를 밟고 있는 동아의 파산관재인이 대법원에 상고할지는 불투명하다고 밝혔으나 동아건설의 한 관계자는 이미 상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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