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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홍보맨이 ‘공직 생태계 파괴자’가 된 이유[허태윤의 브랜드스토리]

지자체 유튜브 구독자 70만명 돌파…예산 61만원 불과
기존 채널 대비 재미 강조…그가 ‘홍보의 신’이 되기까지

지난해 9월 일간스포츠와 이코노미스트가 공동 주최한 '2023 K포럼'에서 김선태 충주시 홍보맨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서병수 기자]
[허태윤 칼럼니스트] 충주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충TV’가 엄청난 화제다. 지자체 채널로는 이례적으로 구독자가 충주시 인구의 3배가 넘는 70만명(24년 4월 말 기준)을 넘어섰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유튜브 채널은 전문 대행사를 써서 수억원을 들여 만들어도 구독자가 1000명 이하인 채널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매우 놀라운 결과다.

더 놀라운 점은 충주시의 예산이 달랑 월 61만원이라는 점이다. 이 예산은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월 결제료다. 담당자인 김선태 주무관이 기획, 촬영, 편집, 연출, 출연까지 다 한다. 더구나 그는 동영상은 커녕, 사진도 배워 본 적이 없는 완전 초보자다. 그래서인지 영상은 매우 거칠다. 아마추어가 만든 표현과 촌스러운 B급 감성이 넘쳐난다. 그렇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어떤 영상 만들었길래, 대박났을까

그가 만든 동영상 중 가장 많은 991만회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공무원 관짝 춤’이다. 1분 15초의 이 동영상은 코로나19가 한참이던 2020년, 당시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었던 가나의 장례 풍습을 담은 영상을 패러디해 코로나 예방수칙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또 이 채널은 트렌드도 놓치지 않는다. 숏폼 영상을 중심으로 ‘슬릭백 댄스’가 유행하자, 이것을 충주시의 상수도 공사 안내를 전달하는 모티브로 활용하는 순발력을 발휘해 순식간에 380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홍보맨이 직접 추는 어설픈 ‘슬릭백 댄스’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공사중’ 팻말을 보지 못하고 맨홀에 빠졌음을 상상케 하는 15초짜리 영상이다.

충TV가 공공기관의 성공 사례로 알려지자, 급기야 대통령도 정책홍보 혁신 사례로 이 유튜브 채널을 언급했다. 그러자 의회와 시에서는 채널 운영 예산을 더 쓰라고 했다. 하지만 김 주무관은 이를 거절했다. B급 정서를 활용하는 것이 진정성의 비결인데, 3~4명의 촬영 스텝을 데리고 다니고, 더 전문적인 편집으로 세련된 영상을 만들면 이 채널의 근본이 흔들린다는 이유 때문이다.

김 주무관은 이런 성공에 힘입어 국민 MC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온더블록’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 ‘SNL Korea’, ‘삼프로 TV’ 등에도 출연했다. 최근에는 ‘홍보의 신’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여기 저기에 특강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귀한 몸이 됐다. 

김 주무관은 기존 지자체 유튜브 채널들의 실패한 원인을 '아무도 보고 싶지 않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 한 것'에 있다고 봤다. 이에 대중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영상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또 아무도 관심 없는 지자체 시정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충주를 알리고 관심을 갖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다행히 그는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운영을 담당한 경험이 있어 B급정서가 젊은 층에게 통한다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다. 자신의 개인 스마트폰과 셀카봉, 그리고 무료 편집 프로그램만 가지고 만들 수 있는 B급 정서 콘텐츠를 시작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목표를 단순화했다. 아무도 관심없는 충주시, 심지어 청주시와도 헷갈리는 충주시를 우선 기억하게 만들자는 단순한 목표를 설정했다.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는 다음의 문제였다. 타깃을 무조건 충주시 시민만이 아닌 SNS에 익숙한 전국의 MZ세대로 설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또 채널 성공의 이유에는 충주시장의 확고한 의지와 보이지 않는 후원이 있었겠지만, 김 주무관의 전형적 인공조직의 문화를 파괴하는 용기와 전략적 판단이 들어갔음은 물론이다. 

‘공공기관 홍보’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아무런 전문성도 없는 평범한 하급 공무원이 이처럼 파격적인 공공기관의 유튜브 채널 운영은 물론, 인기 유튜버 채널 수준의 성과를 올린 것은 의미가 특별하다. 무엇보다도 이 유튜브 채널은 한국의 공직 사회에 매우 의미 있는 혁신의 파장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김 주무관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공직 생태계의 파괴자’가 됐다. SNS 플랫폼은 전형적인 상호 소통형 매체로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도, 보지도 않는다. 공급자 중심의 일방적인 소통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공공기관에게는 맞지 않는 매체를 시작한 지 3년밖에 안 된 아마추어가 오래된 관행과 구태를 깨고 새로운 문화를 만든 셈이다.

또 지자체는 물론이고, 중앙 정부조직도 ‘충주처럼’ 홍보하는 것이 화두가 됐다. 최근 서울시도 지금까지의 유튜브 소통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서울시는 공무원 대상 ‘서튜버’ 선발대회를 통해 뽑은 대상 수상자를 홍보 기획관으로 임명했다. 그에게는 김 주무관처럼 기획취재, 편집까지 자유롭게 영상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제공된다.

광주시 동구의 도서관 ‘책정원’ 인스타 릴스영상도 과거 공공기관의 영상 작법에서 벗어나 담당 공무원이 젊은 세대들의 감성에 맞는 B급 영상을 연출해 닷새만에 영상 조회수가 100만회를 넘었다.

강원도에서도 ‘강원이 TV’를 새롭게 선보이며 이전에 볼수 없었던 창의적 영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국의 공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담당자들에게 영상 제작의 전권을 주고,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는 재미를 통해 소통의 장을 만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바라보는 관점이 생긴 것도 큰 변화다. 과거 공공기관의 홍보는 '정보가 몇 명에게 전달됐느냐'보다, '홍보를 했는가'의 여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지자체마다 유튜브 채널 제작 지시가 있으면 외부 용역을 통해 만들고,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만 집중했다.

평범한 한 지방 하급 공무원이 ‘궁시렁’거리며 만든 유튜브 채널을 통한 작은 변화가 대한민국 공조직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뿐만 아니다. 그의 채널 성공 비결은 비단 유튜브를 이용한 지자체나 공공부문 뿐 아니라 SNS 시대를 관통하는 콘텐츠 작법의 전범(典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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