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증권쟁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YS정권 이후 정치자금의 증시장난 1백% 사라졌다"
돌아온 ‘증권쟁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YS정권 이후 정치자금의 증시장난 1백% 사라졌다"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 ‘주식쟁이’가 돌아왔다. 1998년 말 국내 최초로 뮤추얼펀드를 도입하며 증시 활황을 이끈 일등공신인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회장(43·사진). IMF(국제통화기금) 체제에 찌들어 있던 개인 투자자들의 우상으로 군림하던 그가 8개월여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지난 11월27일 조용히 귀국했다. 당초 일정을 1년 3개월여 앞당긴 귀국이다. 미 실리콘밸리에 머물며 현지 금융·벤처업계 인사들과의 네트워크 구축에 매진하던 그가 조기 귀국한 이유는 뚜렷치 않다. 본인은 “원래 미국에 있으면서도 전화비가 한 달에 3백만원이 넘을 정도로 본사 경영에 관여해 왔는데 이제는 국내 사업에 좀더 힘을 쏟기 위해 온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박회장이 이제 국내 증시가 대세상승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온 게 아닐까”는 성급한 관측도 돈다. 그의 동물적인 감각 때문이다. 하지만 박회장은 이를 일축하고 있다. 오히려 그는 “대세상승은 멀었다”고 단언한다. 미국으로 가기 전부터 금융기법의 국제화를 주변에게 강조해온 만큼 이에 대한 소감이 궁굼했다. 그에 앞서 그의 영어 실력 좀 늘었을까. “(웃으며) 꽤 늘었죠. 지금은 사람을 만나 통역 없이 얘기도 가능할 정도는 됐습니다. 물론 그쪽에서 말을 빨리 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는 있지만…. 사실 영어 공부할 시간이 모자라 놀러도 못 다녔어요. 아마 사람 만나는 약속이 있는 날 빼곤 하루에 10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했을 겁니다.”(그의 측근에 따르면 박회장은 CNBC 방송을 녹화해서 제대로 들릴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 들었다고 한다) 증시는 어느 나라든 경제의 거울이다. 그리고 박현주의 눈은 한국에선 알아주는 시장통 아닌가. 그의 눈을 통해본 미국 경제를 물었다. “그동안 미국 경제의 성장을 이끈 투자와 소비라는 두 개의 축이 약해지고 있어 강력한 경기 회복까기 가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먼저 기업들은 잉여생산 설비가 남아 있어 빠른 시일내에 투자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가계에서는 주가 하락과 실업률 상승으로 저축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많은 부문에서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고 이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회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또 9·11 테러사태 이후 적극적인 재정정책 시행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엔 장기적으로 미 경제는 충분히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실리콘 벨리는 IT. 벤쳐산업의 국제 1번지. 그러나 최근 이곳도 사람이 떠나 텅빈 폐광 같이 삭막한 도시라고 하는데 그는 미국에 머물면서 도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이곳에서 그는 또 어떤 돈벌이를 생각했을까. “실리콘 밸리는 지식을 파는 곳이라는 인상을 깊게 받았습니다. 지식이 기업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더군요. 훌륭한 소프트웨어와 좋은 인재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닫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 생활은 미래에셋의 성장 잠재력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죠. 경쟁력이 있는 금융기관을 갖추어 가는 것은 직원을 어떤 경쟁력으로 키워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내로라 하는 ‘증권쟁이’에게 증시를 안 물어보는 것은 대단한 실례다. 박 회장은 올 초 미국으로 떠날 때 “증시침체의 어두운 터널에 진입했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그런 것인가. “우리나라 전체로 볼 때는 최악의 상황은 지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면 매출액이 내년에도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내년 세계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이상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9·11 테러 직후 미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만 교수는 ‘뉴욕타임즈’ 칼럼을 통해 한국의 성장 잠재력을 신뢰하는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 국내 증시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반 개미 투자자들은 헷갈리기 딱 좋다. 조정을 기다리면 다락같이 올라 허탈해하고 그렇다고 뒤쫓기도 어렵다. 한편에서는 1천포인트 하면서 대세상승론을 점치는 목소리는 만만치 않고. “전 개인적으로 구체적인 지수 수준을 얘기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세상승을 논하기는 다소 빠릅니다. 주가가 강력한 상승으로 전환하려면 기업들은 자기자본이든,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이든 기회비용 이상으로 이익을 재창출해야 합니다. 근데 불행하게도 아직은 마이너스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보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을 낮추는 한편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서 투하자본에 대한 수익률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이를 기대하기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강력한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가시화돼 경쟁의 틀을 갖추어 나가고 경제 주체들이 적절히 대응만 해나간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채권수익률보다는 주식수익률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의 말이 맞다면 일반투자자들의 행동지침에 대한 해답은 어느 정도 나온 셈아닐까. “올해 종합주가지수는 5백50포인트를 축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변화를 읽고 리드한 기업들의 주가는 상승추세를 이어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바이 코리아’, 즉 ‘한국’을 사기에는 다소 이르지만 주주 중심으로 변화를 선도하는 건전한 기업들의 주가는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투자자들에게는 좋은 기업이 어딘지 선택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이럴 때는 간접투자 비중을 높여야 할 때라고 봅니다.” 박회장은 수수료 인하를 선도한 장본인이다. 증권사간 수수료 인하경쟁을 불붙인 방화범인셈이다. 그 덕에 증권사들은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아우성이다. 그의 죄과(?)가 크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증권사들의 수익구조는 나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9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14.8%가 늘어났어요. 오히려 이 문제의 본질은 증권사들이 수익에 앞서 저렴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각종 스캔들은 증시엔 독약이다. 더구나 기반과 수급이 취약한 코스닥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 등 증시를 둘러싼 각종 스캔들과 특정 인사를 지칭한 각종 루머는 투자자들에겐 골칫거리다. 왜 이런 문제가 자꾸 생기는 것인지 갑갑한 게 요즘 상황이다. “그런 스캔들이다 게이트다 하는 것들은 모두 비제도권 사람들이 증권시장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등 제도권 종사들을 동일시하여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도권에서는 엄격한 통제 시스템이 항상 작동되고 있습니다. 비제도권 인사들이 저지른 것과 같은 일들이 도무지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캔들을 일으킨 비제도권 인사들과 제도권 인사들을 동일선상에서 매도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제도권의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입니다. 개인적으로 그점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박회장은 인터뷰 내내 ‘백 투 더 베이직스(Back to the basics)’를 강조했다. 미래에셋증권의 투자전략도 그렇거니와 자신 또한 오직 한 길을 가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회장이 앞으로 어떤 진검승부수를 들고 나올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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