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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경영진·종업원 ‘三位一體’가 성공 요소

채권단·경영진·종업원 ‘三位一體’가 성공 요소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왼쪽에서 두번째)과 직원들.
대우조선·벽산건설·일동제약·남광토건….’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뭘까. 내로라 하는 한국의 기업이란 점 말고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란 기업 갱생작업에 들어갔다가 성공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건설·우방·진도….’ 등의 공통점은 뭘까? 이들은 반대로 워크아웃에 실패해 법정관리 등 다른 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들이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들 간에도 ‘빛과 그림자’가 명확하게 갈리고 있는 것이다. 워크아웃이란 낯설은 제도가 시행된 것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상황이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시기다. 당시 무분별한 사업확장·계열사 간 지급보증·과다한 부채라는 악순환 고리를 가지고 있던 기업들은 영업환경 악화까지 겹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자체 능력으로는 부채를 갚아나갈 능력이 없었던 이들 기업은 채권단에 백기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채권단 역시 이들 기업이 파산하기보다는 지원과 협력을 통해 되살아나야 빌려준 돈을 더 많이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 부실기업이 일시 부도날 경우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경제체질이 급속히 악화되는 것을 우려했던 정부의 개입도 한몫 했다. 워크아웃은 이렇게 정부·부실기업·채권금융회사 간 이해가 맞아떨어져 시작됐다. 워크아웃 시행 이후 신청업체 수는 1백6개에 달했다. 이 중 통일그룹 계열사 등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 기업은 9개다. 계열사간 지급보증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어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때문이다. 워크아웃에 실제로 들어간 기업은 97개사. 이 중 동아건설·우방 등 12개사는 자구노력 부족이나 채권단의 회생불가능 판단 등에 따라 워크아웃이 중단됐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워크아웃이라는 좁디좁은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 기업은 44개 업체에 불과하다. 내부 합병으로 줄어든 16개사를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25개사가 구조조정이라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위기를 극복한 기업들의 성공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채권단·경영진·종업원’이라는 삼각축의 일치단결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벼랑끝에 몰린 기업을 다시 평지로 이끌어내는 데는 이들 ‘삼두마차’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워크아웃을 졸업했거나 자율추진업체로 선정된 기업들을 보면 이 같은 점을 잘 알 수 있다.

채권단 지원은 필수 우선 채권단과 주관은행의 시기적절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기업이 원활하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기본이고, 구조조정 작업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성공적인 워크아웃 사례로 꼽히는 대우조선과 대우종합기계(옛 대우중공업)를 보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옛 대우중공업을 3개사로 분할하는 시도를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채권단 내부와 소액주주의 반발이 있었다. 회사를 분할하는 것은 기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이근영 산은총재 등은 소액주주로부터 형사고발까지 당하는 곤욕을 치뤘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뚝심 있게 몰아부쳤다. 대우중공업 분할을 담당했던 산은 최익종 팀장은 “처음 시도되는 일인만큼 안팎의 반발이 컸지만 대우중공업을 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판단돼 밀어부쳤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대우조선과 대우종합기계는 모두 워크아웃에서 졸업하는 개가를 올렸다.

경영진 私心 버려라 또 하나는 경영진의 사심 없는 투명 경영과 피나는 자구노력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부실기업주들이 수조원대의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감춰놓은 사실이 감사원으로부터 적발돼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고집하고 채권단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는 이런 기업들은 회생하려고 해도 되살아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공기업들은 대주주나 경영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핵심이다. 채권단의 금융지원과 함께 이뤄진 감자(減資, 자본금 줄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경영진도 많다. 또 사재를 털어 회사자금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벽산건설의 경우 경영진은 워크아웃 이후 17개에 달하던 계열사를 6개로 줄였다. 매각대금은 전액 부채를 갚는 데 썼다. 직원도 당초 계획이었던 1백28명보다 많은 2백44명을 노사 자율로 줄였다. 대주주도 4.6대 1의 감자를 실시하고, 자산매각 등을 하면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결국 올해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신원 역시 강력한 자구노력을 단행한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2천1백여명 직원을 9백명으로 줄였고, 25개 계열사도 하나로 줄였다. 당시 박성철 회장은 지분 22.64%를 회사에 무상으로 출자하기도 했다. 일동제약 역시 당시 윤원영 회장이 18만주의 주식을 사재출연하는 솔선수범을 보였다.

노사협력은 회생의 밑거름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종업원의 일치단결이다. 회사가 어려우니만큼 고용이나 임금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제 목소리만 내면 오히려 일터를 잃어버리는 악순환이 연출될 수도 있다. 지금은 워크아웃에서 졸업했지만 한때 영창악기도 노사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99년에는 인력구조조정에 반대한 노조의 파업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경영진이 사무실을 공장으로 옮기고 종업원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노사신뢰를 다시 쌓았다. 이 같은 노력으로 노사는 구조조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워크아웃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일동제약은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회사채를 사줘 운전자금으로 활용토록 하고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도 했다. 강성노조로 손꼽혔던 대우조선 역시 워크아웃 이후 현재까지 3년 연속 무분규로 노사협상을 타결하는 단합된 애사심을 자랑하고 있다. 남광토건 역시 직원들이 임금동결을 받아들이면서 고통분담에 나섰다.

실패에서 배운다 워크아웃 신청 1호 기업이었던 동아건설의 사례를 보자. 현대건설과 함께 국내 건설업계의 대표기업이었던 동아건설의 몰락은 워크아웃을 제대로 수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98년 워크아웃을 신청한 이 회사에 채권단은 1조8천억원에 달하는 출자전환(빚을 주식으로 바꿔주는 것)을 단행했다. 동아건설이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해 채권단이 과감한 채무조정을 실시한 것이다. 그러나 리비아 대수로 공사와 연관된 미수금 회수 문제, 워크아웃이라는 제도에 들어간 데 따른 대외신뢰도 하락과 공사수주 부진, 건설경기 악화로 인한 미분양 아파트 속출 등 대외여건은 동아건설의 경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대주주였던 전 최원석 회장이 물러나긴 했지만 새로운 경영진과 과거 임직원들, 노사간 알력 다툼도 끊이지 않았다. 주채권은행인 서울은행 역시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만큼 영업호전이 되지 않은 동아건설에 계속 이자도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기는 힘들었다. 여기에 기업구조조정이 대마불사(大馬不死)로 흐른다는 여론의 비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퇴출조치를 받고 말았다. 채권단이 더 이상 끌고가는 것보다는 지금 손절매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방이나 진도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아직도 워크아웃 중인 25개 업체들의 상황도 제각각이다. 일부는 경영환경 개선으로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반면 일부 기업은 여전히 구조조정에서 갖가지 난관을 만나고 있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채권단이 출자전환 대가로 요구한 인력구조조정에 노동조합이 반발해 한동안 구조조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회사는 이달 초 노사합의에 도달, 채권단의 지원을 받게 됐지만 그만큼 워크아웃 진행이 어렵다는 점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성규 기업구조조정협약 및 CRV설립추진위 사무국장은 워크아웃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기업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먼저 기존 대주주가 욕심을 부리는 경우다. 경영권을 유지하려고 하거나 경영권을 내놓더라도 채권단과 사사건건 대립할 경우는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노동조합의 저항이다. 특히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인력구조조정 과정에서 이같은 점은 두드러진다. 마지막으로 외부변수다. 업종별 특성에 따라 같은 자구노력을 하더라도 곧바로 경영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기업이 있다는 점이다. 섬유·건설업체들이 이런 축에 속한다. 이국장은 “결국 기업구조조정 작업은 피나는 자구노력을 전제로 채권단과 회사가 한마음으로 추진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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