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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한보철강 주인 찾아주기 ‘급물살’

표류 한보철강 주인 찾아주기 ‘급물살’

‘한보철강’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하나는 온 국민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외환위기인 IMF 사태 발발의 원인 제공자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경유착의 폐해와 한 경영자의 판단 착오가 사회와 국가에 얼마나 큰 짐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라는 점이다. 그러한 한보철강이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맞으려 하고 있다. 새 주인 후보자는 권호성씨가 이끄는 AK캐피탈이다. 권호성씨는, 비운의 알짜 철강기업 연합철강 창업주인 권철현 중후산업 회장의 큰 아들이란 게 눈길을 끈다. 아무튼 AK캐피탈은 자산관리공사로부터 낙찰 예정자로 선정된 후 막바지 조건을 놓고 현재 조율을 거듭하고 있다. AK캐피탈은 일단 인수 후 한보철강 당진제철소 A·B지구를 모두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무려 5조원이나 투입된 당진제철소의 경쟁력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 대부분은 한보철강 전체를 경쟁력 없는 설비와 무모한 설비투자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히지만 한보철강은 일관 제철소로 설계돼 있어 다양한 제품의 생산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현재 A지구는 완공됐으며, B지구도 냉연공장의 경우 94%의 공사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한보철강의 매각작업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이렇다. 이 회사의 경쟁력을 제품별·설비별로 세밀하게 판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보철강 중에서 살릴 부분은 어떤 것인지, 또 폐기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인지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전 대책 없이 막무가내로 추진하다가는 국민경제에 또다시 큰 부담을 지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5조원 이상 투입된 한보철강을 ‘경쟁력이 없다’라면서 한마디로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한보철강은 철근과 CSP(미니밀 열연강판 생산설비)가 설치된 A지구와 COREX(제선설비), DRI(Direct Reduce Iron, 직접환원철), 열연공장과 냉연공장이 있는 B지구로 구성돼 있다. 한보철강 당진제철소의 정상화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이다. 1안 철근공장만 가동, 2안 A지구 가동, 3안 A지구+B지구 일부 라인 가동, 4안 B지구 종합완공 등이다. 이중 가장 확실한 시나리오는 1안 철근공장의 가동이다.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두번째와 세번째 시나리오는 상호 맞물려 있으며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한보철강측은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네번째 시나리오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철근공장은 경쟁력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한보철강의 모든 공장이 경쟁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현재 가동 중인 철근공장은 충분한 원가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의 경우 감가상각 이전의 철근 제조원가를 비교해보자. 한보철강은 22만8천4백원 수준, 한국철강은 24만원, ㈜한보 25만∼26만원, 환영철강 23만8천원 수준이다. 한보철강이 경쟁사보다 생산원가가 낮은 게 한눈에 드러난다. 한보철강의 철근 제조원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여럿 있다. 우선 전용 고철 하역부두를 갖고 있다는 걸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부두에서부터 제품 생산까지 일관된 레이아웃도 갖고 있다. 국내 철근 설비 중 가장 최신예 설비 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A지구 CSP 열연코일, 시장성 있나 문제는 나머지 공장의 경제성이다. A지구 CSP는 경쟁 상대가 포항제철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포철의 열연코일 생산원가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CSP의 원료인 고철의 국내 자급도는 50∼60% 수준에 불과해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포철의 열연코일 생산원가가 톤당 1백40달러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반면 한보철강은 고철을 톤당 1백10달러 수입해 압연비·가공비 등을 포함하면 생산원가가 톤당 1백80달러를 넘게 된다. 따라서 포철과의 경쟁은 아예 불가능하다. 결국 단독으로 CSP를 가동할 경우 경제성과 시장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보철강 기술진들은 A지구 CSP와 B지구 일부 라인의 연계 및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A지구 CSP에서 생산한 열연코일을 원자재로 B지구의 PO(산세강판)나 HGI(열연용융아연도금강판)를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 경우 일반적인 냉연업체들보다 저렴한 제품의 생산이 가능하며,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고급 냉연강판을 생산하기 위한 소둔설비 및 PL/TCM은 당분간 가동이 어려울 전망이다. 한보철강 관계자는 “연합철강은 표면처리 부문, 동부제강은 석도강판, 현대하이스코는 자동차용 냉연강판 생산이 주력”이라고 지적하면서 “한보철강은 건자재 부문만을 중점 생산할 경우 경쟁력이 있을 것”이란 진단을 내린다.

B지구 종합 준공의 경제성은 의문 B지구의 경쟁력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B지구는 COREX에서 생산한 용선을 제강·연주·열연공장을 거쳐 최종 제품인 냉연 제품을 생산하는 일관 라인으로 구성돼 있다. B지구의 가장 큰 문제는 전체 완공을 위해 1조3천8백25억원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설사 COREX를 완공한다 할지라도 경쟁력이 결여됐다는 것이 철강업계의 정설이다. 한보철강의 COREX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원활한 원료의 물류시스템과 분탄·분광에 대한 해결 방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포철의 COREX는 FINEX 플랜트 건설을 위한 연구 플랜트 개념이며, 분탄과 분광은 고로에 투입해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한보철강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열연공장만 가동할 경우 슬래브를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한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슬래브를 제품으로 판매하는 경우는 드물어 조달에도 상당한 애로를 느낄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조달한다고 할지라도 원가경쟁력이 취약할 것으로 보여 사실상 열연공장의 경쟁력도 의문이다.

AK캐피탈, 한보철강 왜 인수하나 그렇다면 AK캐피탈은 이처럼 논란이 많은 한보철강을 왜 인수하려고 하는 것일까. AK캐피탈은, 연합철강의 전 사주이자 연합철강 2대주주인 권철현씨의 아들인 권호성 중후산업 사장이 설립한 네덜란드 펀드로 알려져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AK캐피탈은 당진제철소가 충분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AK캐피탈은 먼저 지리적인 이점을 꼽고 있다. 1시간 내 수도권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철강 수요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수도권 공략에 유리할 뿐 아니라 물류 및 판매·서비스에서 유리하다는 것. 이 밖에도 ▲對중국 수출의 지리적 이점 ▲최신예 설비로 구성된 점 ▲미국 뉴코어社 등으로부터 선진 기술도입 가능성 ▲연간 4백만톤 이상 열연강판 공급부족 등을 인수 이유로 꼽고 있다. 그러나 AK캐피탈이 한보철강을 인수할 자금이 있는지에 대해 주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도 AK캐피탈의 자금조달 능력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지 못하는 눈치다. AK캐피탈측에게 인수에 대한 3가지 전제요건을 제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AK캐피탈측은 한보철강 인수를 위해 인수대금 4억8천만 달러와 세금·공과금 등 부대비용 7천만 달러 등 총 5억5천만 달러의 자금조성을 마쳤으며 자금조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IMF 사태의 단초가 되면서 국내 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부실공룡’ 한보철강 매각작업이 올해는 순조롭게 진행돼 국내 경제가 큰 짐을 덜게 될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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