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개가/디자인 컨셉트, 세계시장서 통하는 것으로
디자인의 개가/디자인 컨셉트, 세계시장서 통하는 것으로
“순간 회의실 안은 숨이 멎은 듯했다. 이후 2시간여 동안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청문회에 불려나온 증인처럼 이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해야 했다. ‘계양전기 제품의 디자인은 물론 회사 전체의 CI(기업의 통합된 이미지)를 바꿔 보고 싶다’는 나의 제안이 일으킨 파장은 작지 않았다.” 계양전기 전동공구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시킨 이노디자인 김영세 사장의 회고이다. 6년 전에 있었던 이 날의 회의를 그는 ‘디자인 청문회’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난해 이맘때, 그는 한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남다른 감회에 잠겼다. ‘계양전기가 CI의 완료로 기업 이미지가 일신됐고, 독자적이고도 새로운 이미지의 제품군을 확보함으로써 중국·유럽 시장에서 인지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는 내용의 기사는 디자인 혁신이 이 회사 매출의 급신장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김사장은 지난해 발표한 글 ‘디자인, 사랑으로 출발하라’에서, 이로써 그날 회의에서 쏟아진 불안감 어린 질문들에 진정한 답변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품질과 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품질·기술면에서는 경쟁 제품들과 차별화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스포츠 경기로 치면 품질·기술 싸움은 예선전이고, 디자인·이미지 전쟁이 본선이라는 것. 기술 수준이 비슷한 업체끼리의 싸움은 그래서 디자인의 경쟁력이 좌우할 수밖에 없다. 김사장은 디자인 분야에서 전문 회사들이 기울이는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의 결단이라고 말한다. “세계 유명 제품들과 본격적으로 경쟁하려니 품질만으로는 어렵더라”며 그에게 하소연한 사람은 계양전기의 이상익 대표였다. 김사장에게 연락할 당시 그는 수출 전선에서 난관에 부닥쳤었다. 품질은 세계 유수의 업체들을 따라잡았지만, 디자인이 받쳐주지 않으면 경쟁이 안 되겠다는 게 당시 그의 판단이었다. 2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창립 20돌을 맞은 97년, 계양전기는 세계화에 걸맞은 새로운 CI와 로고·마스코트를 제정했다. 제품의 표준 컬러로 선정된 진홍색은 그러나 막바로 채택되지 못했다. 진녹색·검정색·청색 등 무난한 색상만 채택해온 계양전기가 갑자기 공구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꾸면 소비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라는 유통업자들의 우려 때문이었다. 회사 안에서도 변화를 꺼리는 사람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2000년 12월 이사장은 결단을 내렸다. 그라인더·드릴·해머·전기톱 등 70여 가지 공구류의 본체 색상을 일거에 회사 표준 컬러인 진홍색으로 바꾼 것. 보수적인 회사 이미지를 일신하기 위해 채택을 미뤄온 ‘계양 레드’를 전면 도입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국내 공구 소비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고, 경기 침체 속에서도 전동공구 부문의 매출액은 전년도보다 30% 늘어났다. 지난 2월에 내놓은 충전 드라이버 드릴의 경우 테스트 마켓에 5백개를 깔았는데 한 달도 안 돼 5천개나 주문이 들어왔다. “대만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공급받다가 명색이 국내 최고의 업체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놓은 건데, 예쁘다고들 합디다. 계양이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건 품질도 품질이지만 디자인이 좋아졌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포장용 박스 디자인까지 이노디자인서 합니다. 목수 등 직업적으로 공구를 다루는 분들이 국산 연장을 쓰면 성을 간다고 했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들지요. 아 그분들이야 연장이 밥줄이요 목숨 같은 것 아닙니까?” 이대표는 독일 쾰른서 열린 ‘국제하드웨어 박람회’에 참석하고 3월7일 귀국했다.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이곳에서도 고무적이었다. “하드웨어 강국인 대만·중국의 제품과 비교해 디자인·품질·마무리 등의 면에서 차별화가 되더군요. 미국의 B&D사 관계자, 밀워키사 회장·사장 등 경쟁사 임직원들이 들러 우리 디자인을 보고 감탄하고 갔습니다. 밀워키측은 전략적 제휴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우리보다 규모면에서 10배 이상 되는 회사죠. 일찍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개발 단계부터 디자인의 컨셉트를 세계 시장서 통하는 것으로 잡은 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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