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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부르릉’…글로벌 경영 始動

해외로 ‘부르릉’…글로벌 경영 始動

2002년 4월 2일 아침 7시 30분 현대자동차 양재동 사옥 18층 대회의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김동진 현대차 사장을 비롯 현대자동차 핵심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00년 이후 승승장구해온 현대차 덕에 모두들 시간내기 어려운 ‘귀하신 몸’들이지만, 이 날만은 달랐다. 이사회 멤버들의 얼굴에는 순간 긴장감이 흘렀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을까?’ 마침내 정몽구 회장이 미국 앨러바마 주 몽고메리시로 미국 현지공장을 선정하자 옅은 탄성과 침묵이 회의장을 감쌌다. 1년간 추진해 온 미국 공장 프로젝트가 일단락되는 순간이었다. 미국 현지공장 설립은 현대자동차로서는 숙원사업이다. 1989년에 세운 캐나다 현지공장이 93년 실패로 끝나 문을 닫은 지 꼭 10년 만의 재도전이기 때문. 당시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캐나다를 통한 우회전략을 폈던 현대차는 이번엔 미국 본토로 직접 들어간다. 그만큼 자신감이 붙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캐나다 브르몽 공장 진출은 현대차의 최대 실패작으로 꼽힌다. 공장을 세우기 전인 87·88년에 현대차 미국법인(HMA)은 창사 이래 최대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당시 소형차 붐을 몰고온 엑셀 하나로 2년간 약 53만대를 북미시장에 판 것이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현지의 폭발적인 반응을 접한 현대차가 미국 시장 진출을 도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캐나다 정부도 공장부지를 평당 1달러의 파격적인 조건으로 제공하는 등 현대차 유치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진출한 캐나다 공장은 머지않아 문을 닫고 만다. 연산 10만대 규모의 공장에서 ‘쏘나타1’을 생산했지만 판매는 불과 2만대에 머물렀다. 예상치 못한 판매부진이었다. 과다한 부품 수입으로 채산성을 맞추지 못한 것도 공장을 어렵게 했다. 현지 부품조달율 60%를 맞춰야 부품 수입에 대한 관세 등이 면제됐는데, 주변에 이렇다 할 부품공장을 유치하지 못해 대부분의 부품을 한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엑셀의 성공을 믿고 진출한 북미시장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10년이 지난 지금 사람도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우선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자동차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그동안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나 품질 경쟁력도 향상됐다. 예전보다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고 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3조4천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에 착공된 현대·기아 디자인센터도 현대차의 미국 진출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센터를 통해 현지 소비자들의 요구와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대차를 평가하는 외부의 시선이 달라졌다. 미국의 격주간 경제지 「포브스」는 최근호에서 현대차를 2002년 전세계 자동차 기업 중 최고기업으로 보도했다. 24개 업종에 걸쳐 전세계 4백개 우량기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차와 포스코가 업종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독일의 BMW나 일본의 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회사도 현대차의 눈부신 성장에 밀렸다. 포브스는 현대차가 그룹에서 독립했고, 지난해 매출신장률(8%), 순익증가율(74%), 미국 판매가 급증(42%)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또 정몽구 회장의 경영능력, 원화가치 하락, 가격 경쟁력, 기아차와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 등이 현대차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발표에서 삼성전자나 한국전력·SK텔레콤 등 국내 최고기업들이 제외된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의 해외 평판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 내 각종 조사기관과 자동차 전문지, 언론의 조사에서도 현대차의 품질만족도·성능이 예전에 비해 월등히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모빌지(紙)는 최근호 기사에서 ‘그랜저 XG, 벤츠 C230보다 인상적’이라고 호평했다. 또 자동차 부문 전문 조사기관인 오토퍼시픽사는 산타페를 소형 SUV 부문 소비자 만족도 1위로 선정했다. LA타임스와 USA투데이 등도 산타페를 호평했다. 요즘 현대차 직원들 사이에는 “다임러 크라이슬러를 우리가 인수해?”라는 농담이 떠돈다. 규모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현대보다 한수 위지만 그만큼 현대차가 자신감에 차 있다는 얘기다. 한 직원의 얘기. “미쯔비시에게 기술을 받은 80년대만 해도 도면 하나 얻어오는 데도 돈을 줬습니다. 근데 이제 현대차가 미쯔비시보다 월등히 앞서잖아요. 그게 불과 10년 좀 넘은 일입니다. 10년 뒤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우리가 다임러 인수 못할 것도 없지 뭐….” 과장이 좀 섞였지만 현대차의 요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할 정도다. ‘미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는 게 자동차업계에 공인된 얘기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차는 글로벌 경영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가 글로벌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는 75%(기아차 포함)에 달하는 내수 시장 점유율을 더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삼성차를 인수한 르노와 대우차를 인수한 GM을 상대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직접 대결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도 들어있다. 두 외국계 회사를 상대로 내수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적진으로 뛰어들어 거기서 싸움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3사 경쟁체제로 되면 어느 정도 내수 잠식은 불가피하다. 국내에서 잃은 것 이상으로 해외에서 ‘전과’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미국 시장 진출은 현대차의 이런 계획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현대차의 성공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현대차는 ‘지속적인 품질향상과 브랜드 가치 제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성공요인으로 꼽고 있다. 한마디로 제품이 좋아서 잘 팔렸단 말이다. 내수시장의 장악도 중요한 요소다. 업계에서나 전문가들도 이런 평가에 대체로 동의한다. 산타페의 경우 처음부터 수출 전략차종으로 미국에서 개발됐다. 지난 2년간 7만여대 팔린 산타페는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그랜저 XG와 쏘나타 등 기존 수출차에 비해 비교적 고급형에 속하는 모델이 성공적으로 런칭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EF쏘나타의 경우 지난 3년간 13만대나 팔렸다. 89년 쏘나타 판매 이후 10년간 20만대가 팔린 것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여기에 지난해 ‘10년 또는 10만 마일 미만 품질보증’제도도 현대차 돌풍일으키는 데 한몫했다. 대개 3∼5년간 품질 보증을 해주던 업계의 관행을 깬 파격적인 마케팅이다. 일부에서는 ‘보증제도가 과도해 비용이 많이 들어 수익이 나지 않는 장사’라고 비판하지만, 현대차의 생각은 다르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현재 미국의 자동차 교체 주기가 5년이기 때문에 ‘10년-10만마일’ 제도는 사실상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즉 실제로 10년간 보증수리비가 드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근 현대차의 성공은 주변 여건의 호조에 힘입은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대우차 표류와 기아차 합병으로 국내 여건이 좋아졌고, 원화가치 절하로 가격경쟁력이 생겼다. 또 미국 경기 침체로 구매자들이 저가 차량 선호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운이 따랐다는 얘기다. 중앙대 경영학과의 전용욱 교수는 “현대차의 성공에 는 제품력뿐만 아니라 미국 판매 제품이 시장패턴과 일치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수출의 주력 차종인 쏘나타·아반테·산타페 등이 전체 자동차 제품군에서 미들로우(middle-low) 이하의 제품으로, 지난해 9·11 테러와 경제불황으로 상대적으로 저가 시장이 넓어지면서 현대차도 혜택을 봤다는 설명이다. 원화의 평가절하는 가격 경쟁력이 핵심 경쟁력인 현대차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런 요인들이 현대차의 미국 진출에 힘을 실어줬고 급기야 미국 공장 설립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물론 현대차는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해외진출을 해왔다. 주로 신흥시장이 대상이다. 현재 터어키·중국·말레이지아·인도에서는 조인트벤처 혹은 1백% 투자로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4개 국가에서 생산되는 차량이 연간 26만대에 달한다. 또 베네주엘라·이집트·러시아 등 8개 국가에는 기술제공 계약을 통해 연간 24만대의 현대차를 생산하고 있다. 신흥 시장 국가 외에도 서유럽·중국·일본 등의 거대 시장도 꾸준히 노크하고 있다. 서유럽 시장은 연간 1천5백만대(2001년 기준)가 판매되고 있는 세계최대 시장이다. 지난해 현대는 서유럽에 21만7천대의 차량을 수출했다. 이는 2000년 대비 약 9%가량 감소한 수치다. 하지만 전체적인 감소세 중에서도 쏘나타 이상의 중대형차와 RV 차종의 판매가 각각 전년도 대비 10%와 84% 늘어났다. 수출량은 줄었지만 내용은 점차 개선되는 추세다. 올해 3월 초에는 독일 뤼셀스하임시에 유럽법인 기공식을 가졌다. 정몽구 회장은 그 자리에서 “현대자동차 유럽법인은 연구개발과 디자인 분야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한국·북미·유럽디자인 센터에서 각 시장에 맞는 신모델 개발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큰 시장으로 떠오를 중국 진출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초 현대차는 중국 베이징기차공업공고유한책임공사와 합작으로 베이징현대기차유한공사를 설립키로 했다. 합작법인은 베이징기차 현지공장 설비를 확충해 올 10월부터 자동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2005년까지 연간 20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미 조인트벤처나 기술제공 형태로 중국에 진출해 있었던 현대는 이번 합작으로 향후 급격히 커질 중국의 자동차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현재 중국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1천6백만대(한국은 1천3백만대) 수준이지만, 2010년께는 5천만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성장 잠재력이 크다. 지난해 처음 진출한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공략이 어려운 곳으로 꼽히고 있다. 일본은 전체 자동차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5%대에 머무를 만큼 폐쇄적이다. 현대자동차의 하견호 수출담당 이사는 “일본 시장은 품질도 중요하지만 유통망을 어떻게 잡느냐가 관건”이라며 “딜러망을 세우고 차근차근 공략한다면 길이 뚫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회장은 지난해 5월 일본에 직접 가서 판매 지도에 나설만큼 관심이 크다. 덕분에 올해 1분기 판매 실적은 3백18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1백33대보다 두배 이상 증가했다. 이렇게 최근 2∼3년간 현대차는 세계 곳곳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집중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미 2백만대를 넘어선 생산 규모는 국내 시장이 좁게 느껴질 만큼 커버렸다. 여기에 기아차까지 합병한 상태라 해외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다.신한증권의 박준균 연구원은 “두 회사 합병으로 내수시장을 과점한 상태에서 내수시장 확대는 비용에 비해 성과가 적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장 가능성이 더 큰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나 향후 전략에서도 유리하다는 말이다. 현대차는 2010년엔 ‘글로벌 톱5 입성’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즉 현재 ‘빅6’에 해당하는 GM·포드·다임러크라이슬러·도요타·폭스바겐·르노 중 폭스바겐과 르노를 제치고 5위 업체로 올라선다는 전략이다. 2010년에 국내 3백50만대, 해외 1백50만대 등 연간 5백만대의 생산 규모를 달성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현대측의 생각이다. 하지만 현대가 세계 5대 자동차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제대로 된 현지화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지의 시장동향을 쫓아갈 수 있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산타페의 성공에서 알수 있듯 애초에 미국 시장의 요구에 부합하는 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혼다 어코드의 경우 일본용·유럽용·미국용 등으로 차의 버전을 따로 만든다. 또 생산공장이나 판매지역도 글로벌 기업에 맞도록 다양화 해야 한다. 현대의 경우 터키·인도·말레이시아 등 몇 개의 작은 틈새 시장에만 해외 생산거점을 두고 있다. 북미·남미·유럽·아시아 및 중동 지역 등 전세계 모든 지역에 생산거점을 두고 있는 도요타와는 대조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적인 기술력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복득규 연구원은 “현대의 경우 아직은 외국의 앞선기술을 가져다 쓰는 수준”이라고 전제한 뒤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환경·안전·정보통신기술 등 미래 자동차 기술에서 다른 업체를 선도할 능력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품업체의 성장도 자동차 산업에서 중요한 요소다. “영세한 부품산업은 한국 자동차 산업 발전에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동양종금증권의 강상민 애널리스트는 지적했다. 델파이나 비스티온·보쉬 같은 거대한 부품업체가 오늘의 미국·독일차를 만들었다. 현대차의 경우 모비스를 계열사로 두고 있지만 기술력에서는 세계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미국 공장 설립을 발표함으로써 현대는 다시 한번 본고장에서 ‘전투’를 벌이게 됐다. IMF를 거치면서 편안한 국내 시장에서 승승장구한 현대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 기회일까 아니면 10년 전처럼 미국 시장에서의 호황이 반짝 경기로 마감될까. 분명한 것은 현대에게 세번째 기회는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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