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생선가게와 분리시켜라”
“고양이를 생선가게와 분리시켜라.”한 외국계 증권사가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의견을 불과 3일만에 뒤바꾼 것을 계기로 애널리스트의 윤리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기업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가 투자의견을 변경하거나 적정주가를 재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 공교롭게도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한 애널리스트가 속해 있는 증권사와 외국인의 매도주문이 쏟아진 증권사가 같다는 점에서 뭔가 연계가 있다는 의혹의 눈길이 쏠렸다. 애널리스트 차원에서 본다면 투자의견 변경이 수급사정을 감안했는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은 대부분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거래 한다. 외국인의 주문요청과 실제주문과는 시차가 있게 마련. 주문동향을 보고 투자판단을 변경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대체적인 정서다. 애널리스트의 윤리성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대두되고 있는 게 아니다. 최근 미국의 증권 최고감독기관인 증권거래위회(SEC)는 애널리스트 규제방안을 발표했다. 규제방안의 골자는 증권사의 투자은행 사업과 분석 사업간의 교류를 제한하자는 것. 이를 위해 SEC는 애널리스트들에게 권고 배경을 상세히 공개하도록 했으며 권고 내용에 언급된 회사와 투자거래 관계가 있는지를 밝히도록 의무화했다. 또 애널리스트들이 권고기업 주식을 개인적으로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특정기업을 권고한 대가로 투자은행 사업부문으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여론은 미흡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투자은행 사업과 분석 사업을 완전 분리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애널리스트가 투자거래 기업을 방문하거나 접촉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애널리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사회적인 눈초리가 매서워진 배경은 뭘까. 미국 엔론사의 파산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이사회의 실수를 탓하고 다른 사람들은 회사의 경영을 문제 삼으며 법적 규제나 주주들의 태만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의견 중에서도 회계사·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이른바 기업의 감시자들이 복잡한 재무정보를 평가하고 검증하고 걸러내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투신사 홍보관계자는 “인터넷 온라인 매체에 대해 펀드매니저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펀드매니저들은 언론보다 먼저 애널리스트들에게서 e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정보를 제공받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먼저 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위는 앞으로 규제 대상이 된다. 국내에서도 '고양이를 생선가게서 분리시키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증권업협회는 증권사가 리서치자료 공표이전에 주식을 매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증권업협회 규정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현행 증권업 감독규정은 리서치자료 확정·공표 후 24시간 내에 주식매매를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사전 매매에 대해서는 금지하지 않고 있다. 마련중인 규준안에는 또 ▷증권사가 기업분석 자료를 기관투자가 등 특수고객에게 제공하거나 ▷특별 이해관계에 있는 종목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내거나 ▷상품운영부와 리서치부서가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거나 ▷애널리스트가 자기가 맡은 업종의 주식에 투자하는 등의 행위를 금하고 있다. 애널리스트가 투자의견이나 적정주가를 판단하는 것은 주관적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애널리스트의 생명은 얼마나 객관성을 유지하는지에 달려 있다. 애널리스트가 고액 연봉을 받는 이유가 단지 일이 힘들고 전문적이서 만은 아니다. 금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들을 ‘떠받드는’ 이유 중 하나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품위유지비’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불행은 애널리스트의 상업성에서 싹튼다. 애널리스트가 비즈니스에 신경을 쓰고 고객의 요구에 맞추려고 접근하면 자료를 쓴다고 해도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투자 의견을 갑자기 바꾸어도 소신을 가지고 하면 환영할만 하지만 목적이 딴 데 있다면 시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베스트라고 평가받는 한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성공비결에 대해 시장상황을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애널리스트는 펀더먼털에 충실해야 한다. 수급이나 시장여건이라는 요소는 될 수 있는 대로 배제해야 한다. 특히 수급상황은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70∼80%는 펀더먼털을 보고 나머지 20∼30% 정도만 수급요인을 감안한다.” 애널리스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 증권회사 리서치 헤드가 애널리스트의 기본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신영증권 장득수 부장은 애널리스트의 기본업무에 대해 “지적인 창의력을 통해 기업의 향후 발전 방향이나 성과를 예측하는 것이지 어떤 종목의 주가가 얼마 가야한다는 식의 예측은 아니다”고 규정했다. 그는 “주가라고 하는 것이 기업의 실적이라는 과학(Science)과 적정주가라는 예술(Art)이 결합된 것이라고 할 때 과학 부분은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예술부분은 펀드매니저의 몫”이라며 “예술의 영역에 애널리스트가 주제 넘게 도전하는 것은 인터넷 버블시대 일부 미국 애널리스트들이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애널리스트 ‘시장’도 문제가 많다는 시각이다. 개별 애널리스트에 대한 엄격한 검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인기 투표에 불과한 애널리스트 성적표에 따라 애널리스트의 몸값을 천정부지로 솟게 하는 것은 투자자의 이익에 반한다는 게 장부장 얘기다. 그렇다면 애널리스트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까. 한국 애널리스트 ‘시장’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가. 이를 검증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돼야 할 시점이다. 내부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역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 될 테니까. 이론을 겸비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비주류의 전문가집단과 프로 애널리스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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