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월드컵 희비… 호텔 울고, 건설 웃고

월드컵 희비… 호텔 울고, 건설 웃고

일러스트 이정권
5조4천억원의 부가가치와 35만6천명의 고용 창출-. 지난해 5월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 내용이다. 경기장과 도로 등을 짓는 데 들어간 2조4천억원, 36만명에 이를 관광객이 쓸 돈 7천억원, 대회 준비와 참가팀의 숙식비 등에서 나올 4천억원…. 이런 투자과 소비 지출을 모두 더하면 2000년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인 5조4천억원의 부가가치와 35만6천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KDI의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월드컵은 꿈틀대는 국내 경기를 살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 심리가 널리 퍼져 있다. 예컨대 ‘월드컵 효과’ 덕에 소비가 늘면 경기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것. 구체적으론 ‘소비 증가→국민소득 증가→기업 이익 증가→투자 증가→생산 증가→국민소득 증가’식의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반면 월드컵 경제 특수(特需)는 환상일 뿐이란 주장도 만만치 않다. 기본적으로 월드컵이란 스포츠 이벤트가 경제 회복에 큰 도움을 줄 것이란 지나친 기대가 문제라는 것. 몇몇 대기업의 주머니를 채워줄지는 몰라도 지역 경제나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많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사실 지난 30년간 월드컵 개최국을 조사한 결과 대회를 치른 해의 경제성장률이 평균 1% 뒷걸음질쳤다. 지난 94년 월드컵을 개최했던 미국의 경우 경기가 열린 9개 도시 가운데 6개가 성장률이 떨어졌고, 40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 98년 대회를 열었던 프랑스의 경우에는 월드컵이 끝난 뒤 관광객이 늘지 않았다. 대회를 코앞에 둔 우리도 이런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당장 월드컵 특수가 실종됐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떠돌고 있다.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지난 몇 년간 제품 개발에 매달렸던 중소 기업들은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아 울상이다. 호텔 해약이 잇따르는데다 관광객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라 관광업계도 우울하긴 마찬가지다. ▶ 월드컵 경제특수 기대 밖=중소기업들은 월드컵 특수에 ‘혹시나’ 하며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나’라며 실망하는 모습이다. 18K 축구공 반지를 만드는 A사는 월드컵 특수의 미련을 벌써 버렸다. 당초 라이선스를 포기했던 A사측은 “월드컵 기간 동안 2천만원의 매출 목표를 세웠지만 얼마나 팔릴지 자신할 수 없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월드컵 공식 엠블럼을 쓰면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카탈로그·메일 등으로 발버둥을 쳤던 팬시제품업체 B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내수 매출만 1백억원을 기대했지만 현재 40억원에 그쳐 맥이 빠진 상태다. 중기청의 조사 결과 월드컵 상품 전시·판매장의 매출은 크게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제주공항을 비롯 7곳에 2백여 품목, 1천여 제품을 깔았지만, 4월 말 현재 2억9천5백만원어치밖에 팔리지 않았다. 호텔업계도 ‘빈방’을 어떻게 채워야할지 고민 중이다. 특히 몇몇 호텔은 월드컵 티켓 판매와 국제축구연맹(FIFA) 호텔 예약 대행사인 영국 바이롬사가 예약을 취소하면서 특수는커녕 평년 장사도 못하고 있다. 바이롬사는 지난 4월에만 모두 7차례나 해약하는 등 당초 물량의 70.7%를 물렸다. 호텔 롯데의 경우 월드컵 기간 동안 예약률이 45%대에 머물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지난해까지 6월 평균 판매율이 82%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수준이다. 그랜드 힐튼 호텔도 가까스로 60%를 넘긴 상태다. 그나마 호텔신라·하얏트·인터컨티넨탈 등은 한숨을 돌리고 있다. 호텔신라는 VIP 지정 숙소이고, 하얏트에는 FIFA 대회본부가 마련된다. 또 힐튼에서는 대회 기간 중 FIFA 총회가 열리고, 그랜드힐튼에는 심판진이 머문다. 36만명이 넘을 거라던 관광객 수도 기대에 못미칠 전망이다. 특히 당초 10만명을 웃돌 것이라던 중국 관광객수 가 4만∼5만명에 그칠 걸로 보고 있다. 월드컵 상품 가격이 중국 현지 노동자 1년 연봉에 맞먹는데다 불법 체류 등의 문제로 한국행 비자를 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지난번 한·중 축구 평가전에서도 중국 관광객 수는 10분의 1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월드컵 입장권 판매도 부진하다. 월드컵조직위원회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열리는 월드컵 경기의 좌석 수는 1백42만여매다. 이 가운데 외국인에게 팔려던 입장권은 70만매지만 지난 4월 말까지 32만장 정도만 나갔다.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이 1인당 2.5 경기를 본다고 가정하면 외국인 관람객 수는 12만6천명선에 그친다는 계산이다. 이렇게 되면 KDI가 내다봤던 관광 수입(7천억원)은 절반으로 뚝 떨어질 전망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벌써부터 걱정이다. 프랑스의 경우 98년 월드컵 때 경기장 1개만 새로 지었지만 국내 리그 관중이 2만명을 밑도는 우리의 경우 10개나 더 만들었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월드컵 특수는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고, 경기장 등을 어떻게 쓰는 게 바람직할지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 반짝 특수도 희비 엇갈려=월드컵 특수가 실종됐다는 푸념 속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곳도 없진 않다. 먼저 가장 큰 수혜자는 아무래도 건설업계다. 경기장과 도로 등의 건설 수요가 크게 늘면서 외환위기 뒤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던 건설업계가 도약의 계기를 잡은 것. KDI에 따르면 건설 부문 지출 규모만도 2조3천8백82억원(2000년 현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5.8% 증가한 건설 투자는 올 상반기 6.1%, 하반기 5.6% 정도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산업연구원도 건설 투자는 10년간 평균 4.5%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항공·전자·제지업계 등도 월드컵 바람을 타고 있다. 월드컵 공식 후원 항공사인 대한항공은 각국의 방송 장비와 행사 용품 등을 나르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대한항공관계자는 “월드컵 관련 국내 항공 화물량 2천톤 가운데 대한항공이 8백톤가량을 실어 나를 전망이어서 2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릴 걸고 본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도 6월 예약률이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어 모든 노선이 90%를 넘어섰다. 유럽과 동남아 노선 예약이 이미 99% 끝난 데 이어 중국과 오세아니아도 97%, 일본 90%의 예약률을 보이고 있다. 대한항공도 미주·동남아·중국·유럽 등 대부분 노선 모두 좌석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대회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4월 말부터 벽걸이 TV인 PDP TV와 프로젝션 TV 등의 대형 TV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생생한 장면을 안방에서 즐기려는 사람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LG전자의 경우 올 들어 지난 5월15일까지의 PDP TV 판매량이 6천4백대로 지난 한 해 판매량(4천대)을 훌쩍 넘겼다. 또 에어컨 판매량도 각사마다 30∼60%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선거 특수까지 맞아 신바람이 난 제지업계도 올 1분기 실적이 5∼1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렌터카업계도 기업들과 대회 관계자들의 수요가 폭주하면서 6월 말까지 예약이 사실상 끝났다. 반면 홈쇼핑·게임업체 등은 월드컵이 야속하기만 하다. 월드컵 기간에 사람들의 관심이 TV중계로 쏠려 매출이 떨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LG홈쇼핑의 경우 지난 4월27일 한·중 평가전이 열린 날 매출이 10% 가까이 떨어졌다. 한 온라인 게임업체의 게임 접속률도 한·중 평가전 15%, 지난 5월16일 스코틀랜드와의 경기 때 13%나 줄었다. 오프라인 광고업계가 월드컵 특수를 만끽하는 반면 온라인 광고업계는 별다른 재미를 못보고 있다. 온라인 광고 대행사와 인터넷 광고업체들은 월드컵 특수 바람이 감지되지 않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다수 오프라인 광고 대행사들이 올 초부터 월드컵 전담반을 구성해 KT·현대자동차·코카콜라 등 월드컵 파트너들의 광고를 대거 제작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것과 대조적인 상황이다. ▶ 무형의 이익이 더 중요?=월드컵 특수가 실종됐고, 그나마도 산업·기업별로 희비가 엇갈리지만 무형의 이익은 모두 누리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이진면 KDI전문연구원은 “월드컵을 비롯 스포츠 이벤트의 경우 숫자로 따질 수 있는 직접 효과보다 개량적으로 따지긴 어렵지만 이미지 제고 등의 간접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지 당장 돈 몇푼 더 버는 게 능사는 아니란 얘기다. 이론적으론 월드컵 등은 국가와 기업의 이미지를 한단계 올리고 문화·관광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 월드컵은 대회 기간이 30일 정도로 올림픽(15일)보다 2배 정도 길다. 또 3년 정도에 걸쳐 예선과 본선이 치러져, 이 기간 동안 언론 매체를 통해 지구촌 곳곳에 개최국을 알릴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5월21일부터 3일간 온라인 회원 5천6백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4%가 한국 홍보와 이미지 제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정부와 경제계도 이런 연장선에서 적극적인 투자 유치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정부와 경제 5단체장은 5월22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 극대화를 위한 간담회’를 열고, 월드컵 기간 동안 팔을 걷고 나서기로 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G마켓 쇼핑축제 마감 임박..."로보락·에어팟 할인 구매하세요"

2"비상계단 몰래 깎아"...대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

3"올림픽 휴전? 러시아만 좋은 일"...젤렌스키, 제안 거부

4일론 머스크, 인도네시아서 '스타링크' 서비스 출범

5취업 준비하다 봉변...日 대학생 인턴, 10명 중 3명 성희롱 피해

6주유소 기름값 또 하락...내림세 당분간 이어질 듯

7아이폰 더 얇아질까..."프로맥스보다 비쌀 수도"

8 걸그룹 '뉴진스', 모든 멤버 법원에 탄원서 제출

9 尹 "대한민국은 광주의 피·눈물 위 서 있어"

실시간 뉴스

1G마켓 쇼핑축제 마감 임박..."로보락·에어팟 할인 구매하세요"

2"비상계단 몰래 깎아"...대구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

3"올림픽 휴전? 러시아만 좋은 일"...젤렌스키, 제안 거부

4일론 머스크, 인도네시아서 '스타링크' 서비스 출범

5취업 준비하다 봉변...日 대학생 인턴, 10명 중 3명 성희롱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