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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으려는 狂人들의 격렬한 붓놀림

‘나’를 찾으려는 狂人들의 격렬한 붓놀림

들라크루아, '키오스 섬의 학살', 1824년.
제리코, '미친 여자', 1819~22년께.
콘스터블, '웨이마우스만', 1816년.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에 반발해 일어난 예술사조이다. 고전주의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이성 중심의 사고 전반에 대한 거부의 몸짓으로 형성된 예술사조라고 할 수 있다. 객관보다는 주관, 지성보다는 감성을 존중하며, 상상과 꿈·무의식·도피·망명·덧없음 등의 정서를 앞세운다. 이런 정서는 사실 낭만주의가 형성되기 이전에도 개인의 기질이나 성벽의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하나의 뚜렷한 예술사조로 부상한 것은 18세기 말∼19세기의 일이다. 거칠게 1760년께에서부터 1870년께까지로 잡는다. 역사적으로 개인이 주체로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게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근대에 들어 신분제 사회가 깨지고 시민계급의 해방이 이뤄지면서 창조적인 개성을 지닌 인간의 존재가 확고히 인식됐다. 낭만주의가 도도한 흐름으로 꽃필 수 있는 토대가 비로소 마련된 것이다. 이렇듯 독립된 주체로서 자신을 무한히 주장할 수 있게 됨으로써 창조적인 개인이 기존의 모든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격렬히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보인 것이 낭만주의이다. 이런 입장인 까닭에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처럼 결코 하나의 양식으로 설명할 수 없다. 특정한 하나의 양식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시대정신이며 심적 태도인 것이다. 주제나 소재, 그리고 관심사의 측면에서 보면 낭만주의 미술은 매우 복잡하고 다채로운 양상을 보인다. 이전까지 중시됐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역사나 신화 대신 중세 고딕 시대의 주제, 민족주의적 정서가 담긴 자국의 역사·민요·전설, 지금 이 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공간의 이야기, 이국적 주제, 단테나 바이런·괴테의 작품 주제 등이 낭만주의 화가들의 화포를 수놓게 된다. 낭만주의란 말은 ‘romant’, 곧 라틴어 방언인 로만스어로 씌어진 이야기라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영어로 낭만적(romantic)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중세의 목가(牧歌)나 기사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 또 이것을 토대로 창작된 괴담 등을 야유적으로 지칭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낭만주의의 그 폭넓은 문학적 상상력을 이로써 짐작할 수 있다. 낭만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화가는 들라크루아이다. 그가 약관 26세 때 제작한 ‘키오스 섬의 학살’(1824)에서 우리는 낭만주의의 격정, 소위 ‘질풍과 노도’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들라크루아가 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 고전주의자들은 “이건 키오스 섬의 학살이 아니라 회화의 학살”이라고 비난했다. 그의 낭만주의적 지향이 얼마나 격렬한 반발을 샀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추하고 비참하고 잔인한 것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움일 수 있음을 주장한 이 화가는, 그만큼 견고한 고정관념과 온몸으로 부대끼며 치열한 예술적 투쟁을 벌여야 했다. ‘키오스 섬의 학살’ 사건은 1822년 그리스 독립전쟁 와중에 키오스 섬 주민들이 식민 종주국인 오스만 투르크의 잔인한 진압으로 수없이 학살되고 노예로 팔려간 사건이다. 많은 유럽인들의 공분을 산 이 ‘인종 청소’에 대해 들라크루아 역시 크게 격분했으며, 마침내 그림으로 이를 표현해 살롱 전에까지 출품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순도 높은 상상을 통해 뒤쪽으로는 약탈과 방화·진압·처형 장면이 이어지고, 앞에서는 포로로 잡힌 민중이 그 처형을 기다리는 그림을 그렸다. 피를 흘리고, 몸부림치며, 자포자기한 그들의 모습은 공포와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상당히 선동적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현실을 이렇듯 노골적으로, 적나라하게 표현한 그림을 거의 본 적이 없었던 당대의 미술 애호가들이 이 그림에 대해 상당한 저항감과 반발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비록 단두대가 피를 부르는 격동의 역사를 살아왔지만 고전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술은 여전히 고상하고 품위가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에게 이 그림은 일종의 모욕이고, 저질적인 도발일 뿐이었다. “이 그림 이후 19세기 미술은 다시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후대 미술사가들의 평가에서 알 수 있듯 ‘키오스 섬의 학살’은 어쨌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소란만큼이나 중요한 서양미술사의 분수령으로 우뚝 서게 됐다. 낭만주의의 위대한 외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낭만주의는 ‘개인’이라는 의식을 당시로서는 역사상 최고도로 고조시켰다. 이에 따라 사회와 개인의 분리가 이때만큼 크게 나타났던 적도 없었다. 특히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혁명과 기타 여러 가지 근대적 갈등으로 요동치는 사회에서 시간이 갈수록 그 어떤 확실한 대안도 내놓을 수 없는 자신들에게 무력감을 느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라고 느꼈으며, 고향을 상실한 고독한 존재로 여겼다. 이런 감정이 예술적으로 나타날 때 과거, 혹은 유토피아의 세계·꿈·광기·신비한 것·무시무시한 것, 무의식과 상상의 세계 등을 일종의 도피처·피난처로 그리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정신병적 현상이 이 시기처럼 생산적이었던 때가 없었던, 그런 독특한 양상이 빚어졌다. 제리코의 ‘미친 여자’(1819∼22경)는 마치 실제의 광인을 마주하는 듯 섬뜩하게 다가오는 인물화이다. 늙고 고집스럽게 생긴 여인. 그녀의 시선은 어딘가를 향해 고정돼 있다. 그 시선은 우리의 심장을 꿰뚫을 만큼 통렬하다. 붉은 빛으로 충혈된 눈자위는 그 눈에 비친 세상 자체가 핏빛이며, 그녀 또한 핏빛 그대로의 세상을 보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 긴장된 내면의 움직임은 그녀의 붉은 옷을 통해 다시금 강조된다. 일종의 용암처럼 그것은 곧 터져 나올 내면의 갈등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진초록의 겉옷이 그 ‘불온한 움직임’을 무겁게 억누르고, 어두운 배경은 이 모든 것을 자꾸 심연 속으로 가라앉히려 한다. 이 거대한 어둠과 어둠의 중력 앞에서 이 핏빛 영혼은 어떻게 자신의 내면을 분출시킬 것인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세계와의 불화, 그것이 이 영혼이 광인이 된 이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세계와 화해할 수 없는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 역시 일종의 광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과 영국의 낭만주의 미술은 그 최대 성과를 풍경화 쪽에서 보았다. 프랑스 화가들이 현실과 역사의 격동에 부침하면서 이에 흡수되기도 하고 반발하기도 하는 등 낭만주의의 휴머니즘적인 드라마를 선호했다면, 독일과 영국의 화가들은 풍경을 통해 우주의 절대적인 신비와 숭고미를 추구하고 찬양했다. 그 숭고함이 꼭 드라마틱한 격정으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영국화가 콘스터블의 ‘웨이마우스 만’(1816)에서 엿볼 수 있다. 하늘에 구름이 다소 거칠게 일고 있지만 무척이나 평온하게 느껴지는 해변, 고즈넉하고 쓸쓸한 모습이 오히려 우리를 깊은 상념에 잠기게 한다. 일상 속에는 분명 비장함이 숨어 있다. 인생의 성취라는 것은 파도의 포말과 같은 것이다. 거품은 경제에만 끼는 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또 역사에도 낀다. 지혜로운 자는 그 거품의 존재를 늘 인식하며 산다. 지금 이 광활한 해변을 걸어가는 화면 오른쪽의 작은 사람 하나(너무 작아 제대로 보이지 조차 않는다), 그는 지금 인생의 이와 같은 한계를 깊이 되돌아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혼자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연의 숭고한 메시지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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