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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0년만에 2조원대 회사로 키운 자수성가형 총수 박병엽 팬택·큐리텔 부회장

"창업 10년만에 2조원대 회사로 키운 자수성가형 총수 박병엽 팬택·큐리텔 부회장

박병엽 팬택·큐리텔 부회장
“나 박병엽이요. ” 지난해 11월 말 서울 서초동 큐리텔(옛 현대큐리텔) 사옥 5층.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한 남자가 “누구시냐”고 묻는 여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순간 큐리텔에는 비상이 걸렸다. 불과 며칠 전(11월24일) 큐리텔은 KTB네트워크와 박병엽 팬택 부회장 개인, 그리고 팬택여신투자금융으로 구성된 KTB컨소시엄에 4백76억원에 매각됐다. 경영권은 박병엽 부회장에게 위임됐다. 큐리텔 임직원들은 인수팀이 조만간 오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연 매출 7천억원 규모의 회사를 인수하러 사주가 직접 단신으로 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박부회장은 즉시 5층에 일할 장소를 잡았다. 별도의 사무실이 없어 회의실을 임시 사무실로 썼고, 회의 테이블을 책상 대용으로 사용했다. 이곳에서 그는 현대큐리텔 임직원들을 만나고 업무를 보고 받았다. 필요할 때면 사무실로 찾아가 담당자들을 직접 만났다. “휴대폰 업무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인수당한 큐리텔 임직원들 자존심을 자극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지난 1991년 퇴직금과 10평짜리 서민아파트를 판 돈 4천만원으로 창업해 11년 만에 매출 2조원을 바라보는 중견 그룹 총수로 부상한 박병엽(朴炳燁·41) 팬택·큐리텔 부회장의 승부근성과 소탈함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회사 오너가 격식 없이 접근하자 큐리텔 임직원들의 반응은 호의적으로 변해갔다. 박부회장은 큐리텔 임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나를 오너라고 어렵게 대하지 말라. 나는 11년 동안 무선통신 단말기 분야에서만 일했던 전문경영인이나 마찬가지다. 업무를 잘 아는 동료가 왔다고 생각해 달라.” 박부회장은 밤에는 큐리텔 임직원들과 술자리를 자주했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에겐 사석에서 ‘선배’‘형’이란 호칭도 거침없이 썼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박부회장과 큐리텔은 금세 한식구가 됐다. 박부회장은 “서로 마음이 통하니 큐리텔 업무를 파악하고 조직을 장악하는 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큐리텔도 든든한 동료를 맞게 되자 이에 화답하듯 몇 달 지나지 않아 초대형 수출건을 성사시켰다. 지난 2월 미국 오디오박스로부터 휴대폰 5백만대를 수주한 것이다. 국내기업 휴대폰 수출사상 가장 큰 규모로, 금액 기준으로 약 7억3천만 달러(1조원)에 달했다. 박병엽 부회장은 정보기술(IT)업계에서 ‘타고난 승부사’로 불린다. 회사를 운영하는 고비고비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깨는 ‘통 큰 경영’으로 주목을 끌었다. 지난해 11월 큐리텔 인수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그는 회사 돈은 전혀 쓰지 않고 개인 돈을 썼다. 얼추 2백∼3백억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부채가 만만치않던 큐리텔 인수가 실패로 끝날 경우 자기 재산을 다 날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개인 돈을 썼기 때문에 팬택의 재무구조에는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팬택의 주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었다. 팬택의 지분 20%를 가진 2대주주 모토로라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창업 초기부터 모든 것을 걸 때 힘이 났습니다. 혹시 흐트러졌을지 모를 경영자로서의 사업 의욕도 되찾고 싶었고요.” 팬택을 설립할 때도 모든 것을 걸었다. 당시 그는 맥슨전자 국내영업부에서 실력을 인정 받는 사원이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큰 계약을 잇달아 따내며 회사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안정된 장래를 마다하고 그는 창업의 길을 나선다. ‘안주하기 싫다’는 승부욕과 ‘나는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이 무기였다. 팬택이 만든 무선호출기는 다국적 기업과 대기업 제품과 당당히 맞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세계 최초로 광역고속무선호출기를 개발할 정도의 뛰어난 기술력으로 승부를 걸어 가장 작고 성능 좋은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박부회장은 무선호출기의 인기가 절정에 달할 무렵 주력품목을 휴대폰을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LG전자와 모토로라에 당시로선 혁신적인 폴더형 휴대폰을 납품해, 휴대폰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98년 팬택의 기술력에 반한 모토로라가 ‘구미가 당길 만한 거액’을 제시하며 팬택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때도 그는 특유의 승부사 근성을 발휘했다. 박부회장은 인수제의를 거절하고 대신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줄테니 팬택에 투자하라”고 설득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만약 내가 돈을 버는 데 연연했으면 내 지분을 팔았을 겁니다. 팬택의 기업가치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내 지분은 그대로 두고 모토로라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박부회장은 결국 98년 5월 모토로라로 하여금 1천5백만 달러(지분 20%)를 투자하게 만들었고, 3억 달러 납품권까지 따냈다. 하지만 승부사라는 한마디로 그를 모두 평가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 기업가 치고 승부를 걸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특히 소위 잘나가던 벤처기업가들이 하나둘 실패의 쓴맛을 보는 최근의 정보기술(IT) 시장 현실에서 그의 승승장구는 그 배경에 대한 궁금점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그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탐나는 사람이 있으면 삼고초려(三顧草廬)식으로 매달린다. 일본에 연구소를 설립할 때는 쓸만한 일본인 연구원을 구하기 위해 1년에 13차례나 일본을 찾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던 이성규 팬택사장을 영입할 때도 수십번이나 찾아가 설득했다. 조그만 벤처기업 사장이 찾아와 같이 일하자고 할 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이사장도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자 점차 박부회장의 ‘인간적인 매력’과 ‘비전’에 매료됐고, 결국 팬택행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큐리텔 인수 이후에는 교육에 더 부쩍 힘을 쏟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6월 말부터 가동되는 ‘팬택 아카데미’. 입사해서 임원을 달 때까지 기본 교육 14차례를 시키는 것이 주내용이다. 교재만도 93가지에 달한다. 기업문화·무역실무는 물론 제품과 기술에 대한 공부까지 다 들어 있어 웬만한 대기업의 임직원용 교재보다 낫다는 평가다. 그는 “기업이 잘되려면 뛰어난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며 “직원들을 최고의 연봉·최고의 대우·최고의 교육을 시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친화력도 박부회장의 강점이다. 그는 우선 솔직하다. 자신의 속내를 포장 없이 밝히기를 좋아한다. 걸쭉한 재담으로 좌중을 휘어잡고 맘만 맞으면 스스럼없이 금방 ‘형’‘동생’으로 부른다. ‘자신을 낮추는 경영법’도 그의 큰 자산이다. 그는 2년 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젊은데 왜 경영 뒷전에 물러나 있느냐는 얘기를 해옵니다. 하지만 기업이 더 커지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지 못한 요소를 채워줄 사람이 경영을 맡아야 합니다. 2년 전부터 부회장 결재란을 없앴는데 처음엔 결재를 안 하니까 허전하기 짝이 없더군요. 하지만 시일이 지나니 좀더 큰 안목에서 사업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는 전문경영인에게 최대한의 권한을 주고, 믿는다. 자신이 공을 들여 영입한 경영인들이 마음껏 자기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배려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송문섭 큐리텔 사장에 대해서는 “스탠퍼드대학 박사 출신의 깜짝 놀랄만한 실력자”로, 이성규 팬택 사장은 “통신기술에 관한한 당대 최고의 실력자”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큐리텔 인수 때는 당시 큐리텔 사장으로 일하던 송문섭 사장이 계속 대표이사를 맡지 않으면 회사를 인수하지 않겠다는 으름장(?)까지 놓는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그도 전문경영인들에 대한 평가 만큼은 아프게 한다. 월별·분기별로 경영평가를 철저히 해 반드시 문제삼아야 할 부분은 가차없이 지적한다. 큐리텔 인수 후에는 경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매주 금요일 열리는 경영위원회는 이성규 팬택 사장, 송문섭 큐리텔 사장이 참여하고, 계열 대표 박정대 사장이 위원장을 맡아 회의를 조정한다. 박부회장도 가급적 참석해, 경영의 큰 줄기와 방향을 제시한다. 박부회장이 챙기는 또 하나의 중요한 회의는 2주에 한번씩 팬택과 큐리텔의 20개 부서 책임자들과 갖는 ‘컨센서스 미팅’이다. 각 사업부서에 하고 있는 활동을 점검하고 아이디어를 찾는 회의다. 박부회장은 “가급적 듣는 편이고 주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기회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다른 벤처기업가들과 확연하게 구분짓는 것은 이유 있는 ‘불안감’이다. “경영이 항상 어려웠습니다. 물론 지금도 어렵습니다. 또 언제든 망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려더군요. 불안감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회사가 커져 있더군요.” 이런 불안감이 98년 그로 하여금 창업 이후 최대의 결단을 내리게 한다. 당시 팬택은 잘 나가는 회사였다. 모토로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았고,납품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박부회장은 큰 고민에 빠진다. 휴대폰은 자동차처럼 광범위한 시장성을 가진 제품이다. 따라서 경쟁이 치열하다. 박부회장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않으면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회상했다. 미국의 자동차시장이 치열한 경쟁끝에 결국 GM 등 몇 개 대형 업체만이 살아남은 사례가 생각났다. 박부회장은 즉시 대규모 투자에 들어갔다. 추가 오더도 없는 상황에서 3백억원을 들여 김포공장을 다시 지어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었다. 불량률을 0.3% 미만으로 줄이는 품질개선작업에도 착수했다.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을 도입해 회사에 IT기술을 접목하는데도 열심이었다. 2년 7개월 동안 6백50억원이 들어가는 이 프로젝트는 2000년 5월 완료됐다. “투자 첫해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적자까지 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기본이 마련됐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관리 및 생산시스템이 글로벌기업들 못지않게 현대화됐고, 어떤 제품을 주문받더라도 즉시 대응할 수 있게 됐습니다.” 팬택·큐리텔의 사시(社是)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자’이다. 하지만 그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먼저 강한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부회장은 하반기부터 일생 일대의 승부를 건다. 8월부터 내수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동안 팬택은 전량 수출했고, 큐리텔이 국내 휴대폰 시장의 3% 정도 점유율을 지니고 있다. 국내 휴대폰시장은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의 벽이 두텁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두렵습니다. 하지만 경쟁은 팬택과 큐리텔의 운명이라고 봅니다. 수십년이 걸리더라도 삼성·LG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회사는 망합니다. 사실 무선호출기를 만들던 시절부터 항상 다국적기업들과 경쟁했습니다. 단기간에는 어렵겠지만 기술력을 바탕으로 부단히 노력하면 승산이 있다고 봅니다.” 승산 전략은 뭘까? 그의 설명은 이렇다. “세계 휴대폰시장의 90%는 보편적 휴대폰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소위 저가형이라 불리는 제품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들이 신제품을 잇달라 내놓으면서 마치 ’저가는 값어치 없는 것’처럼 국민적 착시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이제 쓰지 않는 기능을 잔뜩 만들어 놓고 값만 올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보편적 제품을 만드는데는 팬택과 큐리텔의 기술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자신합니다.” 그는 장기 목표로 “최고의 기술을 가진 세계적인 전자통신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목표를 위해 끝임없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목표는 글로벌 기업이다. 올해 팬택과 큐리텔은 1조6천억원어치의 휴대폰을 해외 15개국에 내다 판다. 수출 비중이 80%를 웃돈다. 이젠 수출 볼륨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더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진행 중이다. 올초 실리콘밸리 내에 있는 큐리텔 지사를 확대 재편한 것도 그런 전략의 하나다. 사업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박부회장도 집에서는 다정한 아버지다. “사업을 핑계로 가족들에게 소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일요일에는 항상 같이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양평에 가서 뜰채로 고기를 같이 잡기도 하지요.” 그는 운전을 못한다. 대학 다닐 때 어머니에게 받은 운전 면허비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고 한다. 당시 어머니에게 “운전기사 데리고 다니면 되잖아요” 했던 약속이 결국 맞아떨어졌다고 허허 웃었다. 부인이 운전대를 자주 잡는데 같이 대화할 시간이 많아 좋다는 얘기도 했다. 현재 팬택 계열에는 큐리텔을 비롯해 팬택네트(온라인게임)와 팬택미디어(영상관련제품 생산)·팬택여신투자금융 등이 있다. 전체 임직원은 2천4백명. 현재 7백명인 기술인력을 8백5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제 중견 그룹으로 도약한 팬택. 박부회장에게 앞에 놓여 있는 과제도 덩치가 커진 회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살아남는가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박병엽이 구상하고 있는 절묘한 승부수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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