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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도 투자다”…기업들 ‘공익마케팅’ 붐

“자선도 투자다”…기업들 ‘공익마케팅’ 붐

일러스트 배진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김정훈씨(27)는 지난 4월 ㈜남양알로에에 입사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녀가 화장품 회사에 들어간 것은 일견 전공과 무관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녀가 이 곳에서 맡게 될 일은 남양알로에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 관리하는 일. 본사 직원 1백 명이 채 안 되는 중소기업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만 전담하는 직원을 뒀다는 것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 남양알로에는 앞으로 매출의 1∼2%를 사회공헌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사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사회공헌 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2000년 전경련이 기업 이익의 1%를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에서 ‘1% 클럽’을 결성한 이후 몇몇 돈 있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실시되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점차 소규모 기업들로 확산되는 추세다. 또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예산 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전경련이 국내 기업 193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0년 이들의 사회공헌 활동 지출액은 7천60억원으로 기업당 평균 집행액을 기준으로 98년에 비해 61.7%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 응답 기업의 평균 매출액이 11.3% 감소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큰 폭의 성장세다.

마케팅 전략으로서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특히 최근 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운영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의 뚜렷한 인식 변화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오너의 감상에 따라 ‘시혜(施惠)’의 차원에서 즉흥적·단발적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는 회사의 브랜드를 알리는 고도의 경영 전략으로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널리 확산된 상태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각급 학교에 PC를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자사의 소프트웨어 ‘윈도’를 깔아 이에 익숙한 사용자들을 확산시킨 것이나, 맥도날드가 아직 입맛이 굳어지지 않은 결식 아동들에게 햄버거를 나눠주며 자사 제품 맛에 길들여지도록 하는 것도 전략적 사회공헌 활동이다. 미국계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Bain&Company)의 써니 리(Sunny Lee) 부사장은 “미국에서는 마케팅 비용 측면에서 30초 광고보다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특히 제품 질이 비슷해 기업 대외 이미지 개선이 중요한 제약회사에서 이같은 ‘윤리 경영’ 움직임이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조직관리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제일제당 사회공헌팀의 박필규씨는 “임직원이 자원봉사 등 사회공헌 활동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내부 결속력이 높아지고,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 고취돼 생산성 향상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효과 덕분에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사회공헌 활동이 향후 수익 증대를 가능케 한다고 보고, 이를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사회공헌 활동을 전담하는 별도의 팀을 꾸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 효율성 극대화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지난 94년 ‘삼성사회봉사단’을 출범시켜 매년 1천억원 이상을 사회봉사 활동에 쓰는 삼성그룹을 비롯해 제일제당·한화·교보 등이 사회공헌 프로그램 전담팀을 운영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전경련의 「2001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2000년 말을 기준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실시하는 기업 가운데 25.9%가 전담부서를 설치하거나 전담자를 지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체계적 운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제일제당은 지난 99년 12월 사회공헌팀을 별도로 발족시켰다.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 4명으로 구성된 제일제당 사회공헌팀은 연간 평균 20∼30억원 규모의 그룹 내 모든 사회공헌 활동을 주관해 계열사별로 조정, 지도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각 계열사별로 업태 특성에 맞는 사회공헌 활동을 배정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

국내 진출 글로벌기업이 변화 촉발 그동안 ‘낭비’라고 폄하되던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전환된 데는 IMF 이후 속속 진출한 해외 글로벌 기업들의 자극이 컸다. 마이크로소프트·시티뱅크 등 오래 전부터 비즈니스 전략적 관점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해온 서구 기업들은 국내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쳐 마케팅 전략으로서의 사회공헌 활동의 모범 사례를 보였다. 예컨대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는 지난 4월 청소년지원 프로그램 ‘메이크어커넥션(Make a Connection)’을 공부방 지원사업 형태로 한국에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노키아의 메이크어커넥션 프로그램은 지난 2000년 초 첫선을 보였으며 지금까지 1천만 달러가 투자됐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은 주먹구구식으로 펼쳐지던 기존의 사회공헌 프로그램들이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데 있다. 즉 돈은 돈대로 쓰면서 기대했던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자 좀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 황창순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학 프로그램 등 기존 사업의 효과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기업들이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담팀을 꾸리고, 경영 전략적 접근을 하는 기업들이 늘어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최근 들어 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문가들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더 많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아직도 우리 기업들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전략적으로 접근하려는 고민이 부족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전문 인력을 활용하지 않아 프로그램 효율성도 떨어질 뿐 아니라, 일관성 없는 산발적 프로그램 운영으로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 이에 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재단을 통한 지속적인 기부 활동으로 아동·교육 분야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굳혔고, 리바이스도 에이즈 퇴치를 위해 앞장서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널리 확산시켰다. 국내에서는 유한킴벌리 정도가 전략적 접근으로 환경 친화적인 기업으로서의 이미지 수립에 성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기부사업 컨설팅업체 도움넷의 강옥경 팀장은 “차세대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트렌드는 테마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그녀는 “하나의 테마를 잡고 이와 연계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때 그 기업의 이미지가 확실히 각인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국내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국내 기업들이 점차 해외에서의 사업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이에 발맞춘 해외에서의 프로그램 운영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과제는 역시 부족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을 확대하는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하루 10억원을 써야 할 만큼 예산이 많다더라”는 한 실무자의 자조 섞인 목소리에서도 알 수 있듯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 평균 예산은 매출의 0.37% 수준에 그친다. 선진국 거대 기업들처럼 수익의 1% 이상을 투입하는 것은 힘들더라도 당초 목표로 잡았던 매출 1% 지출이 하루빨리 달성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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