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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잡아먹는 ‘작은 거인들’

‘골리앗’ 잡아먹는 ‘작은 거인들’

일러스트 배진희
작지만 탄탄한 중소기업들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세계 모자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영안모자는 대우차 버스 부문과 고합에서 분리된 섬유원료 회사인 KP케미칼을 인수할 계획이다. 법정관리 중인 신성통상도 가방수출업체인 가나안에게 팔리게 됐고, 파츠닉(옛 대우전자부품)도 1백28억원에 코스닥 등록업체인 알루코에 최종 매각됐다. 영안모자나 가나안은 세계적인 일류제품과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통해 성장해온 ‘작은 거인들’이다. 그동안 성장해온 노하우를 인수한 업체에 접목한다면 인수 뒤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같은 인수는 ‘골리앗을 잡아먹은 다윗’에 비유되면서 규모의 확보를 통해 도전에 대응한다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영안모자=작년부터 대우차 버스 부문과, 고합에서 분리된 섬유원료 회사인 KP케미칼을 인수한다는 계획 아래 작업을 진행 중이다. 대우자동차의 버스사업 부문의 경우, 인수할 대상은 부산 버스공장 전체와 중국 광시성 구이린시에 있는 조립공장 지분 60%로 가격은 1천4백억원 수준이다. 연간 6천대의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는 대우차 부산 버스공장은 국내 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3천50억원, 영업이익 2백30억원, 공장 가동률 1백7% 등으로 실적이 매우 좋았다. 올 1분기에도 7백50억원의 매출에 30억원의 영업 이익을 내 수익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연간 5천대의 버스를 생산하고 있는 중국 구이린공장은 대우차가 60%, 중국 정부가 40% 지분을 갖고 있으며 부산공장에서 생산된 부품을 넘겨받아 조립, 중국 내에서 판매하고 있다. 영안모자는 지난 95년 코스타리카에서 벤츠 버스를 생산하던 마우코를 인수, 자체 브랜드로 버스와 냉동트럭을 생산하고 있다. 이번 대우차 버스부문 인수를 통해 판매 및 부품조달 등에서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함께 영안모자는 고합에서 분리된 KP케미칼뿐만 아니라 중국·인도네시아 등의 화섬부문도 인수할 계획이라고 표명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자본금 3천억원 규모의 지주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며 인수할 고합의 자산 규모는 약 1조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안모자는 모자 하나로 세계를 휩쓴 기업이다. 생산량의 95% 이상을 수출하는 이 회사는 세계 모자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스포츠 모자가 주력제품으로 지난해 2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59년 창업한 영안모자는 부가가치가 낮은 섬유관련 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일찍부터 해외생산 거점을 만들어 세계최대 모자회사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60년대부터 미국에 수출하기 시작했으며 70년대까지 6개 공장을 증설했다. 이후 84년 주식회사로 전환한 영안모자는 85년 코스타리카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해외진출의 시동을 걸었다. 87년에는 스리랑카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89년에는 방글라데시로 진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 법인과 미국·캐나다·중국·홍콩·방글라데시·스리랑카·코스타리카 등 해외법인을 합쳐 2억 달러 이상의 수출을 기록했다. 영안모자의 강점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지 시장에 맞는 모자를 순발력 있게 생산한다는 점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이 회사의 강점인 셈이다. 창업주인 백성학 회장은 북한 출신 기업인들의 모임인 고향투자사업협의회 회원중 한 명이다. 10살 때 북한에서 피난을 온 백회장은 55년 서울의 모자공장에 취직했다. 이후 19살 때 모자공장을 차리게 됐고, 이것이 영안모자의 기초가 됐다. 백회장의 경영원칙은 모든 것을 수준에 맞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집을 사거나 차를 살 때도 일생 그것을 지닐 만하다 싶을 때 산다는 것이다. 실례로 코스타리카에 진출할 때 근처 9개 지역을 포함해 2년 동안이나 사전조사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또한 백회장은 이익의 사회환원에도 앞장서는 기업인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83년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전투기에 격추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이틀 전 007편을 이용했던 그는 죽기 전에 봉사에 힘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백회장은 당시 독립기념관 건립 모금에 익명으로 5억원을 쾌척했다. 당시 재벌기업 회장들은 2억∼3억원을 냈다고 한다. 얼마 뒤 독립기념관에 화재가 나 다시 1억원을 성금을 내기도 했다. 백회장은 또 홍천에 6만평의 땅을 매입해 고아원 양로원 장앤인 수용시설 등을 세웠다. 이름은 백학마을로 붙였다. 백학마을은 중국·코스타리카·스리랑카 등에도 지어졌다. 특히 백회장은 피난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한 미국인을 찾기 위해 리더스다이제스트에 기사와 광고를 실었고, 마침내 재회에 성공한 소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대우계열 의류업체로 법정관리 중인 신성통상도 가방수출업체인 가나안에 팔리게 됐다. 신성통상은 올 2월 가나안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현재 실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올 8월께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인수 가격은 MOU(공동양해각서) 체결 당시 7백20억원이 제시됐으나 최종 매각가격은 다소 높게 결정될 전망이다. 가나안컨소시엄은 주식회사 가나안과 드림벤처캐피탈·KCR구조조정조합으로 구성돼 있으며 산업투자가 자격으로 참여한 1대주주 가나안이 신성통상의 경영을 맡게 된다. 가나안은 신성통상과의 MOU 체결에 앞서 신성통상이 보유하고 있는 하이파이브 주식 47%(37만7천5백주)를 37억8천만원(주당 1만1천64원)에 사들여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가나안이 신성통상과 본계약을 체결하면 매출규모 면에서 3분의 1밖에 안 되는 비상장업체가 상장업체를 인수하는 셈이다. 가나안 역시 ‘가방 하나로 세계를 정복한’기업이다. 가나안은 외부로 드러난 화려한 기업 이미지는 없지만 가방·의류 및 텐트를 OEM 방식으로 미주·유럽·아시아로 수출하면서 매출액 1천억원대를 보이는 건실한 기업이다. 지난 83년 가나안 상사로 출발, 하남시에 가방·배낭공장을 가동하면서 수출시장에 발을 내딛은 가나안은 IMF를 맞아 전 산업의 수출경기가 최악의 상태를 보이일 때에도 오히려 매출이 올라간 저력의 기업이다. 90년 무역의 날 1천만불 수출탑과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면서 그 저력을 인정받은 이 회사는 99년 5천만불 수출탑을 기록한 데 이어 2001년에는 7천만불 수출 실적을 올렸다. 96년 이후 국내 생산설비를 접고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 설비를 이전 월 평균 1백만개 이상의 가방을 생산하고 있는 가나안의 생산캐퍼는 단일공장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품질의 우수성과 디자인력 역시 가나안의 가장 큰 무기. 나이키·팀버랜드 등 세계 일류브랜드 가방을 생산하고 있는 가나안은 향후 봉제산업이 살기 위해서는 디자인 마케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 디자인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나이키 제품 중 12개 스타일이 가나안에서 디자인된 제품으로 디자인력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가나안이 전개하고 있는 내수 브랜드‘아이찜’역시 IMF 이후 성장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수출과 내수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업체로 꼽히고 있다. 창업주인 염태순 회장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한 후 중소업체에서 수출을 담당하다 83년 가나안을 창설했다. 최근에는 의류사업과 텐트사업을 통해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신성통상을 전격 인수하려는 것도 의류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염회장의 승부수다. ◆파츠닉(옛 대우전자부품)도 1백28억원에 코스닥 등록업체인 알루코에 최종 매각됐다. 알루코는 과거 대우전자부품에 전해콘덴서용 알루미늄박을 공급했던 하도급업체로 자기보다 10배 정도 큰 거래소 상장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알루코는 지난 2000년 11월 파츠닉을 인수하는 매각계약을 체결했으나, 파츠닉 현지 법인의 추가부실이 드러나면서 지난 1년 7개월간 최종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 알루코사가 인수지분을 낮추고 채권단도 매각대금을 조금 깎아줌으로써 매각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특히 알루코의 박주영 회장은 과거 15년간 대우전자부품에 근무한 대우직원 출신이다. 박회장은 지난 70년 대우전자부품의 전신이었던 대한전선에 입사, 지난 86년 퇴직 직전에는 대우전자부품 기술부장으로 근무했었다. 박회장은 대우전자부품을 나온 뒤 알미늄코리아를 설립, 대우전자부품에 콘덴서 제조재료로 쓰이는 알루미늄박을 공급하다가 전 직장이었던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이로써 종업원이 독립해 하도급업체를 차린 뒤 원래 직장을 인수해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는 이색적인 기록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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