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PB연구회 공동기획(2) 부자치고 뚱뚱한 사람은 없다
이코노미스트-PB연구회 공동기획(2) 부자치고 뚱뚱한 사람은 없다
올드 머니는 옛날 부자, 뉴 머니는 신흥 부자 한국의 부자들을 정형화하기는 불가능하다. 돈을 모은 과정·출신지역·나이대·자신들의 경험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의상 올드 머니(Old Money)와 뉴 머니(New Money)로 나눠볼 수 있다. 올드 머니는 대대로 내려오거나 한국의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축적된 부를 말한다. 반면 뉴 머니는 벤처 창업자·전문직 종사자·최근 각광받는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의 돈이다. 한마디로 신흥 부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올드 머니는 다시 자수성가형과 상속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같은 올드 머니라도 이들 양자간에는 문화가 판이하다. 상속형은 한국의 가장 전통 깊은 부자들이다. 재벌들을 포함해 할아버지·아버지대부터 사업을 물려받아 재산을 불린 사람들이다(이들 전통적 부자들의 얘기는 다음 호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번 호에서는 자수성가형 올드 머니를 살펴보자). 앞에서 예로 든 김노인은 산전수전 다 겪으며 힘들게 돈을 모은 60대 이상의 부자들을 대변한다. 이들의 성향은 한마디로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는다’. 모두가 가난하던 6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굶어가며 모은 돈이기 때문이다. 김노인은 빌딩을 몇 채씩이나 가진 수백억대 재산가다. 하지만 그는 요즘도 버스를 타고 다닌다. 버스비도 아까워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닌다. 만기가 되면 거의 전 금융기관에서 금리 견적서를 받아 0.5%포인트라도 더 높은 곳으로 간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보면 피 마르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김노인은 뱅커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입맛에 맞는 금융 서비스로 김노인의 신임을 산 한 금융기관의 이모 차장. 어느 날 김노인이 점심을 사겠다는 말을 듣고 감격했다. 기대감에 따라 나섰지만 도착한 곳은 허름한 돈까스 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 식사값 1만원을 계산하면서 김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차장이 워낙 잘해줘서 특별 대접한 걸세. 덕분에 나도 1년만에 외식했군.” 은행에 오면 구내식당에서 1천원짜리 밥을 먹고, 증권사 영업점 객장에 갈 때는 김밥을 싸들고 다녔다는 일화를 타 금융사 동료로부터 전해듣고 이차장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고 한다. 모 증권사 관계자는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수전노가 울고 갈 정도의 짠돌이”라고 말한다. 금융기관에서 이들 VIP고객들에게 식사대접을 할 때는 어김없이 호텔로 간다. 하지만 이들이 보답차 사는 점심식사는 거의 정해져 있다. 설렁탕·칼국수·된장찌게. 옛날 부자들,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는다’ 박모 노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임차 보증금만 2백억원에 달하는 박노인은 천억대 재산가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보면 영락없는 부랑노인이다. 그가 벤츠만 타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를 부자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도 얼마 전까지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 사건 이후 곧장 벤츠를 구입했다. 차는 안전한 걸 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왕소금이지만 자기 건강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60대 이상 자수성가형 노인들의 두 번째 특징이다. 스크루지도 울고 갈 구두쇠들이지만 이들이 돈을 아끼지 않는 곳이 3군데 있다. 자기 건강·자녀교육 그리고 재산증식을 위한 투자성 지출. 60대 이상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가족들에게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한쪽 얼굴은 남다른 가족관계다. 부자들은 대개 가족끼리 모여 사는 경향이 짙다. 사위도 집을 사 줘가면서 가까이 두고 산다. 특히 이북 출신의 부자들은 이런 성향이 더 강하다. ‘5분내 전가족 소집’이 가능한 형태로 사는 경우가 많다. 피란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돈에 관한 한 지킬 박사로 변한다. 부자들은 아무도 쉽게 믿지 않는다. 이들은 뭐든지 스스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돈에 관한 관리와 결정은 반드시 자기가 한다. 전문가들의 상담도 받지만 참고사항일 뿐이다. 가능한 네트워크를 다 동원해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 누구 한 사람 말만 믿고 투자하는 경우는 없다. 증권사나 은행에 돈을 갖고 들어올 때는 90% 이상 마음의 결정을 한 상태다. 창구에서 던지는 질문은 마지막 확인절차일 뿐이다. 가족들도 예외가 아니다. 마누라도, 아들도 안 믿는다. 대개가 가족 모르는 돈을 갖고 있다. 쓰는 데만 재주가 있고 돈버는 능력은 없는 아들을 둔 최노인이 대표적인 예다. 최노인이 금융자산의 20%를 맡겨둔 모 은행으로 어느 날 전화를 걸어왔다. “나를 좀 황색 등록자로 올려주소.” 주변에서 몰려드는 보증부탁을 피해 보겠다는 심산도 있지만, 혹시라도 아들이 몰래 아버지의 신용으로 대출을 받아갈까 봐 걱정돼서다. 금융 관계자들은 이런 예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 정도의 비정한 아버지지만 유산을 물려주는 것은 결국 자식이다. 돈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기에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보존하겠다는 궁여지책인 것이다. “뚱뚱한 부자는 없다” 이런 돈에 대한 집착은 기억력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나이 60이 넘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탁월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 언제 어느 날 어떤 식으로 얼마의 수익을 올렸는지 10년 전 일도 훤히 읊어댈 정도다. 젊고 유능한 30대 뱅커들도 이들의 기억력 앞에서는 쩔쩔 맨다. 그만큼 돈에 대한 집중력뿐 아니라 연구도 열심히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게으른 부자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게 금융계 부자 마케터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단적인 예로 “뚱뚱한 부자 봤느냐”고 묻는다. 70세가 돼도 그냥 놀지 않는 게 부자들이다. 뭔가 늘 궁리하고 연구하고 실사를 다닌다. 여기에 그동안 돈을 모으면서 쌓은 경험이 보태져 돈에 대한 뛰어난 ‘직감’을 형성한다. 이들의 학력은 천차만별이지만 “똑똑하지 않은 부자는 없다”는 게 금융계 종사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똑똑함’ 이란 공부를 잘하는 것과 상관 없다. 명문대와 부자와는 크지 않다. 부자 IQ가 따로 있다는 얘기다. 부자 IQ의 특징은 첫째, 돈벌 기회를 찾는 직감이 뛰어나다. 순간적 판단력이 빠르다. 그래서 남보다 먼저 보고 먼저 한다. 둘째, 결단력이 있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아무 소용없다. 사실 부자들 중에서 남 모르는 정보로 돈을 번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다 알려진 투자기회를 직접 실사해 본 뒤 기회다 싶으면 행동으로 옮긴다는 점이 부자와 보통사람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다. 셋째, 선택과 집중에 능하다. 부자들 중 이것저것 잡다하게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기 분야를 선택하면 거기에 평생을 매달려 외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일단 선택했으면 집요하다. 투자를 해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투자도 하고, 주식도 하는 경우는 없다. 부동산 부자가 주식·채권을 하는 것은 분산투자 차원에서 재산의 일부를 간접상품에 넣어두는 정도다. 부동산으로 돈번 사람은 줄기차게 부동산에만 집중해 그 분야에 관한 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많다. 임동하 하나은행 차장이 진단하는 부자 자질론은 흥미롭다. “모든 면에서 탁월한 인재라는 생각이 드는 부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멍청한 부자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죠. 부지런하고 어떤 분야든 자기가 맡은 일에는 집요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많습니다. 부자들이 남다른 점은 1등은 아니지만 과락은 없다는 점입니다. 결정적인 단점이 없다는 얘기죠. 예를 들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직감이 있고, 결단력도 있으며 집요하고…, 모든 면에서 탁월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한데 단 한 가지, 노름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설사 일시적으로 된다고 해도 지키지 못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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