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증권, 연이은 금융사고에 몸살
대우증권, 연이은 금융사고에 몸살
어제의 1위, 그러나 오늘은? 그럼에도 지난 1999년 대우그룹 몰락 이후 위축된 대우증권의 형편이나 산업은행에 인수된 뒤 지루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매각작업을 감안하면 대우증권의 최근 금융사고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식시장 침체와 치열한 경쟁 속에 몸을 맡기고 있는 증권사 직원들은 20여년간 ‘부동의 1위’로 업계를 이끌어왔던 대우증권의 현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잇따른 직원 연루 대형 금융사고= 2002년 8월23일 오전 10시 5분, 대우증권 법인영업부는 일부 계좌에서 이상 매매징후가 포착됐다. 이에 앞서 10시 3분 델타정보통신 주식 5백만주가 순식간에 매도주문이 나왔고, 이를 H투신 사이버 법인 계좌에서 전량매수했다. 체결금액은 2백58억원. 대우증권은 즉시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알리는 한편 금감원에 신고했다. 11시 30분 대우증권 직원들이 매수주문이 나온 신촌 PC방에 급파됐고, 해당 PC를 봉인해 경찰청에 인계한 뒤 사장 이하 담당 임원·직원으로 구성된 비상대책반이 구성됐다. 증시 사상 초유의 기관계좌 도용 사기매매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사건은 결국 기업사냥꾼과 증권사 직원들이 공모, 델타정보통신 M&A와 주가조작을 진행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사이버 법인 계좌를 개설한 뒤 보유한 물량을 모두 떠넘긴 사건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신촌 PC방에서 사이버 계좌를 개설하고 매매체결을 주도한 사람이 대우증권 직원 안 모 씨인 것으로 드러난 것. 이로 인해 대우증권은 직원과 사이버 계좌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았다. 대우증권은 사건 이후 결제사고를 막기 위해 회사 자금으로 결제를 완료하고 윤리강령 발표, 내부통제 시스템 강화·책임자 직원면담 강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뒤인 11월14일 대우증권 사하지점 직원이 1백75억원의 자금을 횡령한 뒤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개 신협이 해당 직원에게 각각 1백40억원과 35억원을 맡겼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직원은 해당 자금으로 위험이 주가지수선물옵션에 투자해 대부분을 날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사태 직격탄 맞은 리딩증권사 그리고 누수현상=대우증권 내부나 증권업계에서는 최근 발생한 대우증권의 금융사고와 과거 화려했던 대우증권을 오버랩시킨다. 대우증권은 자타가 공인하는 20년 증권업계 리딩증권사. 대우증권은 70년 동양증권으로 설립됐다. 10년 뒤 대우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하며 당시 국내 1위 증권사인 삼보증권을 흡수합병, 일약 국내 최대 증권사가 된다. 18년 뒤 98년 말. 대우증권은 자본 총계 1조2천82억원, 임직원 2천3백명, 지점 1백5개로 성장했다. 자본 총계는 2위 증권사에 비해 많은 차이가 있었고, 임직원 숫자는 웬만한 지방은행보다, 지점 수는 증권투신업계 통틀어 가장 많았다. 대우증권은 여전히 업계 1위 증권사였다.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토’를 달지 않았다. 외형만이 아니다. 대우증권은 증권관련 제도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만큼 새로운 제도를 앞서서 연구하고 전파했다. 업계 1위로서 쌓은 직원들의 노하우는 회사를 받치는 튼실한 디딤돌이 됐다. 증권감독원(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4년 연속 최우수 증권사로 선정된 것은 단순한 훈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았던 대우증권의 독주는 99년에 접어들며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미 98년부터 ‘혹시’하며 우려했던 대우그룹의 몰락이 현실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98년 말 회사 자본확충을 위해 1천5백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때만 해도 직원들은 그룹사정이 어렵지만 심각하다고 생각지 않았고, 따라서 전환사채를 매입했다. 그러나 99년 들어 불안감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4∼5월이 되면서 확실히 그룹의 위기가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시 대우증권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던 간부직원의 얘기다. 6월 들어 그룹의 위기는 본격화됐다. 이미 98년부터 그룹계열사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 요구를 거부하고 있던 대우증권에 당국을 통한 자금지원 압력이 이뤄질 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이미 동서증권이 모기업인 극동건설의 자금경색 소식으로 예탁금 인출사태를 맞아 퇴출되는 등 금융기관의 연쇄퇴출이 이뤄진 뒤여서 대우증권의 위기감은 극에 달했다. 결국 그 해 7월19일 대우그룹은 그룹총수 재산과 그룹의 운명을 채권단에 맡기는 항복선언을 하게 된다. 이제 대우증권은 ‘생존싸움’을 해야 했다. 김창희 전 사장을 비롯해 박종수 현 사장(당시 자금담당 상무)·임직원들이 모두 나서 한편으로 예탁금 인출사태를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감원 등 당국을 상대로 “대우증권이 그룹부도로 퇴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설득했다. 오랜 기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친구이며, 대우증권의 오랜 CEO였던 김창희 전 사장도 9월 부사장들과 퇴임했다. 이 같은 임직원의 노력과 함께 동서·고려증권 등이 퇴출된 뒤 고객예탁금 1백% 증권금융 예치토록 함으로써 증권사가 퇴출되더라도 고객재산은 피해가 없다는 인식, 금감원의 ‘대우증권 퇴출불가’ 의지표명 등으로 대우증권은 벼랑 끝에서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국은 결국 임시방편이지만 은행채권단이 공동으로 대우그룹의 지분을 인수토록 했고, 다음해 5월 산업은행이 은행보유 지분 25%를 인수해 새로운 대주주가 됐다. 대우증권 직원들, 스카우트 표적 이렇게 대우증권의 위기가 일단락됐다. 그러나 대우증권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매각을 전제로 인수, 대우증권은 또 다른 주인을 찾아야 하는 신세였고, 직원들은 이탈은 계속됐다. 대우증권의 위축은 다른 증권사의 기회였고, 대우증권 직원들은 스카우트 표적이 됐다. 2002년 11월. 산업은행에 인수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대우증권의 새주인 찾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몇몇 외국계가 입질을 했지만 정보만 얻어가고 매각은 무산됐다. 우리은행이 주요 인수자로 부각됐지만, 이 또한 지지부진한 상태다. 몇 년 전만 해도 약정실적 등 대부분 외형에서 1위를 차지했던 대우증권은 업계 4∼5위를 유지하는 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직원들이 피땀 흘려 벌어들였던 이익을 대우그룹에 지원됐던 자금을 대신 물어줘야 했고, 판매했던 수익증권에 편입된 대우채권으로 각종 손해배상 시비에 휘말려 왔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법인영업에 어려움이 크다. 이 같은 대우증권의 굴곡은 최근 발생한 금융사고를 단순한 것 이상으로 해석토록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시시때때로 매각루머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경영누수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사고를 무조건 대우증권 전체의 위기나 매각지연에 따른 경영공백으로 몰아가는 데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증권사에 비해 더 강력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한다 해도 근무 기강이 서지 않아 일부 누수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빨리 주인 찾아야 한다 이에 따라 대우증권 안팎에서는 “새주인 찾기가 하루빨리 매듭지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하다. 새로운 주인 찾기는 그동안 갖가지 문제를 안고서도 업계 4∼5위를 유지하고 특히 개인영업에서 업계 수위를 다툴 수 있도록 해왔던 직원들의 노력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 최근 부산 사하지점 직원 횡령사건과 관련해서도 ‘회사의 시스템상 문제보다 직원 개인의 잘못’일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대우증권으로서는 중요한 문제다. 책임져야 할 자금규모의 문제도 그렇지만, 회사의 관리시스템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고객들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현재 상대방인 신협과는 주장이 다르지만 자체적으로 알아본 바로는 4년 전 자금이 처음 들어올 때는 회사계좌로 들어왔지만, 인출된 뒤 다음부터는 직원 개인통장으로 자금이 들어온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고객의 잘못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우증권은 현재 조직관리 체계에 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잇따른 금융사고와 별도로 조직 시너지를 높이기 위한 정책을 마련 중이다. 그 중에는 그동안 영업직원들을 중심으로 개인성과에 치우친 인센티브 제도를 뜯어고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증권업계가 너무 개인화돼 왔다는 판단이다”고 전했다. 이는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변동비용화함으로써 시황변화에 탄력적으로 적응한다는 목표로 이뤄진 증권업계의 인센티브제 확산 흐름과는 크게 다르다. 대우증권 안팎에서 ‘누수현상을 우려하며 새주인 찾기가 조기에 이뤄져야 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대우증권 직원들의 경쟁력과 변화의 노력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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