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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의 정치 이야기]大選 유감… 그것은 전쟁이었다!

[윤창중의 정치 이야기]大選 유감… 그것은 전쟁이었다!

오는 12월19일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 마디로 ‘격정의 전쟁’이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을 뽑은 대선 이래 이번이 네 번째 선거지만, 이번 12·19 대선 역시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사실상 전쟁에 가까웠다. 우리 민족이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고 격정적이라는 평가는 바로 이런 선거 문화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선거 때만 되면 이성이 아닌 감성이 격돌하고 폭발한다. 그 후유증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집단과 집단이 서로 적의 관계로 돌아서면서 엄청난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깨끗한 승자(Fair winner), 아름다운 패자(Good loser)’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아직 한국의 선거 문화와는 동떨어진 얘기다. 싹쓸이이고, 완전한 승리이며 완전한 패배이다. 그래서 선거 이후의 그 살벌한 결과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선거 진영은 밀리면 죽는다는 절박감 속에서 사생결단의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인다. 무차별 폭로·인신공격·흑색선전 등 네거티브 전략으로 시작해 네거티브 전략으로 끝이 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과연 네거티브 전략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는 데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단언컨대, 정치권은 유권자가 정치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과 혐오가 지금 어느 수준에 이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정치에 대해, 정치인들의 그 뻔뻔한 표리부동과 배신·배덕 행위에 대해 넌더리를 치고 있다. 여기에 폭로전·흑색선전·인신공격을 퍼붓는 것은 그야말로 과거의 선거 방식이 아닌가 한다. 네거티브 전략이라는 것은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가능하다. 국민이 정치권을 믿어야만 어느 정치 세력이 상대 진영을 상대로 퍼부어 대는 네거티브한 공격 내용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정치인은 누구든 똑같다는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어느 쪽이 라이벌 진영의 흠집과 약점을 들쑤신다해도 별로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네거티브 전략에 대한 일반 유권자의 반발 심리가 크게 나타난 결과,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이 이번 대선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잠시 국면 전환을 위한 맞불용으로 사용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결과적으로 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네거티브 전략이 역풍을 몰고 온 경우도 있다. 기존 정치권이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친모 문제를 은근히 쟁점으로 삼으려했던 것은 전략적 오류였다. 그 문제가 부각되자 오히려 동정심을 크게 유발했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전략이 됐다. 이같이 네거티브 전략이 반드시 의도한 결과를 낳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네거티브 전략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가 국민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기네들 후보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의 선진국형 선거 방식이 돼야 할텐데, 우리 정치인들은 몇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은 국민의 수준을 얕잡아 보기 때문이라고 단언 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정치가 큰 문제인 것은 정치를 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고, 결과적으로 어떤 불행한 상황에 닥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훌륭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점이다. 여기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 정치판이기 때문에 참신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들어간다 해도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신공격·흑색선전 등 네거티브 선거 전략이 선거의 전부인 것으로 인식하고 훈련받아온 ‘정치꾼’들이 매번 선거가 있을 때마다 ‘프로 선거꾼’으로 기용되면서 네거티브 전략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네거티브 선거운동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정책에 관한 경쟁도 없지 않았지만,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의한 감정의 격화로 인해 선거 진영은 네거티브한 내용을 쟁점화하고 이를 놓고 공수를 벌이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정작 정치 개혁·북한 핵문제 등 굵직한 국가적 현안들이 본격적인 논의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비판 받아야 한다. 지금 외국에서 한반도 정세에 대해 판단하기를, 한국이 북한 핵문제와 같은 중대한 국제적 문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아무리 선거라고 하지만 그런 본질적인 국가적 현안에 대해서는 기껏 이념 논쟁 정도로 그친 채, 딴 문제를 놓고 치열한 감정 싸움을 벌일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우리 모두 짚어 봐야 할 대단히 심각한 한국 정치인의 고질이다. 국가 안보야 어떻게 됐든 정권이 더 중요하다는 그 형편없는 의식 구조가 깨지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주 국가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을 확대 해석이라고 한다면 더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사실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은 북핵· 정치개혁·경제문제가 돼야 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그런 국가적인 현안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상대방을 꼬챙이로 후벼파듯이 하는 감정적인 네거티브 전략에 매달린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정치인이 가장 고심한 것은 대권의 향배에 따른 자신들의 정당 선택이었다. 한나라당이 ‘묻지마 영입’에 나서고, 민주당의 ‘후보단일화 추진협의회’ 소속 의원들의 웃지 못할 탈당과 복당, 일부 의원들의 한나라당 입당 등은 한국 정치의 그 천박한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선거판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면 투표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그것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보여준 배신과 배덕·노정객들의 희화적인 변신·세불리기·줄세우기 등에 유권자가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선거가 정치권의 자정능력을 높이고 국민에게도 계도적인 기능을 하는 데 기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선은 항상 정치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사회 모든 분야도 정치판과 똑같이 돌아가고 있다. 특정 지역이 집권하면 그 지역 출신이 공직 사회는 물론 연구실까지 차고 앉는 기가 막힌 현상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확대돼 가고 있다. 경선을 하면 거의 승복하지 않고 선거 때의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으로 인해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된다. 대학이든 중소기업이든 선거만 치르면 갈기갈기 찢겨 서로 원수처럼 지내면서 갈등을 한다. 이것이 다 정치의 책임이 아닌가 한다. 지역감정은 이번 선거에서 아주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움직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소리를 낮추지만 상대 지역이 서로 벼르고 있듯이 내재적으로 잠복해 돌아가고 있다. 특정 후보를 향한 집단적인 지지 투표현상, 이른바 표쏠림 현상은 이미 기정사실로 돼가고 있다. 우리가 툭하면 정치인을 욕하지만,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과 정비례한다는 얘기가 옳은 전제라고 한다면 정치 후퇴에 대한 책임은 유권자에게도 많이 돌아가야 한다. 그처럼 특정 후보에 대해 몰 표를 던져놓고서 정치를 욕하고 나라를 탓한다는 것은 사실 모순이다. 투표에 있어 가장 큰 기준을 지역감정으로 삼는 한 유권자가 과연 정치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한다. 결국 국민이 깨어 있어야 정치가 발전한다. 의식과 행동이 깨어있어야 정치가 발전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나라를 책임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어느 후보가 더 나은지 에서부터, 어느 후보가 더 못한지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출마 후보 중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투표장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덜 나쁜 후보를 반드시 찍어야한다. 그래야 더 좋지 않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유권자는 선거로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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