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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희망과 행복의 경제학, '3E 경제 시대'온다

[신년사]희망과 행복의 경제학, '3E 경제 시대'온다

이어령 고문
경제는 혼자서 걷지 못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정치나 과학 기술과 어깨동무를 해왔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잘 알고 있는 산업혁명·산업 자본주의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富國强兵이 그 지배이념이었으며, 만인의 목표였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심심찮게 3E라는 말을 발견할 수 있다. 3E란 경제(economy)·생태환경(ecology)·윤리(ethics)의 두문자를 모은 것이다. 말하자면 이 세 개의 E 가운데 어느 하나만 빠져도 오늘의 경제는 금시 절름발이가 되거나 주저앉고 만다. 그러니까 3E는 경제의 짝이 달라지는 새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우선 경제와 자연 생태환경의 관계를 놓고 생각해 보자. 그동안 경제의 동반자가 됐던 과학기술은 눈부신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서포터였지만, 그 부작용으로 자원 고갈과 자연 생태계의 파괴로 인간의 삶 자체를 위협하게 됐다. 1972년 로마 클럽이 제출한 ‘인류의 위기보고서-성장의 한계’가 바로 그러한 경고의 첫 출발이었으며, 그 뒤부터 줄곧 ‘지속 가능한 성장’이 세계의 아젠다로 떠올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경제성장과 환경보호는 대립과 충돌관계로서 어느 한쪽을 택하면 다른 한쪽을 반드시 버려야만 하는 택일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다. 따지고 보면 경제발전과 생태계의 상극 관계는 산업주의 시대만이 아니라 이미 만년 전 농업 경제가 시작되던 그때부터 발생하게 된 문제이다. 곡식을 재배하자면 숲의 나무를 베어 밭으로 만드는 개간사업이 필요하게 된다. 개간을 하자면 도끼가 필요하고 도끼를 만들려면 쇠를 녹이는 장작과 그 자루를 만드는 나무가 필요하다. 이렇게 농업기술은 나무가 나무를 죽이는 악순환의 기술이었으며, 농지를 넓혀가는 확대 생산의 기술이었다. 그 결과로 이미 천년 전에 모든 왕들이 탐낸 궁전의 재목감이었던 레바논의 향기롭던 삼나무 숲들은 자취를 감추고 사막으로 변했다. 그러나 3E시대의 경제는 생태계의 문제가 그 성장의 한계를 의미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동반자적 관계로 변한다. 한마디로 생태계의 환경문제가 경제를 도와주는 새로운 시장이 돼 주고 그러한 경제 발전은 생태계의 보존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도우미가 된다.

생태계 파괴를 창조로 역전 단순히 환경 친화적인 기업이니 경제니 하는 소극적인 의미의 패러다임이 아니다. 3E시대의 경제는 인도네시아의 ‘쿠라큘러’ 나방이의 산업적 이용에서 보듯이 생태계의 파괴를 창조로 역전시키는 적극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실크 산업이라고 하면 누에만을 생각했다. 기원전 3000년 전 중국에서 비롯된 이 양잠의 고정관념을 깨고 자연 생태계의 지식을 넓혀가면 이 세상에는 누에 말고도 10만종이 넘는 곤충들이 각자 특징이 있는 다양한 실크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와일드 실크의 자원은 거의 무진장에 가까운 것으로 야생 곤충을 이용한 경직물 생산업은 오히려 자연 생태계를 보호해 주는 반공해의 역할을 한다. 인도네시아의 쿠리큘러 나방이는 가로수 잎을 해치는 해충으로 공해의 원인이 돼 왔던 것인데, 이 해충이 만들어내는 황금빛 야생 실크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강력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 와일드 실크를 이용하면 파라솔을 비롯해 각종 고부가가치의 건강 의류를 만드는 원단으로 쓸 수가 있다.현재 인도네시아의 왕실을 중심으로 확산돼 가고 있는 이 쿠리큘러의 신화는 경제와 생태의 밀월을 상징하는 새로운 모델의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해충을 유용곤충으로 바꾸는 전독위약(轉毒爲藥)의 패러다임 변화는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IT에 이은 BT의 신경제도 이러한 발상을 근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의약 분업으로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을 때 벌써 싱가포르는 ‘바이오 메디신’ 신경제를 선언하고 국가의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의 메디컬 센터에서는 감기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감기 바이러스 같이 인간을 괴롭히는 것을 막고 치료하는 단계에서 거꾸로 그것을 이용해 의료 시장을 만들어내는 기막힌 생태 산업이 시작돼 가고 있는 것이다. 자연 파괴의 상징인 폐광을 이용해 암치료제의 유전자를 기르는 담배를 재배하는 것에서 시작해, 벼농사의 적인 피를 역용해 아토피 치료의 특효제를 만들어내는 신종 산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반드시 특수한 신기술 분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지금 세계는 의약품보다도 서브리멘트로 불리는 영양 보조식품 산업이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비만·고혈압·당뇨 등 패스트 푸드나 불균형한 영양과다의 섭취로 인한 이른바 문명병은 의약만으로는 고칠 수 없게 된 것이다. 서브리멘트의 시장은 미국보다 20년이나 뒤졌다는 일본만 해도 연간 10조원 규모로 팽창하고 있다. 이 같은 건강 관련 신종 산업까지 포함시키면 경제와 생태환경의 동반자 관계는 날로 그 상승 효과가 증대돼 간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이러한 에코 경제의 대두와 그 현상을 뒤집어 보면 기존 산업이나 경제관이라고 할지라도 이제는 속된 표현 그대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너지 효과가 아니면 발 디딜 땅이 없게 된다는 경고의 옐로 카드가 나타난다. 그리고 ‘생태’는 이미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재창조의 경제적 자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인간이 죽기 때문에 생태계를 유지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논리가 아니라 ‘생태 환경과 인간의 문명이 협력하고 화해하면 서로 덕을 보는’ 상생관계로 경제의 컨셉트가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의 병존 환경경제학이 대두하고 있는 3E 시대에는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경제성장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업을 발전시키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희망이요 행복이다. 산업 자본주의라고 하면 공해를 연상했지만 이제는 산업 자체가 바로 그린(Green) 운동이며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 ‘치어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독일에서도 가장 유망한 업종과 성장이 빠른 기업들은 대개 다 환경산업과 관련 있는 기업들이다. 한 예로서 재생지의 차원을 넘어 공해를 일으키는 표백제를 사용하지 않은 갈색 화장지를 만드는 제조업체가 생산 코스트나 판매량 면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경제성장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고 반대해 오던 독일의 그린 시민단체들도 요즘에는 기업의 동반자가 돼 반공해의 기술개발과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는 NPO로 변해가고 있다. 감시자가 협력자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경제성장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알맹이가 자기 파괴적인 성장인가, 순환 지속형 성장인가가 문제이다. 환경은 새로운 시장과 투자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면에서도 환경보호와 성장은 대립관계가 아닌 것이다. 1990년 에너지 관련 산업의 성장률을 보면 석탄이 1.2%, 석유 1.4%, 원자력 0.7%, 풍력 26% 그리고 태양전지는 15%였다. 그러나 97년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태양전지의 성장률은 45%에 이르렀다.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세계의 기업들이 새 틀을 짜고 있는 것이다. 공해의 주범으로 알려진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부터는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줄이는 환경차가 아니면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엔진의 환경차를 만들면 오히려 시장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는 호기를 맞게 된다. 휘발유차냐 배터리차냐의 양자 선택이 아니라 두 가지 특성을 병존시켜 시내에서 저속으로 달릴 때에는 배터리, 고속도로에서 달릴 때에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엔진이 등장하게 된다.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일본에서는 벌써 상용화해 뿌리를 내렸고, 한국에서도 현대자동차가 첫선을 보였다. 자동차의 엔진 하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모든 에너지 분야에 혁명이 일게 된다. 여기에 3E의 하나로 손꼽히는 윤리(ethics)는 어떤가. 오늘날 기술의 한계는 기술 자체 또는 과학의 한계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의봉을 휘두르는 손오공의 머리에 씌운 무쇠의 머리띠처럼 언제나 그 기술과 재능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윤리의 문제이다. 당장 실현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윤리 문제 때문에 그것을 시장화하지 못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미래의 경제를 주도해 갈 BT(바이오 테크놀로지)의 경우가 그렇다. 유전자 조작으로 날개와 깃털이 없는 닭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을 했지만 ‘생명윤리’나 문화적 거부감 때문에 그 시장의 전망은 밝지 않은 것이다. 비만증 유발과 광우병의 위험으로 햄버거가 패스트푸드의 종주 자리를 위협받게 되자 그 대타로 통닭구이 식품이 부상하게 되고 식품 업자들은 날개 없는 닭을 꿈꾸게 된 것이다. 우선 닭 날개가 없으면 그만큼 사료값이 줄어들어 원가가 낮아지고 통닭구이를 만들 때 날개깃을 제거하는 수고와 시간 그리고 경비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환상적인 금상첨화의 유전자 가공 식품에는 중대한 윤리 문제가 따른다. 오히려 그보다는 청정의 고원지대에서 방사한 닭을 재료로 한 덴마크의 식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3E시대의 경제에서는 생명 윤리와 문화적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시장을 차지하기 힘든다. 경제성도 잃게 되고 기업의 이미지도 손상되고 만다.

윈-윈의 상생관계만이 살길 이제부터 경제학은 제품 생산과 기업의 조직에 이르기까지 윤리 문제와 이인삼각의 어깨동무를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매년 거물 CEO로 장식돼 오던 올해의 커버 인물 선정이 부정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의 세 여인으로 장식된 것을 보더라도 윤리의 투명성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3E 경제시대가 다가옴을 상징하고도 남는다. 우리는 지난해 엔론·월드컴 등 굴지의 미국 우량 대기업들이 분식회계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근본 자체를 흔들어 놓는 것을 보았다. 부시의 말대로 썩은 몇 개의 사과만을 가려 폐기하는 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사과가 아니라 사과를 담은 상자 자체가 문제인 까닭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윤리와 투명성 문제는 날로 기업 환경과 그 경제 지표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경제나 시장원리는 한쪽이 얻으면 한쪽이 잃는다는 트레이드 오프의 원리, 윈-로스트의 법칙으로 움직여 왔다. 그러나 오늘의 기업은 윈-윈이 아니면 성립되기 힘든 국면을 맞게 되었다. 여기에서 대두되는 것이 상생윤리다. ‘너 죽고 나만 살자’는 이기주의나 ‘나 죽고 너 살아라’는 살신성인의 이타주의 윤리도 이제는 모두 현실성과 실효성을 잃게 됐다. 소비자는 더 이상 봉도 왕도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동등한 동반자이다.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을 지배하거나 예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상생하는 인터-디펜던스(상호의존적 관계)의 지평 위에 서게 된다. 그러고 보면 결국 3E 시대 경제학의 희망의 처방전은 3P로 마무리 될 수밖에 없다. 기술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군사력이나 외교력이 무시되는 시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모든 것에 활력을 불어넣고 주도해 가는 힘으로 지금까지 소외됐던 psychology(마음)·philosophy(철학) 그리고 poetics(시학-창조적 상상력)의 문화 파워가 3E 경제를 뒷받침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벌써 이 3P가 3E를 돕는 엔진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를 예고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그의 저서 「트러스트」나 「대붕괴」에서 시사하고 있는 사회자본이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비저너리 컴퍼니’라는 말이 대두되고,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원을 내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인문계의 예술인 철학자 같은 비저너리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비저너리가 있는 벤처기업일수록 마케팅에서도 우세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캐즘 마케팅」의 저자 제프리 무어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각 인터넷에 올라 있는 최신 경제 커리큐럼 가운데에는 경제와 기술을 두 왕자로 비하고, 철학·시학·윤리학 같은 인문학은 세 누이로 그린 우화 읽기 같은 프로그램도 등장한다. 나이 많은 세 공주들이 두 왕자가 망쳐 놓은 왕국을 도와서 디시 일으키는 이야기를 통해서 미래의 경제왕국이 처해진 문제와 그 처방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3E의 시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홀대받던 3P가 샛별처럼 지평 위에 뜬다. 경제는 혼자서 걷지 못한다. 누구를 파트너로 잡느냐에 따라 그 운명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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