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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없는 정책이 위기 부추겼다

일관성 없는 정책이 위기 부추겼다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고 투신권에서 대규모 환매가 일어나는 등 금융시장에 연일 불안감이 팽배하다. 사진은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휘청거리는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 SK글로벌 사태가 직격탄을 날렸다. 주식을 팔아치우는 외국인들과 연일 치솟는 환율, 투신사 환매 사태를 보면 IMF 위기가 연상될 정도다. 투신권은 환란 이후 대우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위기는 금융시장뿐만이 아니다. 실물경제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각종 경제지표도 시원찮다.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도, 지금까지 경기를 이끌어 온 내수도,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모두 부진한 모습이다. 설상 가상으로 대외적 악재까지 겹쳐 있다. 이라크 문제로 인한 고유가와 북핵 문제는 한반도의 국가 리스크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계 대출 문제도 만만치 않다. 가계 대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나라 안팎을 보면 온통 악재만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요동치는 금융시장이 본격적인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특히 내부에서 발생한 악재의 경우 정부의 시급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운용에 대한 불투명한 정책에서 벗어나 일관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SK글로벌과 카드채, 제2의 대우채 될까=지난 3월12월과 13일 투신권은 환매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이틀 동안 무려 7조원이 환매됐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보다 많은 10조원 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SK글로벌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이 편입된 채권형 펀드의 안정성에 투자자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 대우그룹 사태의 복사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여기에 신용카드사들의 주된 자금 조달 창구인 카드채(카드회사가 발행한 회사채)도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카드사들은 통상 카드채를 발행해 현금 서비스 재원을 확보한다. 올해 카드사들이 상환해야 할 카드채 규모는 7조원에 이른다. 대부분의 투신사들은 지난해부터 국내 대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물량이 줄자 카드채를 채권형 펀드에 대대적으로 편입했다. 일부 투신 운용사들은 많으면 50∼60%까지 펀드에 편입해 놓은 상황이다. 특히 카드채는 초단기성 상품인 MMF(머니마켓펀드)에 집중적으로 편입돼 있어 카드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릴 경우, 단기 자금 시장은 회오리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SK글로벌 채권과 카드채가 과거 투신사들을 곤경에 빠뜨렸던 대우채처럼 발전하느냐이다. 만일 제2의 대우사태가 돼 금리가 치솟을 경우, IMF 환란 이후 안정을 찾은 투신권은 다시 빈사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투신 관계자들 대부분은 SK글로벌과 카드채가 제2의 대우채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대우채 문제는 대우그룹 전체의 문제였지만 SK글로벌은 한 회사의 문제다. SK그룹의 계열사들은 SK글로벌을 제외하곤 대부분은 우량 회사들이다. 규모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다. 대우채는 그 규모가 20조원 가량이었고 계열사들 간에 지급보증이 얽혀 있었지만 투신권이 보유한 SK글로벌의 회사채 규모는 1조원 정도다. 투신권 전체의 채권형 펀드가 1백80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대우채 만큼 파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철희 랜드마크투신운용 부장은 “대우채와 SK글로벌 채권은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질 않고, 대부분의 투신사들이 ‘10% 룰’(한 회사의 채권은 10%이상 편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지킨 상황이라 대우채 사태와 같은 시장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투자신탁증권의 신동준 애널리스트도 “2003년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와 기업어음은 각각 4천4백억원과 6천억원이다. 1조2천억원의 현금과 SKT지분 2백30만주(약 3천억원)를 들고 있어 대우그룹 사태보다는 파장이 적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드사들도 만기 돌아오는 카드채를 1년∼1년6개월에는 상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금리다. 만일 여기서 금리가 치솟게 되면 카드회사들과 투신사들은 곤란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금리가 오르면(채권값이 떨어지면)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26조원에 달하는 전체 카드채 물량 중 30∼40%를 투신사들이 편입해 놓고 있어, 시중 금리가 치솟고 카드채 금리가 오른다면, 투신사들은 고객들의 환매 요구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최종 향배는 ‘금리’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들, 셀 코리아(Sell Korea)인가=지난해 750P선이던 종합주가지수는 올해 3월 들어 550P선 이하로 떨어졌다. 지수 하락의 주역은 외국인들의 매도세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순매수 행진을 벌이던 외국인들은 올해 2월부터 순매도세로 전환했다. 2월 한 달간 무려 2천4백억원 어치를 팔아 치웠다. 매도 규모만 놓고 보면 환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증시 전문가들은 그러나 셀 코리아 행진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박만순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이사는 “최근 외국인들의 매매 형태를 보면 1∼2개월 시차를 두고 단기 매매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종목별로 보면 소재주·금융주·IT(정보기술)주 등을 순차적으로 매도했다. 순환 매매 양상은 대대적인 매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셀 코리아가 시작됐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말한다. 피데스투자자문의 김한진 상무도 이와 비슷한 의견이다. “외국인들은 시가총액의 36%, 거래비중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자기들 마음대로 셀(sell)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월가의 이해와 요구와 한국 시장과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즉, 북한 핵 문제가 떠오르자 일단 위험은 피하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미국 증시의 침체로 인한 미국 투자자들의 환매 압력도 셀 코리아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머징 마켓 중 수익을 올린 한국시장에서 차익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셀 코리아는 아니더라도 바이 코리아를 멈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이사는 “국가 리스크와 아울러 SK그룹의 분식 회계 조사도 외국인들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분식 회계 문제가 다른 기업으로 불똥이 튈 경우 매도세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환위기로 이어질 것인가=IMF 위기는 환율 급등으로부터 시작됐다. 외국인들이 연일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의 환율 급등을 외환 위기로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환율은 급등했지만 외환 위기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그는 외환보유고와 기업들의 부채 규모를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1천2백억 달러. 총 외채도 이와 비슷한 규모다. 외환위기 가능성을 짚어보려면 단기 외채 비중을 봐야 한다. 정연구위원은 “외환위기는 단기외채의 상환 압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총외채 중 단기외채는 38% 수준으로 환란 시절보다 외환 유동성은 많이 좋아진 상황이다. 외환위기가 임박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들의 부채비율도 낮은 외환 위기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다. IMF 환란은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부실에서 기인했다. 최근 기업들은 부채비율을 많이 낮추었고 수익력도 과거보다 좋아진 상황이다. 오히려 환율 급등은 이런 대내적 요인보다는 북핵 문제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불안감 등 경제외적 변수에서 찾는 게 타당하다는 의견이다.

▶가계대출, 금융 부실화의 뇌관인가=일부 전문가들은 IMF 위기가 기업들의 과도한 부채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이 원인이었다면 새로 올 위기는 가계 대출이 주범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2002년 말 현재 국내 가계부채 잔액은 사상 최고치인 4백45조원으로 98년 말 1백84조원에 비해 2.4배 증가한 상황이다. 가구당 부채당 3천만원을 웃돈다. 특히 신용카드의 가계 대출은 상황이 심각하다. 신용카드의 가계 대출 연체율은 11% 이상으로 매우 높은 상황이다. 현재 우량등급인 A+∼AA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카드사들의 신용등급은 조만간 하락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카드사들은 조달 금리 인상과 연체율이란 이중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조달 금리가 높아지면 카드사들은 다시 수수료율을 올릴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연체 증가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계 대출이 금융 부실화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가계 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담보대출 비율이 담보가액과 비교해 60% 이하인 상태라 직접적인 금융부실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책은 없나=현재의 경제 상황은 갖가지 악재만 가득한 상황이다. 대외적 악재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내적 악재는 빨리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의 위기는 지정학적 위기와 내부적 위기가 결합된 위기다. 혹자는 지정학적 요인을 강조하지만 당국의 방식이 너무 서투르다”고 꼬집는다. 하루 빨리 현 정부가 정책 일관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교수는 “경기 부양이 중요한 시기가 아니다. 정부는 더 내놓을 경기부양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의 투자환경을 적극 조성하고 기업과 금융권에 일관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도 같은 입장을 피력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 불투명하다. 재벌정책과 노동정책을 보면 전혀 일관성이 느껴지질 않는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경제적 변수 중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국제 유가와 금리의 향배다. 정영식 수석연구위원은 “기업들이 불안감에 휘말리고 자금흐름이 경색돼 시중 금리가 급등하는 게 가장 치명적인 시나리오다. 여기서 금리가 높아지면 투신권 뿐만 아니라 가계 대출 문제도 다시 급부상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상무는 기름값의 향배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유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세계 경제 전체가 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석유를 전부 수입하고,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게 고유가는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외적 변수인 유가 문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국내 문제는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단기적으로 시중 금리 안정화에 주력하면서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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