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넋까지 빼앗은 ‘유태인 신부’
반 고흐 넋까지 빼앗은 ‘유태인 신부’
내 수명 중 10년 내줄 텐데”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을 찾은 방문객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아무래도 렘브란트의 그림들이다. 그의 최고 대표작 ‘야경’을 비롯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한탄하는 예언자 예레미아’ ‘의류 길드의 지도자들’ ‘툴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 ‘유태인 신부’ 등 유명한 걸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 ‘빛과 그림자의 마술사’가 보여주는 위대한 조형의 감동에 푹 젖어보는 것도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반 고흐는 이 미술관을 찾았다가 렘브란트의 ‘유태인 신부’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폐관 시간이 되도록 그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고 한다. 같이 갔던 친구가 조급해진 마음에 나가자고 재촉하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계속 볼 수만 있게 해준다면 내 수명 중 10년이라도 내어줄 텐데.” 위대한 예술이 주는 감동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오죽하면 자신의 수명에서 10년을 뭉툭 떼어준다고 했을까? 예술적 감동은 이렇듯 늘 영원으로 이어진다. 그 감동의 순간은 찰나 같지만 찰나가 아니라 영원이다. 그래서 반 고흐도 현실의 수명 10년이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 ‘유태인 신부’는 19세기까지 유태인 신부를 그린 것으로 생각돼 제목이 그렇게 붙여져 있지만, 사실 그림 속의 여자가 유태인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렘브란트가 성경에 나오는 이삭과 그의 부인 리브가를 주제로 그리면서 당시의 어느 젊은 부부를 모델로 형상화한 그림일 것이다. 아들 내외를 그린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이 작품에는 렘브란트의 다양한 회화 기술이 동원됐는데, 특유의 명암 대조뿐 아니라 질감 대비도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얼굴과 손이 비교적 부드럽게 표현된 반면 의상, 특히 소매 부분이 매우 거칠게 그려진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붓뿐 아니라 나이프를 사용해 물감을 바르거나 긁어 부조 효과까지 자아내고 있다. 만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표현상의 풍요 속에서 수줍고 다소곳한 신부가 연꽃처럼 피어난다. 다감한 남편은 그 꽃이 다칠세라 품어 안기에 바쁘다. 소박하지만 가장 소망스럽고 누구나 그리워하는 정과 사랑이 넘치는 그림이다. 반 고흐는 이 따뜻함도 함께 그리워했을 것이다. 화상 일도 겸한 얀 스텐 얀 스텐은 렘브란트와 동시대의 화가이다. 그는 렘브란트처럼 깊은 정서적 울림이 있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으나 단원 김홍도와 같이 일상 속에서 유머와 해학을 생생히 낚아 올려 누구에게나 친근한 그림을 그렸다. 생활이 궁핍해 여인숙을 운영했는데, 여기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표현해 풍속화의 대가가 됐다. 그가 그린 ‘성 니콜라스 축제’를 보노라면, 당시 네덜란드 서민들의 일상이 마치 우리 이웃의 그것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그림의 배경이 된 날은 성 니콜라스 축일 이브. 지금으로 치자면 크리스마스 이브다. 온 가족이 이 날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특히 아이들에게 반가운 이 날은 무엇보다 선물을 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나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도 있다. 왼쪽에서 울고 있는 소년이 그다. 소년의 신발에는 낭창낭창한 나뭇가지 빼고는 아무 것도 없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말썽꾸러기에게 주는 회초리 선물이다. 동생이 그 신발을 손으로 가리키며 약올리고 있다. 혼자서만 선물을 받지 못했으니 얼마나 서러울까. 하지만 제아무리 말썽꾸러기라도 이렇게 잔인하게 명절을 보내게 할 수는 없다. 배경 쪽에서 할머니가 우는 아이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아마도 커튼 뒤에 그 아이를 위해 뭔가 준비해 놓은 게 있음이 틀림없다. 할머니의 사랑처럼 그저 푸근하고 따뜻하기만 한 것이 있을까? 소년은 할머니의 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소란스럽고 부산해도 역시 명절은 서민들에게 일년 중 가장 즐겁고 행복한 날이다. 전경 오른쪽의 마름모꼴 케이크는 축제 때만 먹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송편이나 떡국처럼 풍요와 감사의 상징이라고 하겠다. 얀 스텐은 그림만 팔아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돼 화상 일을 한 화가이다. 일하면서 그리다 보니 그림을 많이 남기지 못해 현존하는 작품이 40점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도 거의 소품들로서 한두 사람 정도가 그려진 실내화가 대부분이다. 좁은 집에서 많은 식구가 북적대는 가운데 그림을 그렸음에도 그의 작품에서는 한가로움과 여유가 넘친다. ‘러브레터’라는 제목의 중산층 실내화 또한 마찬가지다. 유복한 네덜란드 여인이 집안에서 루트를 타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얼굴을 돌려 하녀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연주를 멈춘 것은 하녀가 편지를 한 통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낸 편지일까? 또 어떤 내용이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벽에 걸려 있는 풍경화들로부터 찾을 수 있다. 먼저 아래 걸린 해양 풍경화. 당시 네덜란드 미술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는 사랑을 의미하곤 했다. 사랑은 바다의 폭풍처럼 격정적이지 않은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우리의 유행가 가사도 있듯이 항구에 잠시 머문 배는 연인을 나타낸다. 이로써 우리는 편지의 내용이 사랑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양화 위에는 걸어가는 사람이 그려진 풍경화가 있다. 그는 지금 터벅터벅 걸으며 사라져가고 있다. 떠나간 님이 보내온 사랑의 편지, 악기를 타며 마음을 달래던 여인이 가장 기다렸던 선물을 이렇듯 이 그림은 한가로우면서도 생기가 넘치는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네덜란드인들이 소박한 삶과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임을 선조들의 이런 그림을 통해서도 우리는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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