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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호텔들 ‘눈물의 반값’

특급 호텔들 ‘눈물의 반값’

경기침체에다 사스 공포가 겹치면서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호텔업계가 많게는 50%할인된 객실요금, 다양한 이벤트로 내국인 모시기에 나섰다.
지난 11일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호텔은 신관 투숙객의 체크인 과정을 모두 생략하는 ‘노 웨이트 체크인’(No Wait Check-in) 서비스를 선보였다. 고객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호텔 객실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1분도 기다리는 시간 없이 곧바로 투숙할 수 있는 서비스다. 고객은 로비에 들어서면 로비 매니저의 영접을 받는다. 짐은 벨맨에게 넘기면 된다. 말 그대로 ‘체크인 과정 없는 체크인’이다.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은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기념해 2000년 이전 객실에서 찍은 사진을 가져오는 고객에게 10년 전 요금으로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그 때 그 사진을 찾습니다’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에 참가하면 2인 조식이 포함된 딜럭스객실을 10만원, 이그제큐티브객실을 13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 제일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다는 호텔 방이 이 정도 조건이라면 누구라도 귀가 솔깃할 만하다. 이달 말부터 서울 힐튼호텔은 아주 특별한 행사를 개최한다. 이 호텔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김연자씨를 국내로 ‘역초청’해 디너쇼를 연다. 이달 말부터 5월 초까지 30만명 이상 해외여행을 즐긴다는 일본의 ‘골든위크’(황금연휴)를 타깃으로 한 이벤트다.

“10개 중에 4개는 빈방” 유명 호텔들이 파격적인 요금과 서비스를 내세워 내국인 고객 ‘유혹’에 나섰다.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공포와 북핵 문제 여파로 영업에 비상이 걸린 탓이다. 통상적으로 호텔업계에서 4월은 ‘따뜻한’ 계절이다. 국제회의는 물론 기업들의 행사가 집중되는 시기라 ‘못해도’ 70∼80% 정도는 객실이 팔린다. 그러나 올 봄엔 빈방이 10개 중에 4개가 넘는다. 객실 점유율이 50∼60%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고 있다는 신라호텔의 경우도 3, 4월 객실 점유율이 각각 57%, 62%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89.2%)에 비해 무려 30%포인트 가까이 방이 남아돌았다. “그나마 지금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는 하루에 1백50건씩 예약이 취소됐다. 17년째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이런 불황은 없었다.” (S호텔 객실영업팀장) “호텔 비즈니스의 가장 큰 특징은 공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이 2가 아니라 어떤 때는 3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이런 공식이 불가능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타이밍’이다. 호텔리어한테는 요즘이 바로 최악의 타이밍이다. 전쟁이 (비수기인) 1∼2월에 터졌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전쟁이 종전 기미를 보이자 이번에는 ‘사스 공포’에 휩싸였다.” (H호텔 판촉담당 이사) 사실 IMF 위기 때도 은근히 재미를 보던 업종이 바로 호텔업이었다. 인수·합병(M&A)과 컨설팅 등을 목적으로 국내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외국 비즈니스맨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타이밍을 잘못 만난 것이다. 최근의 불황은 호텔업계로는 처음 겪는 위기인 셈이다. 그렇다고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특급호텔들의 불황 타개책은 눈물겹다. 가장 먼저 나온 구호가 바로 ‘호텔 문턱을 낮추자’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외국인을 주고객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내국인으로 눈을 돌렸다. 내국인 손님을 유혹하기 위한 첫번째 카드는 ‘가격 할인’. 최근 대부분 호텔들은 방값을 성수기 대비 60∼70%대로 낮췄다. 서울 힐튼호텔은 성수기 객실 요금이 2인을 기준으로 해서 36만원이지만, 최근에는 17만9천원을 받는다. 백화점 세일에서 미끼상품으로 내놓은 ‘반값 세일’ 수준이다. 신라·인터컨티넨탈·롯데 등 서울 시내 호텔들도 비슷한 가격대의 상품을 내놓고 있다. 요금 인하는 외국인 손님에게 더 파격적이다. S호텔 객실영업팀장는 “특급호텔에서 일본 단체손님 인바운드(외국인에게 받는) 객실 요금이 10만원 안팎이다. 이러다가는 업계의 요금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멤버십 프로그램 역시 문턱을 낮췄다. 서울 리츠칼튼 호텔은 기존의 ‘골드 멤버십’보다 연회비가 저렴한 ‘리츠칼튼 멤버스’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골드 멤버십 연회비가 30만원인데 비해 ‘리츠칼튼 멤버스’는 5만원이다. 객실·레스토랑·연회장 이용 요금 할인 등 기본혜택은 물론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 관련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S·M호텔 등이 이같은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들은 ‘때 아닌’ 패키지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패키지 상품은 여름과 겨울 비수기 때 객실과 아침 식사를 묶어서 값싸게 내놓는 상품. 4월 들어서 호텔들은 비수기 때보다 ‘더 좋은’ 조건에, ‘더 다양한’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가족모임이나 동창회 등 중저가 마케팅 역시 환영이다. 조선호텔 1층 바 ‘오킴스’는 일요일마다 어린이 놀이방으로 변신한다. 점심 뷔페를 제공하면서 어린이 놀이교실을 운영하는 것. 노보텔은 뷔페 레스토랑에 놀이방을 마련해 주말 돌잔치 등 가족단위 모임을 유치하고 있다. 그랜드힐튼 호텔은 연회장에서 돌잔치를 하는 손님에게 아기 의류 교환권을 증정하고 있다.

‘호텔 밖에서’ 새 수익원 찾기도 ‘호텔 밖으로.’ 호텔들이 방값을 깎아주고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 내국인 손님을 ‘불러들이는’ 것 이상 공을 들이는 사업이 바로 ‘호텔 밖으로’ 나가는 비즈니스다. 최근 조선호텔이 선보인 문화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로이드 웨버의 화이트데이 콘서트 ‘뮤직 오브 더 나이트’가 첫 작품. 고객이 예술의전당 입구에 도착하면 주차요원이 발레파킹(주차 서비스)을 해주고, 콘서트홀에는 이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된다. 한편으로는 눈물겨운 반값 세일, 또다른 한편으로 ‘주무기’인 서비스를 앞세운 영토 확장인 셈이다. 어쨌든 올 봄이 호텔리어들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개척하기 위한 시험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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