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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음반·공연계 '영화 덕 좀 보자'

[문화현장]음반·공연계 '영화 덕 좀 보자'

영화 [시카고]의 성공에 힘입어 뮤직컬 [시카고]역시 고무돼 있다
문학이 문화의 제왕 노릇을 하던 시절, 아직 문화의 변방에 있던 한국 영화는 문학에 많은 신세를 졌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물위를 걷는 여자’ ‘숲 속의 방’ ‘경마장 가는 길’ ‘젊은 날의 초상’ 등 유명 소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원작의 유명세에 기댄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쏠쏠한 흥행을 거뒀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영화가 문화의 맹주가 된 지금, 영화의 위상은 문화의 수혜자에서 기여자로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문화의 다른 영역에서 흥행 영화 덕을 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대박 영화가 터지면 관련 소설이 나오고 게임이 개발되는 등 연쇄 반응이 일어난다. 영화 ‘친구’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책과 게임이 나온데 이어 뮤지컬로까지 제작될 예정이다. 음반 제작자들도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을 제작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대박 음반이 터진 것은 아니지만 ‘해피엔드’나 ‘접속’같은 영화의 OST는 적지 않은 양이 팔려나갔다. TV드라마 주제가를 부르는 것이 신인가수의 등용문이 됐던 것처럼 이제는 영화 주제가를 부르는 것이 등용문이 됐다. ‘12월32일’을 불러 데뷔한 신인가수 별은 영화 ‘별’의 주제가를 불러 이름을 알릴 계획이다. ‘영화 덕 좀 보자’는 대열에는 공연계도 빠지지 않는다. 뮤지컬 ‘시카고’ 수입사인 신시뮤지컬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는 요즘 싱글벙글이다. 원작을 영화화 한 ‘시카고’의 흥행 성적이 좋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이 작품을 번안해 초연했던 신시뮤지컬컴퍼니는 오는 7월, 정식으로 공연팀을 초청해서 공연하기로 했는데 운대가 맞은 것이다. LG아트센터도 수혜그룹 중 하나이다. LG아트센터는 4월25일부터 독일 피나바우쉬 무용단의 ‘마주르카 포고’ 공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무용단의 공연 장면이 4월18일 개봉한 영화 ‘그녀에게’의 중요한 배경으로 나온 것이다. LG아트센터 측은 영화 ‘그녀에게’의 시사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피나바우쉬는 이미 국내에 팬이 많지만 영화가 ‘안전장치’가 돼주었기 때문이다. 연극 ‘날 보러와요’의 연출자 김광림씨는 영화계로부터 무형의 도움 외에 물질적인 도움까지 받고 있다. 이 연극을 영화화 한 ‘살인의 추억’의 제작사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가 제작비를 2억원이나 보탠 것이다. 영화판에서 2억원은 단편영화 제작비밖에 안 되지만 연극판에서는 2억이면 거의 ‘블록버스터’ 급이다. 차대표가 ‘날 보러와요’ 공연을 돕는 것은 단지 자신이 개봉하는 영화의 원작 연극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지원은 일종의 ‘보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충무로는 대학로의 실력 있는 연극쟁이들을 곶감 빼먹듯이 빼와 영화판을 살찌웠다. 차대표의 지원은 충무로와 대학로의 쌍방향적인 신진대사를 추구한 최초의 시도라는 데에 의미가 크다. 그는 5월1일 개봉하는 ‘살인의 추억’과 5월8일 막을 올리는 ‘날 보러와요’의 연계 홍보도 계획하고 있다. 굳이 영화 덕을 보지 않더라도 공연계 내부에서의 ‘합종연횡’도 빈발하게 일어난다. 얼마 전 내한 공연을 가진 락그룹 스모키는 팬사인회를 ‘델라구아다’ 공연장에서 가졌다. 내한 공연을 주관한 라이브 플러스사는 관객층이 비슷한 ‘델라구아다’와의 관객 교류를 도모하기 위해 팬사인회를 개최했다. ‘이웃 돕기’도 이제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혔다. 군소 기획사들이 대형공연 기획사에 기대어 홍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 대형공연 제작 발표회장에 가보면 자체 발표회를 가질 여력이 없는 군소 기획사들이 자신들의 공연을 홍보하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사정을 빤히 알기 때문에 행사를 주관한 기획사도 이를 굳이 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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