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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화제]“밥그릇 줄어들라” 달아오른 여의도

[증시화제]“밥그릇 줄어들라” 달아오른 여의도

지난 4월1일 공석중이던 코스닥위원회 위원장에 허노중 한국증권전산 사장이 선임됐다. 전 위원장이었던 정의동 위원장이 3월12일 3년간의 임기를 채우고 자리를 비운 지 19일 만이었다. 후임 인사가 계속 늦춰지는 데 대해 말이 많았다. 당시 혼선을 빚고 있었던 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의 1급 인사를 마무리한 뒤 위원장을 선출할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퇴직 공무원, 특히 재경부 출신들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인사를 늦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예상대로 옛 재무부 출신인 허사장이 코스닥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또 재경부 출신인 맹정주 증권금융사장이 상호저축은행중앙회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현재까지 변화는 없다. 두 사람 모두 1년가량 임기를 남겨둔 상태였다. 자리가 빈 증권전산 사장에는 H씨 등 재경부 퇴직 관료가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파다했다. 이렇게 되자 평소 ‘잘 뭉치는’ 증권유관기관 노조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증권업협회(증협) 노조를 비롯해 증권전산 등의 노조는 1일부터 코스닥위원장의 사무실을 봉쇄하고 철야농성에까지 돌입했다. 허위원장이 출근이 저지된 것은 물론이다. 그는 증협 노조와 위원장 추천권과 관련된 ‘거래’를 하고 난 뒤인 16일에야 취임할 수 있었다.

3개 시장 통합 재논의 움직임 증권전산에도 퇴직 관료들이 임명될까 봐 눈을 부라리고 있는 증권 유관기관 노조들은 “우리가 무슨 재경부 등 경제부처 퇴직 공무원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양로원이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이번 인사가 있기 전까지 8개 증권 유관기관 중 증협을 제외한 7개 기관의 사장 또는 이사장들이 모두 재경부 출신 관료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와 관련, 증협 노조는 ▶증권거래소(이사장 강영주·부이사장보 이맹기) ▶증협(부회장 윤종화) ▶증권예탁원(사장 노훈건·집행상무 이명훈) ▶증권전산(전무 장현덕) ▶증권금융(맹정주 사장·감사 정원주) ▶코스닥시장(사장 신호주·전무 박환균) ▶투신협회(회장 양만기) 등 증권 유관기관에 재직 중인 재경부와 정치권 등 외부 출신 ‘낙하산 인사’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증권 유관기관 노조들이 겉으로는 낙하산 인사에 반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증권시장 통합과 교묘히 연결돼 있다. 증협·증권전산·증권금융·증권거래소·증권예탁원 등 5개 증권유관기관 노조들이 구성한 모임의 이름이 ‘일방적 시장개편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대로의 시장개편이다. 증협 노조가 코스닥위원장의 선임과 관련해 받아낸 선물도 예전처럼 임금이나 복지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코스닥위원회가 가지고 있던 위원장 추천권을 증협이 행사토록 한다’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증권거래소·코스닥시장·선물거래소 등 3개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는 논의는 지난달 27일 정부가 이들을 한데 묶은 뒤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확정했지만, 해당 기관과 노조의 반발이 심한데다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재논의 움직임이 일면서 아직까지 오리무중인 상태다. 이 와중에 서로 입장이 나뉘고 있는 각 기관들의 노조는 필요할 땐 뭉쳤다가 이해관계가 엇갈릴 땐 딴 목소리를 내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증협 노조가 코스닥위원장의 추천을 증협이 행사토록 한 것도 향후 시장개편이 가시화됐을 때 증협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같은 증권 유관기관들의 밥그릇 싸움을 보는 증권사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물론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는 증권사측도 불만이 많다. A증권사 사장은 “증권 유관기관들은 증권사들이 돈을 모아 업계 공통의 금융 인프라 구축을 위해 설립한 것”이라며 “국책은행과 달리 정부가 기관장을 보낼 아무 근거나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그동안 증권업계가 힘이 없어 낙하산 인사를 묵인하는 태도를 취하다 보니 이같은 인사가 더 심해지고 있다”며 “정부가 바뀐 만큼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증권사 적자 불구 기관들 재정은 넉넉 이같은 심정적 동조에도 불구하고 증권 유관기관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특히 증권사는 외환위기 후 잠시 반짝했다가 줄곧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기력이 쇠할 대로 쇠했는데도 이들로부터 회원비 또는 수수료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증권 유관기관들은 계속 살찌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따르면 44개 국내 증권사들은 지난 회계연도(2002년 4월∼2003년 3월)에 모두 6천1백46억원의 세전손실을 기록했다. 전년도에 1조6백47억원의 흑자를 냈던 것과는 큰 차이다. 이 기간 동안 거래소의 주식거래대금이 44%, 코스닥시장은 69%씩 줄어 증권사의 주 수입원인 거래수수료도 전년보다 18%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투신사와 함께 증권사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도 올해 중점 사업의 하나로 투신·증권의 구조조정을 잡고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 기업구조조정과는 달리 업계 자율에 맡길 방침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현대·대우증권과 함께 상당수의 증권사들이 짝짓기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현재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이 매물로 나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을 인수할 여력이 있는 삼성·LG증권 등은 인수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사이버거래의 활성화로 영업점의 중요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덩치만 부풀리는 합병은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증권업계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증권 유관기관들은 여전히 증권사들로부터 회원비 또는 거래수수료의 일정 부분을 떼 가고 있다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증권사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유관기관들은 증권시황에 관계없이 주식거래액의 1만분의 0.12∼0.65%씩을 원천징수하고 있다. 사이버거래 비중이 높은 B사의 경우 지난 회계연도에 수수료 수입의 3분의 1 이상을 유관기관 수수료로 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다수 증권사들이 수수료 수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증권시장 침체로 수수료 수입은 줄어도 유관기관이 징수하는 거래회비는 여전하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증권사의 적자와 달리 유관기관들은 지난 회계연도에 적자를 기록한 코스닥증권시장을 제외하면 재정이 넉넉한 상태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으로 증권거래소가 3천억원, 예탁원이 2천5백억원, 증협이 1천4백원 등 6개 기관이 1조원에 가까운 유보금을 쌓아두고 있다. 물론 이 중 5천억원을 증시 활성화를 위한 주식매입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일부가 투자되긴 했지만 증권사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유관기관들이 직접 투자자들로부터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세금처럼 거둬가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라며 “수수료를 증권사들의 회비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와 협회는 “유보금의 상당액이 회원들이 탈퇴할 경우 되돌려줘야 하는 자금인 만큼 결코 많은 액수는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당해연도 예산의 1백20%가 징수되면 1년에 1∼2개월씩은 회비와 수수료를 징수하지 않는 것도 어려운 증권사들의 입장을 감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연구원 관계자는 “예전처럼 시황이 좋아지면 적자였던 증권사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그간의 부실을 벌충하는 좋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며 “증권사들의 구조조정, 증시 통합에 따른 유관기관의 재정비 등으로 올해 증권시장은 유난히 시끄러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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